일출, 일몰. 해가 뜨고 지는 모습. 매일 반복되는 모습. 하지만 사람들은 이 반복을 기다린다. 그것도 애타게. 꼭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매일 반복되는 사실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애태우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 못 보면 내일 보면 되고, 내일도 못 보면 모레 보면 되는 일. 매일 반복되는 일에 이리 애태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제주도로 이사를 온 뒤, 하이디 때문에 이른 기상이 힘들어 일출은 도전해본 적이 없었지만 일몰은 제법 여러 번 도전했었다. 친정 부모님께서 제주집에 놀러 오셨을 때, 친한 후배가 놀러 왔을 때, 친한 선배가 놀러 왔을 때, 동생네 가족이 놀러 왔을 때. 이곳에 사는 우리가 아닌 손님이 찾아왔을 때 이들은 모두 일몰을 보고 싶어 했다. 바다로 해가 사라지는 모습을 애타게 바랐다. 매일 지는 해지만 온전하게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비는 자주 내렸고, 구름은 자주 가득했다. 손님들의 설레는 바람이 안타까움으로 바뀌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며 나도 온전한 일몰을 바라게 됐다.
손님이 오지 않은 어떤 날, 날이 좋다고 해서 선뜻 보러 갈 수 있는 일몰은 아니었다. 야간 운전이 힘든 초보운전자에게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각도가 어긋나 지는 해가 만드는 붉은 노을만 볼 수 있을 뿐, 온전한 해의 사라짐은 볼 수 없었다. 남편이든 손님이든 누군가 제주에 내려와야만 볼 수 있는 일몰. 날씨도 합을 맞춰야 하는 일몰. 그래서 더욱 귀했다.
2주 전 남편이 제주에 내려왔을 때, 일몰을 보기 위해 우리가 미리 찾아둔 정자에 올랐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이곳은 알려진 일몰 포인트는 아니었지만 그 어떤 자리보다 근사했다. 주변은 고요했고, 정자가 있는 지대는 높았고, 앞으로는 검은 현무암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고, 옆으로는 한라산이 뒤로는 오름이 장관을 만들고 있었다. 하늘이 제법 무거웠지만 붉은 해는 그 무거움을 번쩍 들어 올릴 것 같았다. 하지만 무리한 기대. 이번에도 그저 해는 지는 흔적만 붉게 하늘에 펼쳐 보일 뿐이었다. 맑았던 하루. 그래서 기대했던 마음. 왜 저녁 무렵이 다 돼서야 구름을 가득 불러냈는지 하늘이 야속했다.
다시 남편이 제주에 온 어제, 같은 장소를 찾았다. 여전히 맑은 가을날이었다. 게다가 전날 사이드미러를 통해 사라지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었기에 기대는 더욱 높았다. 해가 바다에 금빛 길을 내며 동그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 위로 어른어른 흔들리는 금빛. 하늘에 박힌 해의 빛은 달랐다. 붉었다. 한낮에는 쳐다보지도 못하게 반짝이더니, 이제는 쳐다보지 못할까 봐 붉은빛으로 톤을 제법 낮췄다. 바다는 은빛, 바다 위에 어른거리는 빛은 금빛, 해는 붉은빛. 조금씩 다른 빛은 하늘에 모여 신비한 작품이 됐다.
처음에는 구름이 없기를 바랐다. 차가운 기운을 머금은 가을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제대로 일몰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구름이 있어 더 근사한 하늘이었다. 구름은 하늘에 붓칠을 더해 그저 붉은색이 아닌, 조금 더 붉은색, 조금 덜 붉은색으로 명암을 만들고, 보라색, 하늘색, 주황색 등 갖갖 색을 덧칠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지는 해를 품은 하늘은 어떤 색으로도 정의할 수가 없었다.
오묘한 하늘 위 비행기가 육지로 향한다. 금빛이 어른거리는 은빛 바다 위 배가 육지로 향한다. 해만 하루와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 인연도 이별을 향해 간다. 나 역시 몸을 육지로 보내지는 못하지만 떠나가는 비행기와 배를 보며 육지에 남겨둔 사람을 떠올린다. 내가 떠나온 인연을. 전하지 못한 마음을.
"엄마, 저기가 한라산이지? 저 하트 모양이 백록담 맞나? 저기까지 가려면 정말 힘들겠다."
상념에 오래 빠져 있기는 힘들다. 해가 붉구나, 해는 붉은데 하늘에는 보랏빛도 도는구나. 같이 호흡 맞춰 감탄해줄 하이디가 아니기에. 아직 열 살. '우와 멋지다!' 짧은 감탄이면 충분한데 왜 이렇게 어른들은 오래 바라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나이다. 애써 이해를 구하지는 않는다. 이럴 때는 잠시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시간을 누려야 한다. 언제까지 볼 거냐고 묻는 하이디에게 말했다.
"해가 완전히 바다로 숨을 때까지 볼 거야. 지금은 니가 나를 기다려줘야 해. 책을 보든 바다를 보든 차에 가 있든 엄마 좀 기다려줘."
바다를 향해 점점 내려오는 해 밑으로 구름 띠가 보였다. 오늘도 바다로 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없나보다 안타까워하는데 해는 천천히 구름 띠 밑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보여줄 모습이 남아있노라며. 너의 기대를 오늘은 외면하지 않을 거라며.
일몰을 보며 답을 찾았다. 사람들이 왜 일몰을 그리 애타게 바라는지. 나 역시 왜 이 모습을 이리 애타게 보고 싶어 했는지. 이별의 순간을 눈으로 고이 담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별이 아프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해가 지는 이별이 내 앞에 다가왔다고 한들 이미 달이 떠 있음을 알기에 외롭지 않기 때문이리라. 구름 띠를 뚫고 다시 뻗어 나온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순간은 짧고, 해가 숨어든 바다 위에는 반짝 오징어 배가 불을 밝힌다. 이제 오늘이 끝나고 다시 나는 내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