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처음

by 여유수집가

동네에 프렌치 브런치 카페이자 꽃집이 생겼다. 요리하는 아빠와 꽃 만지는 엄마가 차린 가게. 없는 것 참 많은 산 중턱 동네에 우아한 가게가 문을 연 것이다. 오픈 소식을 듣고 동네 사람들은 걱정했다. 가게가 문을 여는 자리는 꽤 오래 비어있었고, 전에 빵집도 장사가 잘 안됐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음식점이 장사가 잘될까 하는 우려였다. 게다가 대부분이 마당 있는 주택에 살고, 마당에는 꽃이 많이 피는데 동네 사람들이 굳이 꽃을 살까, 동네 사람들이 아니고는 산 중턱까지 누가 꽃을 사러 올 것이냐고도 했다. 나 역시 그 걱정에 맞장구를 쳤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젊은 부부가 어련히 알아보고 고민하고 차렸겠지, 지나치는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에 이미 해답을 갖고 있었겠지 싶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따스한 분위기도 좋아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꽃집에 대한 우려도 쉬이 걷혔다. 단지 꽃만 파는 것이 아니라 플라워 클래스를 연 것. 마당에서 꽃을 키우기 때문인지 동네 사람들은 꽃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이 애정은 꽃꽂이 수업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플로리스트는 프랑스에서 오래 공부를 하고 온 사람으로 이력이 화려했다. 제대로 배울 기회라며 플라워 클래스에 등록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동네 언니가 배울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같이 수업을 듣자며 권했다. 하지만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손재주는 없고 꼼꼼하기는 도가 지나쳐 느리기는 오지게 느리기에 무언가를 주어진 시간 안에 만드는 수업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꽃은 들판에서 생생한 생명력을 가지고 피어야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꽃꽂이를 하면서까지 즐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외벌이 라이프에서 비싼 수강료가 부담되기도 했고.


자꾸 보다 보니 정이 든 걸까. 인스타그램에서 이 가게 계정을 팔로잉하고 있었는데 플라워 수업의 결과물을 보며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사진을 그냥 쓱 밀어 올리고 말았는데 점점 사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하트 버튼을 기꺼이 누르게 됐다. 다른 색과 다른 크기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기보다는 흐드러지게 피는 자연스러움을 살린 작품이 우아했다. 들판에서는 다양한 꽃이 한 데 핀 모습을 보기 어려우니까, 딱딱한 사물들로 채워진 공간에 고운 꽃이 채워지는 거니까, 내가 직접 만지고 느끼며 시각, 촉각, 후각을 채우는 시간이 되는 거니까. 점점 관심이 없던 꽃꽂이에 관심 가질 이유를 늘렸다.


하지만 관심에도 선이 있었다. 꽃꽂이도 좋은 취미가 되겠구나에서 마음은 멈췄다. 한번 수업을 들어봐야겠다는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선생님이 진행하는 초급 프랑스어 클래스가 더 끌렸다. 한때 버킷리스트에 프랑어를 말하며 프랑스 여행하기가 있었고, 외국에서 살 수 있다면 파리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버킷리스트라 역시 관심만 가졌을 뿐 강좌를 수강하는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여전히 집에서 인스타그램의 이 가게 계정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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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주, 2021년 다이어리를 샀고 2021년 일력을 샀다. 헤어스타일을 과감하게 바꾸는 파마도 했다. 뭔가 새로움이 넘치던 그래서 의욕이 솟던 시간. 인스타그램의 이 가게 계정에서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공지를 보게 됐다. 하이디가 학교에 간 동안 들을 수 있는 수업 시간까지 나를 위한 맞춤 수업으로 보였다. 외벌이에 부담이 되기는 하겠지만 크리스마스트리 대신으로 생각하면 되고, 새로운 경험에 이 정도 비용은 괜찮은 것 같고, 실력이 안 되더라도 한 번이니 참을 수 있을 것 같고. 수업을 듣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들어야 하는 수업처럼 보였다. 누가 그 자리를 낚아챌까 잽싸게 수업 신청을 마쳤다. 수업 비용까지 즉시 이체를 완료했다.


막상 수업 날이 되자 걱정이 됐다. 내가 잘 만들 수 있을지, 손이 무척 느린데 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자존심이 있는데 꽃꽂이 부진아의 오명을 갖게 되는 건 아닌지. 이미 낸 수업 비용을 당일에 돌려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거운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리스 만들기는 나무와 라그라스로 작은 다발을 여러 개 만들어 리스 툴을 채우는 작업이었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작은 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가지에 붙은 잎을 정돈해서 다발을 만들고 포인트로 라그라스를 끼우면 되는 작업. 가지에 붙은 잎을 정돈하는데 느린 손이 눈에 확 띄었다. 잎을 세게 뜯으면 가지가 부러질 것 같고, 약하게 뜯으니 한 번에 안 뜯어지고, 테이프를 감는 부분에 붙은 잎은 남김없이 깨끗하게 뜯어야겠고. 느린 내 손을 본 선생님께서 나무 손질을 도와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밑 부분에 잎을 하나하나 다 뜯지 않으셔도 돼요."


전부가 아닌 삼 분의 일의 잎만 뜯는 것을 기준 삼아 나무를 손질하고 작은 다발을 만드니 작업에 속도가 조금 붙었다. 선생님도 나뭇가지 자르는 작업을 도와주셔서 다른 수강생과 비슷하게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작업이라 생각은 가벼워졌고, 보드라운 잎을 만지니 손길은 다정해졌다. 꽃은 아니지만 나무의 향이 코끝에 닿아 세포 하나하나를 간질였다. 작은 다발들이 리스 툴 위에 자리를 잡으며 점점 모습을 갖춰가자 마음이 이리저리 춤을 췄다. 여기에 시나몬 스틱과 리본까지 묶으니 그럴싸한 작품의 탄생. 곰손이 금손이 된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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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만지작거리며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실력은 그저 그렇고, 그렇다면 하는 동안 잘하지 못해 부담스러울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에 시간 아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하고 나니 거리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 즐거웠다. 친절한 선생님은 잘하지 못하는 나를 잘하는 나로 만들어주셨고, 생화로 만드는데 예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은 조심스럽던 내 손을 자신 있게 만들어줬다. 친절함에 자신감이 더해지니 결과물은 제법 근사했고.


또 한 번의 처음이었다. 첫 퇴사, 첫 주말부부, 첫 제주 이주, 첫 운전 그리고 첫 꽃꽂이. 올해는 부쩍 처음이 많았아다. 그리고 이 '처음'들로 행복했다. 사실 퇴사부터 운전까지 꽤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면 꽃꽂이는 작은 결심으로도 가능한 '처음'이었다. 첫 도전이 주는 설렘과 뿌듯함은 결심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았다. '처음'이 주는 무게는 같았다. 꽃꽂이를 마치고 결심했다. 2021년에는 더 많은 처음을 없애리라고.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두렵다고, 잘하지 못할 거라고 미뤄둔 많은 것들을 시도하는 한 해가 되리라고. 지금 앉아 있는 테이블 맞은 편의 크리스마스 리스가 오늘따라 더 예쁘고, 처음 본 듯 설렌다. 그 '처음'이 내 새로운 2021년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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