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겨울나무, 무성한 여름나무. 머릿속에 박혀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은 다르다. 내 키만 한 나무 여럿은 푸른 잎을 가지에 꼭 붙들고 있고, 내 키보다 훨씬 큰 나무 몇몇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겨울과 겨울이 아닌 계절이 공존하는 곳. 시선을 더 넓히면 곧 수확을 앞둔 노란 열매가 달린 귤나무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노란 들국화가 여전히 피어있다. 평소 햇빛이 더욱 잘 드는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니 내 키만 한 나무도 내 키보다 큰 나무도 모두 푸르르다. 그 푸르름 사이에 함께 선 야자수가 다시 한번 계절을 헷갈리게 한다. 여기는 제주, 그리고 우리 집 베란다 너머 풍경이다.
앙상한 나무보다 푸르른 나무가 더 많이 보이는 이곳. 힘없이 겨우 붙은 초록 잎이 아니라, 한가득 온전히 푸르른 나무들이다. 초록빛에 햇빛이 닿아 반짝이면 좋으련만 짙은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려 하늘은 무겁다. 하지만 무거운 하늘이 아쉽지는 않다. 하얀 눈발 때문이었다. 제주에 첫눈이 내렸다. 서울을 온통 하얀 세상으로 만든 그다음 날이었다.
전날부터 대설 예보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올여름 운전면허를 취득한 초보운전자. 아직 눈길을 달려본 적이 없어 불안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오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언덕 위에 있어서 더 걱정됐다. 체인을 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편에게 물었지만, 남편은 이 언덕길에 경차는 체인도 소용없다며 눈이 쌓이면 걸어가라고 했다. 다른 곳은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학교는 안 갈 수가 없으니 당장 아이의 등하교가 걱정. 운전하기 전에는 운동이자 여행이라며 즐겁게 걸었던 15분의 학교 가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육지보다 기온이 높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많지 않은데 눈이 내려도 곧장 녹고 말 텐데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유 없는 호들갑은 아니었다. 2018년 2월, 제주 보름 살기를 하며 폭설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41년 만에 제주에 폭설이 내렸던 그때, 숙소가 있는 타운하우스에 갇혀 나흘을 지냈다. 30세대가 넘는 타운하우스 단지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광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꽤 길었고, 어른들은 합심해 그 계단을 눈 미끄럼틀로 만들었다. 단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눈썰매를 탔고 하이디도 그 무리에 끼었다. 갇힌 나흘은 눈썰매 덕분에 답답하지 않았다. 비어 가는 냉장고만 걱정할 뿐이었다.
처음 타는 눈썰매는 아니었다. 스키장에서도 썰매장에서도 타본 적이 있는 하이디였다. 하지만 그때와 계단 눈썰매는 달랐다. 돈이 들고 안 들고도 큰 차이였지만, 썰매의 종류부터 달랐다. 처음에는 맨몸으로 미끄럼틀 타듯 내려오더니 다음에는 택배 박스를 탔고, 어디선가 비료 포대가 나타나더니 이어 플라스틱 제대로 된 썰매가 나타났다. 하이디도 모든 종류의 썰매를 섭렵했다. 게다가 썰매를 타는 포즈도 하나가 아니었다. 앉아 타고, 엎드려 타고, 혼자 타고, 같이 타고. 급기야 제법 큰 아이들은 보드를 타듯 서서 내려오기도 했다. 속도감에 짜릿한 비명, 부딪힐까 넘어질까 아슬아슬한 비명, 빨리 출발하라며 재촉하는 비명이 섞여 차가운 공기를 데웠다.
이렇게 즐거웠던 경험이 아예 살러 온 제주에서는 두려움이 됐다. 대설이 온다면 주말이기를, 방학이기를 바랐다. 코로나 상황에서 다들 드문드문 다닌다는 학교에 다행히 매일 가고 있는데 눈이 이 귀한 등교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혼자 보내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내 욕심도 조금은 섞여 있었다.
한라산은 설산이 됐다는데 한라산으로 가는 도로는 체인을 해야만 한다는 안전안내문자가 오는데 체인도 없는 나는 어떻게 하나. 마음을 졸이며 거실 블라인드를 올렸다. 베란다 너머는 눈이 내린 어떤 흔적도 없었다. 매서운 바람에 나뭇잎만 미친 듯 흔들렸다. 주차장으로 나서며 간밤에 내린 눈의 흔적이 발견됐다. 차 위에 물기가 남아있었던 것. 시동을 켜자 도로 결빙을 주의하란 경고음이 울려 핸들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눈이 내렸고 녹았고, 이제 길이 얼었으면 어쩌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않고 조심스레 내려갔다. 하지만 길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고 나는 오디오의 볼륨을 한껏 높였다. 옆자리의 하이디가 물었다. "엄마, 기분 좋은 일 있어?"
아직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굣길이 남았으니까. 눈은 지금부터라도 내릴 수 있으니까.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며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는데 예감 적중.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바람은 나뭇잎 대신 눈을 흔들기로 한 모양. 한 송이 한 송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급하게 눈이 내린다. 바람에 쫓기듯 쏟아졌고, 바람에 쪼개진 듯 눈 송이도 작았다. 게다가 잎과 땅에 닿자마자 본래의 모습을 잃고 축축 젖은 흔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낭만은 없었다. 불안하고 걱정했던 마음은 어디로 보내고 낭만을 찾는 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섰다. 바람이 무서워 패딩을 입은 채였다. 핸드폰 카메라 앱을 열어 슬로우모션을 켜고 바람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했다. 영상을 통해 바라보는 눈에는 낭만이 남아있었다. 쏟아지듯 내리는 대신 나풀나풀 내렸고, 앙상한 가지가 아닌 푸른 잎과 야자수 위로 내리는 눈은 환상적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만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느려진 속도에 아름다움이 드러났고, 낭만이 스며들었다. 집 안으로 들어와 창 안에서 서서 그 너머를 바라봤다. 다시 눈은 바람에 쫓기듯 내렸지만 조금 전까지도 급하기만 했던 눈송이를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한번 알아챈 아름다움은 쉬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번에는 핸드폰 음악 앱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 찬 플레이리스트를 실행했다. 창밖의 푸르른 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트리 위로 날리는 눈, 캐럴을 세 곡 정도 들었을까 싱크대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점점 눈발이 사라진다. 비로 변하는 것이 아닌 존재를 감춰버렸다. 하굣길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입꼬리가 처진다. 걱정과 불안을 낭만으로 바꾸더니 다시 아쉬움으로 바꿔버린 제주의 첫눈. 흔들리는 야자수 잎을 바라보며 듣고만 있던 캐럴을 따라 불렀다. 크리스마스가 아닌 하얀 눈을 기다리면서. 아직 하이디를 데리러 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조금 더 내려주면 안 되겠냐는 바람을 담아서.
+ 이 글을 쓰고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 며칠 뒤 하이디의 학교도 전면 원격 수업에 들어갔다.
하이디가 원격 수업을 받는 동안 이 글을 발행한다.
이번에는 코로나가 어서 잠잠해지기를 그래서 원격 수업이 어서 등교 수업으로 바뀌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