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루 만에 남편이 제주집에 왔다. 금요일 휴가를 내고 목요일 퇴근 후 곧장 비행기를 탄 것. 금요일 오전,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와 남편은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교래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교래자연휴양림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남편과 나는 헤어졌다. 남편은 차에 싣고 온 자전거를 타고, 나는 다시 차를 타고 각자의 길을 떠났다. 사진에 나는 나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탄 남편의 모습만 담았다. 그의 라이딩 출발을 기념하는 사진이었다.
남편의 취미는 자전거 타기다. 이 주마다 한 번씩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제주도에 오는 남편은 비가 오지 않으면 금요일에는 자전거를 탄다. 오르막길은 힘들기 때문에 송당이나 교래처럼 높은 곳까지는 차로 이동 후 바다를 향해 쭉 내리막길을 달린단다. 바람과 한 몸이 되는 자유로움, 온몸으로 느끼는 속도감은 얼마나 좋을까.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나는 그저 짐작만 해본다. 그나마 지금은 초보이지만 운전은 하기에 창문을 열고 달리는 순간 느껴지는 기분의 몇 배쯤 되려니 생각할 뿐이다.
남편의 자전거 사랑은 유별나다. 제주에 오지 않는 주말에도 서울에서 자전거를 탄다. 머무는 곳 어디든 자전거를 즐기기 위해 서울집에 한 대, 제주집에 한 대, 자전거는 두 대가 있다. 게다가 접어지는 자전거라 여행을 갈 때도 가지고 간다. 작년 말, 바르셀로나에도 자전거를 가지고 갔다. 모녀가 아직 이불속을 빠져나오지 못한 시간, 도시가 깨어나는 아침마다 그는 자전거를 탔다. 7박 9일의 일정 중 하루는 낮에도 자전거를 탔다. 나는 하이디와 함께 호안미로 미술관을 갔고, 남편은 자전거와 함께 바르셀로나 곳곳을 누볐다.
남편의 자전거가 처음부터 두 대였던 것은 아니다. 나와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그는 내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샀다. 그동안 모아둔 자신의 용돈을 털어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으로 민트색 헬멧까지 맞춰서. 이렇게 보면 굉장히 로맨틱한 선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는 자전거를 아예 못 타고, 탈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그는 자신했다. 예쁜 자전거가 생기면 내가 자전거를 타고 싶어 질 거라고. 자신이 내게 자전거를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고집쟁이. 자전거를 배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니면 걷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설득되지 않는 아내. 결국 포기한 버킷리스트. 그는 민트색 자전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전거를 팔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주지 못한 나는 미안한 마음에 민트색 자전거는 팔고, 좋아하는 색으로 한 대 더 살 것을 권했다. 이 정도의 너그러움이라면 내게 더는 자전거를 타라고 하지 않으리라는 바람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같이 타는 바람 대신 종류가 다른 자전거를 두 대 갖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렇게 그는 빨간색 자전거와 카키색 자전거 두 대를 가진 남자가 됐다.
하굣길 하이디를 픽업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위치를 확인. 60km 남짓 자전거를 타고 단골 카페에 막 들어왔다고 했다. 하이디를 차에 태우고 남편에게로 갔다. 지금까지 늘 자전거를 접어 전용 가방에 넣고 버스로 돌아왔는데 데리러 가는 특급 서비스를 제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서울에서 밥벌이를 이어가는 그가 이 정도 서비스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은 운전을 못해서, 운전이 서툴러서 데리러 가지 못했다면 이제는 운전이 제법 익숙해졌기에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카페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빨간색 그의 자전거가 보였다. 카페 간판의 빨간색 마크와 어울리는 자전거. 검은색 자전거 복장을 입고 고글을 쓴 남편이 카페에서 나와 우리를 맞는다. 쭉 뻗은 다리, 헬멧을 쓴 탓에 눌렸지만 바람에 살짝 날리는 머리카락, 아저씨라 불리는 나이에도 뱃살 없는 몸매가 새삼 멋있다. 라이딩을 시작할 때도 봤지만 라이딩이 끝난 지금 유독 멋져 보이는 건 라이딩을 하며 떨친 스트레스, 라이딩을 하며 채운 상쾌함이 묻어나서가 아닐까.
남편은 내년부터는 제주에 오지 않는 주말에는 자전거 캠핑을 하겠다고 한다. 후배의 장비를 빌려 지난가을 두 번의 캠핑을 하고 난 뒤 자신의 장비를 마련했다. 2인용 작은 텐트는 생각보다 비쌌고, 의자, 테이블, 침낭 등 다른 장비 역시 모두 내 예상보다 비쌌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취미가 확장되는 것을 환영했다. 내가 제주에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오름이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책방을 찾아다니고, 수요일마다 올레길을 걷는 것처럼 그도 그의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누릴 자유가 있기에.
다시 돌아온 집. 남편은 소파에 누워 오랜 라이딩으로 지친 몸을 쉬고 있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하이디는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열하루 만에 만났지만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가족.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서로에게로 흐른다. 남편은 오늘 라이딩을 하며 본 광치기 해변이 좋았노라 이야기를 하고 나는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노라 말한다. 중간중간 하이디는 왜 엄마, 아빠만 꽁냥꽁냥 하냐며 푸념. 따로여서 행복했고, 같이라서 더 행복한 우리. 이제 마주 앉아 같이 먹을 밥상을 차리러 일어서야겠다. 지금부터는 같은 일을 하면서 행복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