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껏 오래 마셔도 괜찮은

연태고량주

by 여유수집가

연태고량주

밤에도 가실 줄 모르던 뜨거운 열기가 슬며시 사라진 여름의 끝 무렵, 나는 이별했다. 반소매 셔츠를 옷장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꺼낼 즈음 시작된 연애는 한 계절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급하게 타올랐던 마음은 급하게 식어버렸다.

첫 만남부터 불꽃이 일었다. 남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서 키스했다. 서로의 눈 속에 피어난 불꽃은 성냥불에서 모닥불이 되어 산불로 커질 듯하더니 이내 꺼지고 말았다. 주변을 모조리 삼키며 오로지 상대만을 향해 매섭게 타들어 가는 불꽃이 덜컥 무서워졌다. 겁쟁이였던 나는 한순간 물을 끼얹으며 그를 놓아버렸다.


열락에 빠져 둥둥 떠다니던 내가 우울에 빠져 바닥을 기었다. 한껏 솟았던 어깨가 땅으로 축 처졌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를 보다 못한 선배가 술을 사겠노라 했다. 장소는 중국집, 술은 연태고량주였다.


투명한 병이 테이블에 오르고 작은 잔이 채워졌다. 달콤하게 들어와 뜨겁게 넘어가며 달달한 향을 남겼다. 목이 확 타오르는 느낌이 좋아 앞에 놓인 탕수육은 먹는 둥 마는 둥 술잔에만 손이 갔다.

“잘 만나던 거 아니었어? 왜 헤어진 건데?”

“... 잘 모르겠어요.”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서로 다른 속도가 부담스럽다고, 나는 네 빠른 속도를 쫓아갈 자신이 없다고 정제된 언어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더 솔직한 이야기를 원했다. 돌진하는 그가 감당이 안 됐고, 내 일상을 너무 흔드는 게 싫다며 말에 포장을 벗기자 그는 내게 말했다.

“사랑을 제대로 안 해 봤구나. 아니다. 이제 사랑을 제대로 하기 싫어진 나이가 된 건가?”

사랑의 방식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냐며 너무 몰아붙였던 그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내 탓 같았다. 사랑 앞에서 겁을 먹은 내가 싫어 선배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는 답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연태고량주는 달콤한 과일향이 강해 호불호가 있지만, 나는 이 술을 좋아한다. 뜨겁게 넘어가면서도 뒤에 올라오는 달달함에 뜨거움이 감싸지며 목 넘김이 부드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34.2도의 독주지만 거듭 마시게 된다. 쉽게 뜨거워진 우리의 사랑도 달달함이 퍼지기를 기다렸더라면 오래갈 수 있었을까?


원래의 주량보다 많이 마셨지만 뒷날 숙취는 없었다. 소주도, 데킬라도, 와인도 아닌 연태고량주라서 숙취가 남지 않은 거다. 그래, 사랑 앞에 겁을 먹은 게 아니었다. 상대가 ‘그’라서 내 사랑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던 거다. 연태고량주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쉽게 뜨거워지더라도 뒤에 한껏 밀려오는 달달함에 취해 양껏 오래 마셔도 괜찮은 사랑을 하게 될 거다.


다음번에는 나를 겁쟁이로 만들지 않을 사람과 오래 사랑하기를.






연태고량주 사진: 출처 연태고량주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