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것은 고생이라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

by 여유수집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떠난 건 순전히 내 의지였다. 대학원 CC인 남편과 나는 1학기에 연애를 시작해 3학기가 끝나자마자 결혼했다. 야간이나 주말에 수업이 있는 특수대학원이라 학생 대부분이 직장인이고, 미혼은 많지 않아 우리의 연애는 화제가 됐다.


화제가 되면 부담이 커지는 법이기에 강의실에 나란히 앉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작정하고 강의실 맨 뒤에 나란히 앉았다. 며칠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안에 끝을 봐야 했다. 교수님의 무수한 말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그날 우리는 수업 시간 내내 필담을 나눴다. 안건은 신혼여행지였다.


결혼식은 12월. 남편, 당시 남자친구는 따뜻한 휴양지를 원했다. 온종일 선베드에 누워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면 행복하겠노라 했다. 일하랴 공부하랴 결혼 준비하랴 무겁게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편안한 휴식을 바랐다. 그의 원픽은 몰디브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여행이란 걸어야 제맛 아닌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유럽을 걷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유럽은 생각만으로도 로맨틱했다. 신혼여행으로는 유럽이 최고의 선택이라 믿었다. 그는 하와이도 선택지로 내밀었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유럽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갈지 선택권을 주겠노라 했다. 결국 나의 고집이 이겼고, 그는 고민 끝에 파리와 프라하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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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관광하기 참 편리한 도시였다. 주요 관광지를 모두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다. 지도를 애써 들여다봐야 하지도 않았다. 방향만 잡은 채 도시를 마음껏 느끼며 천천히 걷다 보면 목적지가 나왔고, 목적지의 여운을 되새기며 걷다 보면 다음 목적지가 나왔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갑작스러움에 있기에 무작정 트램에 올랐다. 어디서 내린 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걸으면 되고, 먼 곳에서 내렸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되기에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트램이 데려다 줄 낯선 곳이 기대됐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번화한 거리에서 무턱대고 내렸다. 우리가 내린 곳은 바로 대형 쇼핑몰 앞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빨간색 장식이 가득한 쇼핑몰을 구경했다. 프라하 사람들은 무엇을 사는지 그들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봤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이 곳곳에 넘쳤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을까 위치를 가늠하다 알게 됐다. 이 근처에 유럽 최고의 레스토랑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 있음을. 신혼여행 최고의 만찬을 그리며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레스토랑이 됐다. 쇼핑몰을 나서는 순간부터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오전의 순조로운 일정을 질투했던 것일까. 지도를 보고 또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도 그 레스토랑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레스토랑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이 가리킨 골목으로 들어가도 레스토랑은 보이지 않았다. 나오겠지, 나오겠지 하면서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한 것이 한 시간에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약한 눈발까지 날렸다. 처음에는 예쁘다고 감탄했던 눈발도 빙빙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에 화가 나 밉상으로 보였다. 내리려면 펑펑 내리기라도 하지 눈도 비도 아닌 것이 춥게만 만든다고 신경질을 냈다. 처음에는 희망으로, 중간쯤에는 낯선 곳에서 그럴 수도 있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중에는 오기로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눈발이 점점 강해지자 체념 상태에 들어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유럽 최고의 레스토랑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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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을 나선 지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프라하 골목길에 항복을 선언했다. 지도를 가방에 쑤셔 넣으며 눈앞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맛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분명 오래 걸어 배가 고팠음에도 입이 깔깔해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로도 풀어지지 않던 마음은 영수증에 더 뾰족해졌다. 메뉴판에서 확인했던 가격과 영수증에 적힌 금액은 어떻게 계산해도 맞지 않았다. 부가세를 더해도, 호텔 마냥 봉사료까지 더해도 맞지 않았다. 영어로 물어봤지만 종업원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온몸을 사용해 묻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어리숙한 여행객이 되어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고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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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면 남은 오후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고 계속 우울한 채로 하루가 마감될 것 같았다. 오직 레스토랑에 눈이 멀어 몇 번을 그냥 지나쳤던 바츨라프 광장으로 갔다. ‘프라하의 봄’ 무대였던 광장에서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던 남편의 추억담을 들으며 속상했던 마음은 사르르 녹았다. 축 처졌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가며 즐거움을 되찾았다.


“고생 끝에 보니 바츨라프 광장이 더 크게 와닿네. 우리 바츨라프 광장을 제대로 보려고 헤맨 거 아닐까?”

“합리화가 너무 과한 거 아니야?”

“헤매는 것이 여행이지 뭐. 헤매고 나니 그냥 지나쳤을 광장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그건 아니지. 헤매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생일 뿐이야.”


고집 센 내가 어디 가랴. 헤매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생일 뿐이라는 남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강하게 반박해서 남편의 의견을 꺾고 싶지만, 간신히 회복한 즐거움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을 모르는 사람의 짧은 판단이라고 무시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이날의 흩날리던 눈발과 헤매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신혼부부의 다정함,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던 사람들의 진지한 눈빛이 그대로 떠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 내가 맞았다. 헤매는 것도 여행이다. 그러니 나는 고집 센 사람이 아니라 여행에 통달한 여행 고수인 거다.





사진은 모두 그 당시 직접 찍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