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위치는 묘했다. 강남 한복판이자 오피스 밀집 지역이면서 아파트 밀집 지역 옆이기도 했다. 회사 주변 산책을 나서면 오피스 밀집 지역에서 시작해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걷게 됐다. 타박타박 일정한 속도로 이어지던 걸음은 꼭 중학교 근처에서 속도를 늦췄다. 회사 일에 몰두해 잠깐 잊고 있었던 아이가 떠올라서였다. 어떤 날은 잠깐의 멈춤으로 끝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일에서 육아로 화제를 바꾸기도 했고, 어떤 날은 화제뿐만 아니라 걷던 방향까지 바꾸기도 했다.
“반대로 돌자!”
20분 정도 산책이 가능한 시간. 아파트 밀집 지역을 지나 중학교를 거쳐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코스가 적당했다. 자연스레 아파트 밀집 지역을 향하는 동료의 발걸음을 내가 붙잡았다. 최근 들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오피스 밀집 지역을 두 바퀴 돌기로 했다. 큰 도로를 지나쳐야 해서 차 소리가 소란스러웠지만, 마음은 덜 소란한 길이었다.
주 3일을 야근하는 엄마였다. 야근도 야근 나름. 밤 10시에 사무실을 나서면 그나마 다행이고 12시를 넘겨 나서는 날이 잦았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며 퇴근 시간은 빨라졌지만, 이번에는 줄지 않은 업무량이 문제였다. 짧은 시간에 전과 다름없는 성과를 내야 했기에 모든 에너지는 회사에서 소진됐다. 빈털터리가 되어 집에 돌아온 나는 소파에 널브러졌다. 게다가 더러는 미처 마치지 못한 회사 일을 집에서 해야 하기도 했다.
아이는 늘 엄마를 기다리는 신세였다. 야근이 많을 때는 보이지 않던 엄마를, 야근이 줄어든 뒤에는 보이는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소파에 널브러진 나는 아이와 놀아줄 힘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꾸만 혼자, 스스로 책을 읽으라며 아이를 책으로 떠미는 엄마였다.
아빠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근이 많은 엄마를 대신해 평일 주 양육자가 됐지만, 그 역시 직장인이었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돌아온 집에서도 업무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에게 내어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회사에 있는 동안 학원 뺑뺑이 대신 학교에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교 시간이 상대적으로 늦은 사립초등학교를 보냈다. 하교 후에는 집에서 시터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아이가 힘들지 않기를 바라며 한 사람의 월급 대부분을 아이에게 쓰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은 부모의 위안이었을 뿐, 아이의 마음은 달랐다. 처음에는 연필을 깨물더니 손톱까지 깨물기 시작했다. 깨무는 원인은 불안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의 불안은 결핍에 있었다. 워커홀릭 엄마가 만들어낸 엄마 결핍이었다.
돈을 버느라 부모는 시간이 없고, 그 돈을 제일 많이 쓰는 아이는 부모가 없어서 결핍을 느끼고. 잘못된 연결고리를 끊어야 했다. 손톱 깨물기 외에 드러나는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지금 생긴 틈을 채우지 못한다면 나중에 손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순수하고 예쁜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 성취가 주는 행복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소중함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자책이 뒤섞였다.
남편이든 나든 둘 중의 하나는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어야 했다. 돈의 효율 대신 시간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했다. 한 사람의 월급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가고 있으니 한 사람이 그만두는 것은 가정 경제에 큰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의 결핍 충족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한 사람의 퇴사를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업무량을 줄여 에너지를 확보해 저녁 시간만이라도 아이에게 집중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다짐이었다. 일정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는 직원의 일을 줄여줄 회사는 없을 테니. 시간을 돈으로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계산법이니까.
우리 부부는 선택해야 했다. 남편이 퇴사하느냐, 내가 퇴사하느냐. 아이가 더 결핍을 느끼는 대상은 엄마. 여자아이다 보니 감정을 살펴줘야 하는 일이 잦은데 이것에 더 능한 것도 엄마. 늘 더 피곤해하는 것도 엄마. 멀리 내다봤을 때 고용 안정성이 더 낮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엄마. 게다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며 살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이 있는 것도 엄마였다. 모든 부등식에서 큰 쪽은 엄마였기에 답은 나의 퇴사였다.
답을 알았다고 해서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고민만 많고 마음만 무거우니 더 자주 걷고 싶었다. 그렇다고 걸을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점심시간에 걸어야만 했는데, 같이 걷는 동료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고민을 바라보고 싶었고,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라면 티를 내지도 말아야 했기에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길은 싫었다. 학교를 피해 걸어야 했다.
아파트와 학교 대신 빌딩을 지나기로 했다. 빌딩 숲을 걷다 보면 빌딩에 계속 드나드는 삶을 살고 싶어질 줄 알았다. 단지 지금 지쳐서 아이를 핑계로 그만두는 선택은 싫었기에 회사에 마음을 더 붙여두고 고민하고 싶었다. 하지만 빌딩을 지나면 지날수록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빌딩 숲을 걸으며 빌딩 대신 아파트에 머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빌딩에 더 오래 머물던 내가 아파트에 더 오래 머무는 삶으로 마음을 옮기고 있었다.
제목의 사진은 Unsplash의 raw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