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by 여유수집가

로비 게이트에서 사원증을 찍고, 근무 층에 도착해 다시 또 사원증을 찍는다. 출입을 허락하는 ‘딸깍’ 소리와 함께 묵직한 유리문을 민다. 유리문 안으로 들어서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의 책상이 쭉 늘어서 있다. 흰색과 회색이 섞인 책상들에는 아무 개성이 없다. 비슷한 시간 하루를 시작하고, 비슷한 시간 하루를 끝내는 직장인들의 비슷한 삶처럼.


몇 발짝을 더 움직여 책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제야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 똑같은 색의 가림판에는 각기 다른 사진이나 엽서, 프린트물 등이 붙어 있다. 똑같은 모양의 모니터 옆에도 각기 다른 모양의 연필꽂이와 각기 다른 물건들이 놓여있다. 전화기 옆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비워두고 누군가는 책을 쌓아두는 등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직장인이라는 틀은 같지만 그 안을 채우는 방식과 내용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기에.


책상 위보다 책상 밑을 들여다볼 때 나의 다름은 더 잘 드러났다. 책상 밑에는 신발 네 켤레가 놓여있었다. 운동화, 슬리퍼, 단화, 하이힐이다. 운동화를 신고 출근해서 슬리퍼를 신고 일하다가, 단화를 신고 회의에 가고, 중요한 보고나 PT가 있는 날에는 하이힐을 신었다. 퇴근할 때는 다시 운동화. 네 신발 모두 각자 맡은 역할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사랑받는 존재는 운동화였다. 내가 회사 생활을 버티는 데 꼭 필요한 장비였으니까.


언제부터인지 나는 계속 걸었다. 처음에는 여행을 다니며 걸었다. 걷는 동안 보게 되는 낯선 풍경이 좋았다. 일상을 벗어난 자유 속에서 무념무상으로 걷다 보면 회사 생활에 치였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매번 목표를 부여받고 매일 달성률을 확인받는 회사 생활이 버거웠기에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여행을 좋아했는데, 취향이 맞는 친구를 찾기 쉽지 않아 혼자 걷는 날도 많았다. 회사 생활을 버티는 가장 큰 이유가 ‘걷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걷다 보니 낯선 풍경보다 걸으며 깨어나는 내 몸의 감각을 더 좋아하게 됐다. 머리카락은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정수리는 햇빛의 열기를 가늠하고, 피부는 공기의 물기를 가늠한다. 앞뒤 좌우 보고 싶은 곳을 바라보며, 팔은 바람을 가르고, 발은 땅의 굴곡을 느끼고, 다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몸의 감각이 깨어나고 나면 마음도 깨어나 의미 없는 생각들이 덜어진다. 몸과 함께 생각도 가벼워지는 것. 여기에 내가 움직인 만큼 나아가는 정직함도 좋고, 편한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되는 소박함도 좋아 나는 걷기를 멈출 수가 없다.


여행을 떠나 걷고 돌아와야만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버틸 수 있었는데, 갈수록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일과 책임이 늘고, 챙겨야 할 사람도 늘었기에 눈치를 보느라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근무 연차가 올라가면 회사 생활도 더 능숙해질 줄 알았지만, 점점 더 조직 순응적인 사람이 되느라 입 꾹 다물고 그저 고개 끄덕이다 보니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했다. 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정작 나는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없는 삶을 사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일상을 걷기 시작했다.


매일 버스로 지나치던 출퇴근길과 동네 구석구석을, 점심시간 회사 주변을 걸었다. 일상에 걷기가 스며드니 가장 먼저 답답함이 덜어졌다. 걷다 보면 마음의 열기는 발바닥으로 내려갔고, 어지럽던 머릿속 생각들은 길에 흩어졌다. 게다가 걷기는 기본 속성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나를 버티는 삶에 머무르게 두지 않았다.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직장인으로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고, 좋아하는 일도 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일이 내 일이 되도록 걷다 못해 뛰어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다. 가만 서서 기다리지 않고 걷고 또 걸으며 찾았기에 진정 내가 바라는 삶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지금 나는 15년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20년을 살았던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살고 있다. 여기서 올레를, 오름을, 귤밭을, 바다를 걸으며 작가로 산다.


돌이켜보면 회사 생활 15년은 쉽지 않았다. 성과가 수치로 평가되는 일을 할 때는 실적 줄 세우기 성적표를 매일 받으며 등수를 올리고자 아등바등했고, 성과가 수치로 평가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모든 요구에 ‘할 수 있습니다’를 말하며 존재 가치를 높이고자 애썼다. 회사에서의 쓸모가 삶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만 이랬을까. 직장인 대부분이 이렇지 않을까. 다행히 나는 ‘걷기’라는 무기를 찾아 조금은 더 수월하게 이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고, 회사 중심적인 삶에서 나 중심적인 삶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이 무기를 다른 직장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내일이 답답하기만 하고, 경험은 쌓여가지만 여전히 회사 생활이 버거운 당신에게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나처럼 일상을 걸으며 가벼워진 생각과 마음으로 당신도 당신 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버티는 삶보다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래서 나와 당신 모두 조금은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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