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닳는 갈망을 축이겠다

25. 10. 26. 일요일 D+18

by 흩날림문고




삼켜진 것 같았다.

마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거대한 고래 창자 속에 들어찬 듯.


모두를 이해했다.

국익을 우선하는 이들의 우려,

어쩌면 거짓말일 수도 있을 고통받는 이들의 비명.

그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야근을 끝내고 집에 오니,

자야 할 시간만을 남겨 놓았다.

씻고 누우니 그제야 시작되었다.


잠드는 그 순간까지,

내면을 수없이 걸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믿어온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 누구도 관심이 없고,

되려 관심을 두지 말라 경고하는,

그 모든 말들 속에서,

나는 과연 정의를 추구한다 말할 수 있나.


순간,

모든 의욕을 잃었다.

목표도, 꿈도, 소망도 없었다.

그저 나는 이방인이었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의 생일.

유엔이 태어난 해이기도 한 이날.


착잡한 심정으로,

각자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제개발협력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만났다.


우리는 밤새 토로했다.

혼돈의 시간 속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저 스러질 것인지,

무엇이라도 찾아내고야 말 것인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내게,

그저 이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덮였다.




떠나야겠다, 고 생각했다.

나를 붙잡는 모든 시선을 뿌리치고.


깊어지는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다,

나는 나를 장례 지내기로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인류 속에 나,

내 속에 인류를 생각할 수 있는,

아무런 경계도 없는 어딘가로.


일 년 후 나의 생일,

어쩌면 계약이 끝날 그 시점.

나는 파리로 갈 것이다.




파리로 가겠다는 결정은,

인류애적 동기도,

야망찬 커리어적 욕심도 아니었다.


그저 문학의 도시에 가겠다는 마음.

에밀 졸라가 머물었던 Café de la Paix에서,

소설을 잃으며 크루아상과 핫초코를 먹겠다는 꿈.


밤새 소설을 먹어치우며,

나의 살점인, 나의 소설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다짐.


무엇보다,

정체도 모를 감옥에서,

죽은 척 숨만 겨우 쉬며,

늘어난 수명을 버거워하는 채로

천국을 그리워하기보다,

도피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파리에 갈 준비를 하겠다.

앞으로 일 년,

어쩌면 일 년 반.


돈이건, 시선이건, 그 무엇이건,

그 무엇에게도 나를 빼앗기지 않겠다.

나는 애닳는 갈망을 축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