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

25. 10. 19. 일요일 D+17

by 흩날림문고




나의 인생 통틀어,

나의 정서를 정의하라 한다면,

그건 무력감이었다.


밝지만 무력한 아이.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오래전 자연히 알았다.


10대에는 가치로서 존재하는 나에 대한 허무감이었고,

20대에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의심,

30대에는 분열하는 세계 속 나의 소용이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무력으로 귀결되었다.

때로는 간단히 삶을 놓고 싶다는 열망을 포함하여.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심각한 류는 아닌.


이제는 숨을 내쉬는 것처럼,

어느새 옆에 누워 있는 무력감과 손을 잡고,

하루 종일 침대로 도피했다.


네가 찾아온 이유.

무엇 때문인지는 안다.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매년 초,

나에게는 전통이 있다.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사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우리는 함께 떠나보낸 해를 기억하며,

각자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건 10가지를 적고,

새로 찾아올 해의 소망을 적어,

봉투에 봉인한다.

내년 초 다시 열어볼 요량으로.


나는 새해에 이룰 것도 적지만,

무엇보다 그 해에 기도를 적는다.

소원이 아닌 그의 기도를.

신기하게도 그 모든 기도는 이루어졌다.

올해를 제외하면.


2025년 나의 기도는,

“당신의 시선으로 난민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였다.


25년 10월.

한 해가 세 달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나는 깨달았다.

그들을 사랑한 적 없다는 사실을.


미움을 사기 싫다는 변명으로,

용기 없음을 방패 삼아,

모든 이를 이해한다는 알량한 선량함을 가장해,

나는 결국 도망치고 있다.


압도하는 이 현실 속에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들을 사랑하는가.

내게 인류를 사랑한다 말할 자격이 있나.


나는 오늘 무력했다.

그들을 생각할 때면,

그리고 이 세계 속의 나를 떠올릴 때면,

무력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다.


감히 사랑한다 말할 수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