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리스본 2, 신트라 (18)
다시 날은 밝았고,
팔자 좋게 누워서 늦은 하루를 시작하기보다는 오늘은 조금 부지런히 그리고 멀리 이동하기로 해본다.
리스본 중심지에서 약 30km 떨어진 ’신트라‘라는 지역으로 노선을 정했고 리스본에서 기차로 약 40분 거리의 작은 도시이자 페나 궁전 및 무어인의 성을 비롯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라는 짤막한 키워드에서 출발이 정해졌다.
배낭여행의 장점 중 하나가 언제든 발걸음이 가고 싶은데로 유연하게 노선을 정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아니겠는가? 장점을 살려 아침 일찍 일어나 역으로 이동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마침 숙소 근처인 Lisboa Rossio역에서 열차를 타면 별도의 환승 없이 바로 신트라에 도착하는 경로였고
7:40분 열차를 탑승 후 8:20분 즈음에 도착하는 걸 보니 40분가량이 소요되었고, 역을 나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남아있는 아침잠을 없애기 위해 에스프레소 한잔에 설탕을 툭툭 털어 넣어 후다닥 마시고서는 마침 딱 맞춰 오는 신트라 궁전행 버스를 탑승했다. 9:15분쯤 도착했고 미리 9:30 입장의 첫 타임 입장권을 구매해 뒀기에 입구를 빠르게 통과해 들어와 궁전 입구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줄부터 섰다.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처럼 서둘러 줄을 선 결과일까 버스 탑승 마지막인원이 내가 되었으며 내 뒷사람부터는 탄식과 함께 다음 버스를 기다렸고 성격이 급한 사람은 빠르게 오르막을 향해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 타고 앉아서 갈 때는 몰랐는데 궁전에서 걸어서 내려올 때를 보니 20~30분은 걸리는 듯하다. 요즘 이런 걸 럭키비키라고 하던가? 아무튼 첫 셔틀버스의 마지막 승객으로 탑승을 하였고 그렇게 계획했던 시간에 맞게 정확히 도착했다.
(아침부터 땀 흘리며 올라가는 것보다 여유 있게 도착해서 버스 타고 올라가시고 내려올 때 느긋하게 걸어서 내려오는 걸 추천드리며 도착하면 버스줄부터 서시는 게 좋습니다.
주요 관광지 내 차도가 매우 협소한 편이기에 이른 아침이 아니면 랜트차량으로 움직이는 건 조금 힘들어 보입니다.)
9:30분 오픈이었고 버스를 타고 궁전 입구를 들어서는 시간이 정확히 9:27분.
기다리며 소비되는 시간 없이 오픈시간에 맞춰 들어오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이런 칼 같은 타이밍의 진행은 유럽에서는 쉽지 않은 경험이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책장에서 꺼낸 동화 속 왕국을 현실로 불러낸 듯하다.
아이보리, 노랑, 주황 등 일반적인 벽돌색이 아닌 형형색색의 외벽이 산 위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포르투갈 특유의 아줄레주 타일 장식이 눈에 들어왔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딘가에 있을법한 테마파크를 떠올리게 했다.
입구를 지나서 궁전의 도입부에 마주하는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반인반수)의 섬세한 조각상이 수문장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커다란 조개껍질 위에 올라서 있으며 물결처럼 뒤엉킨 수염과 근육의 굴곡이 실제 생명체처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가까이서 보면 다소 괴이한 인상마저 주지만, 그만큼 당시 조각가의 세밀한 솜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트리톤이 지키는 문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서면,
멀리서 보았던 화려한 색감과 달리 외벽의 곳곳에서 습기와 세월의 흔적이 드러난다.
벽면에는 곰팡이 자국처럼 얼룩이 번져 있고, 일부 구역은 복원 공사 중이었다.
아마 공사가 끝나면 전체적으로 새 도색이 이뤄질 듯하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오게 될 그때는 모든 복원공사가 끝나고 온전한 모습으로 마주하길 바라며 내부로 들어가 본다.
궁전은 완공 이후 주로 왕실 가족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내부에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귀중한 보물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을 지나 복원 구역을 지나면 보검과 화려한 조형물, 정교한 장식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이따금 실제 생활공간이 공개되어 있었기에 침실, 응접실, 식당, 주방 등에서 그 시절 왕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공간 속에서 궁전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던 왕국의 흔적이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천천히 이 궁전을 거닐면서 그때 당시의 삶을 상상해 본다.
경복궁을 입장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한복들을 입고 많이 입장하는데 이곳 또한 그때 옷들을 입고 거닐면 더 멋진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하며
그때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이성에 초대된 손님인 듯이 느긋하고 여유 있게 내부를 거닐어본다.
관광지의 마지막코스인 기념품샵 또한 이쁜 게 많았으나 아쉽게도 배낭여행 특성상 챙겨서 들고 다닐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여행의 종착지가 포르투갈이었다면 아마 한 보따리 구매해서 기념품으로 돌렸을 것 같은 물건을 이 꽤 많았다.
두세 시간가량을 성에 초대된 손님처럼 성 내외를 자유롭게 거닐며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무어인에 성에 가기 위해 언덕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느낀 거지만 티켓은 티켓부스가 아닌 미리 구매하는 게 좋을 듯하다. 줄이 상당히 길어 인파가 복잡하다…
무어인의 성
여기 또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기에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수원화성과도 같은 느낌일까 싶기도 하고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겸사겸사 길을 이동해 본다.
무어인이라는 어감이 특이해서 기억이 남는데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으로 구성된 이슬람 세력을 말한다고 한다.
이베리아반도에는 8세기경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했었으며 약 7세기 동안 통치를 이어나갔다. 잠깐의 침략에 의한 약탈이 아닌 수세기에 걸친 장기간의 통치기였고 당시 과학이나 건축 그리고 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무어인의 성은 8~9세기경 이슬람 세력이 포르투갈 중부 지역을 지배하던 시기에 군사적 요충지로 처음 세워졌다.
당시 신트라는 리스본으로 가는 주요 통로였기에 이곳을 지키는 게 수도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 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험난한 언덕 꼭대기에 돌을 쌓아 성벽을 둘렀고 외부 침입을 감시 및 피난에 사용되는 요새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성이 지금과도 같은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9세기 후반부터 기독교 세력이 점차 남하하면서 전투가 빈번해지자 무어인들을 견고한 방어를 위해 성벽을 더 두껍게 쌓았고 망루와 저장시설을 추가로 증축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2세기 중반 포르투갈의 초대왕 알폰소 엔히크가 리스본을 정복하면서 이 성 역시 기독교의 세력에 들어왔고 그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되다 19세기 페르디난드 2세 왕이 신트라 일대를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복원하면서 지금의 관광객들이 마주하는 성의 모습이 갖춰졌다고 한다.
고지대의 성곽을 올라 주위를 둘러보면 이 일대의 주택가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전경과 함께 수성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중요한 요충지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오랜만에 허겁지겁 머리에 지식과 경험들을 밀어 넣으니 금세 허기가 지는 기분이다.
가이드가 동행해서 설명해 주는 걸 들으며 정해진 노선을 걷는 차려진 밥상을 먹는 경험과는 꽤 다른 기분이다.
이동할 장소에 대해 부족하지만 조금씩 찾아보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 머무르며 바람 잘 부는 바위에 걸터앉아 만족스러울 때까지 주위를 둘러보며 이 장소를 만끽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이다.
신트라에서 페니궁전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를 오가는 버스 일일권을 구매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다시 신트라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점점 몰려오는 허기짐에 근처 식당들을 뒤지던 중 살면서 신트라에 다시 올 일이 얼마나 있을까 하며 신트라 역 주변에 있는 평이 좋은 식당 중 하나로 골라 들어갔다.
해산물(갑각류) 수프와 스테이크를 주문하였고 음식은 크게 모난 부분이 없었기에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맛인 듯하였다.
체감상 순례자의 길에서 자주 먹었던 메뉴델디아 고급형 정도 되는 거 같다.
디저트를 뭘 먹을까 느긋하게 고민하는 중 식당에 웨이팅이 생겨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혼자 테이블을 쓰는데 미안해 그냥 디저트는 근처 카페에서 먹기로 하고 얼른 자리를 비켜줬다.
마침 근처에 카페들이 있었고 에스프레소 한잔을 털어 넣으며 다음 행선지인 호카곶을 향한 동선을 확인했다.
다시 신트라역 앞 버스정류장으로 와서 호카곶행 버스를 탑승했다.
아침에 발권한 일일권 티켓에 대해 사용가능한 호카곶행 버스 노선이 있다고는 하는데 배차간격이 상당히 길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조금 아쉽지만 버스비를 이중으로 지출하기로 하고 다른 회사의 버스를 탑승하고 이동하기로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몇 유로를 아끼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너무 시간이 아까운 노릇 하니겠는가.
이 정도는 시간을 돈으로 사기로 한다.
마침 역 앞 정류장에서 출발을 대기 중인 신트라행 버스가 대기 중이었기에 호주머니 속 동전으로 버스요금을 계산 후 버스에 여유 있게 탑승했다.
도착지까지 거리는 약 한 시간 내외로 도착하는 거리였으며 가는 길은 한산하고 조용한 마을버스를 타는 기분이었다.
평탄한 초록빛 들녘사이의 차도에서 버스 한 대만이 이동 중이다.
조용히 버스창문을 열어 창가로 밀려오는 바람과 더불어 이 한적한 길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노래와 함께 지나간다.
어린 시절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파트 단지는커녕 논밭이 가득한 시골에 살았는데 그 당시 학교를 마치고 실내화주머니를 쫄래쫄래 들며 혼자 집에 가는 길이 이런 느낌이었던 걸로 선명히 기억한다.
조용한 들녘에 바람만이 오가는 길. 사방에 초록빛 사이로 버스 한 대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던, 걱정이라고는 그저 좋아하는 만화 프로그램을 못 볼까 봐 서둘러 집에 가는 게 걱정의 전부였던 어린 시절
그때를 회상하며 나를 시끄럽게 하는 걱정을 창밖에 잠시 던져두고 평온함만을 마음에 태워 이동하기로 한다.
걱정근심 내려두고 탑승한 버스는 어느덧 한 시간가량을 이동했고, 목적지의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길을 따라가니 바다 앞 기념비와 옆 빨간 등대가 보이는 장소를 쉽게 발견했다.
차분하게 들뜬 마음을 안고 멀리 보이는 기념비를 향해 다가간다.
목적하는 장소가 눈앞에 가까워질수록 멀리서부터 불어오던 음악소리가 선명해진다. 관광명소나 분위기 좋은 곳에는 항상 이 구역을 책임지는 거리의 악사들이 있었고 이곳도 마찬가지로 비석 옆 이 배경에 걸맞은 BGM을 책임져주는 악사가 있었다. 나는 차분한 선율을 따라 해안만을 바라보며 마저 걸었다.
가까이서 보니 제법 큰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으며, 기념비는 과거 유럽인들은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고 이곳에 돌탑에는 포르투갈의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단순하지만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이 문장은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호카곶에 적절히 어울리는 듯하다.
곶이라는 단어가 조금 생소했지만 바다 쪽으로 부리처럼 뾰족하게 뻗은 육지라는 뜻이란다. 한국에 손모양 조각상으로 유명한 호미곶이 있고, 가을을 기다려지게 하는 꽃게의 어원도 뾰족하게 나온 게 곶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꽃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니 알고 보면 꽤나 친숙한 단어였다.
배경음악이 잠시 멈춰진 시간에 맞춰 난간에 걸터서서 차분히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탁 트이는 바다처럼 마음도 트인다.
얼마 뒤 다시 음악이 시작되었고 나의 걸음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난간을 따라 쭉 이동하다 보니 길이 좀 난해한 내리막길이 보인다.
마침 등산화도 신었겠다 호기롭게 이 길을 내려가 보기로 한다. 순례자의 길을 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걷는 거라면 뭐든 자신이 있었기에 일말의 고민 없이 이동했다.
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슬리퍼나 크록스를 신고 이동이 매우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좋지 않았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이 패키지투어 관광객이기도 하고 길 자체가 험했기 때문에 이 길을 오려는 사람은 많은 인파 중 나를 포함해 두세 명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내려오고 나니 역시 기대에 걸맞은 풍경이 펼쳐진다.
발끝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심히 내려가다 보니 다소 평평한 바위가 보여 걸터앉아 차분히 해안계곡을 내려다본다.
코메르시우 광장 앞바다와 상반된 느낌이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사람 발길에 의한 길의 흔적이 희미했으며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는 이중주처럼 들려왔고 원초적인 느낌의 해안계곡의 초목들은 이중주를 듣는 공연장의 관람객처럼 바람에 몸을 실었다.
육지와 맞닿아있는 곳에는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고 에메랄드빛과 은빛이 교차되는 윤슬이 빛나는 해안 만.
주위에 사람은 없고 바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소리 그리고 파도소리만이 밀려온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남는 소리와 색감은 이곳에 오랜 시간 머물게 하였다.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며 평평한 바위에 앉아 목 좋은 곳에서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에그타르트를 꺼내먹으며 이곳을 차분히 담아간다.
흡사 울릉도에 대풍감에 이국적인 느낌을 가미한 느낌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호카곶에서 방황을 하다 다시금 신트라행 버스를 탑승했고 연이어 리스본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해 해 질 녘이 다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이런 식의 자유여행이 세세히 볼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몰려오는 피로감으로 셈을 치르는 듯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장기간 오게 될 때는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것도 좋겠다.
5일 차
느지막이 일어나 오늘 뭐 하지 하는 게으른 고민은 점심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게으른 마음은 결국 익숙함을 찾게 되었고, 마침 생각나는 지난번에 방문했던 한식당에 재방문하여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주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처럼 남김없이 다 먹었다.
얼큰한 게 들어가니 눈이 트이는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화시킬 겸 아줄레르 박물관에 들러보기로 한다.
식당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이동하였고 박물관 근처에서 하차 후 이동한다.
리스보아 카드를 3일권과 2일권 이렇게 구매하였기에 오늘이 마지막 사용기간일이었고 마지막까지 알차게 써보기로 한다.
-아줄레르 박물관
광장을 벗어나 도심 안쪽으로 들어서자 전날의 호카곶의 파도와는 상반되는 차분한 거리의 분위기가 이어졌고, 오래된 수도원 같은 건물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박물관 입구는 화려하진 않지만 특유의 고요함이 감돌아, 걸음의 속도가 알게 모르게 느려졌다.
아무래도 주요 관광지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한적했고 입구부터 여유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복작복작한 관람보다는 역시 하나하나 한적하게 뜯어보는 관람이 좋지 않던가. 구역당 1-4명이 머물정도로 각 세션에서 서로 겹치는 동선 없이 관람이 진행되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시대별로 배열된 아줄레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기 작품들은 무어인 영향이 남아 정교한 기하학 문양을 품고 있었고, 색감은 다소 절제되어 있었다.
타일 하나하나가 장식이 아니라 ‘벽을 구성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조금 더 이동하자 푸른색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에서 보던 파란색과는 달리, 이곳의 푸른빛은 건물 안쪽에서 잔잔하게 번지는 색이었다.
수도원의 두꺼운 벽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오래된 공간의 결을 따라 흘러가듯 배어 있는 듯하였다.
중간쯤에 자리한 성당 공간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금박의 장식과 세월이 깃든 나무 냄새, 천장에 울리는 낮은 잔향이 한데 섞여
조용한 빛 속에서 종교적 공간 특유의 두툼한 정적을 만들고 있었다.
편안한 중압감에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성당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아줄레주는 이 공간에서도 존재감 가득한 조연처럼 벽을 채우며, 오랜 역사를 품은 묘한 깊이감을 더해주는 듯하였다.
잠시 쉬어가는 구절에서 잠시 책갈피를 넣어두듯이 성당에서 잠시 쉬어가며 지금 이곳을 멀리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막바지쯤에 다다를 때쯤
전시관 끝자락에서 마주한 ‘리스본 파노라마’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약 36미터에 이르는 긴 벽을 따라 18세기의 리스본이 파란색 톤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 강, 산, 건물들이 흐르지 않는 시간의 조각처럼 배열돼 있었다.
그 앞에서 잠시 서 있으니
반복적인 타일의 배열이지만 생동감 있게 살아나는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도시가 이 작은 타일들에서 살아 움직였을 시절이 조용히 떠올렸다.
마지막 구역에서는 현대적인 아줄레주들이 이어졌는데, 색도 선도 자유로워지며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타일의 나라’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과거부터 현재의 시간순으로 이어진 관람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오후 햇빛이 길 모퉁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전날 호카곶에서 느꼈던 자연의 거친 고요와,
오늘 박물관에서 마주한 인공의 고요가 마음속에서 나란히 놓였다.
둘 다 다른 방식으로 조용했고, 다른 방식으로 평온했다.
그 차분한 결이 리스본의 하루를 또 하나의 색으로 완성해 주는 듯했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금 루시우광장에 도착했다.
이 리스본 여행의 시작과 끝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을날씨에 햇살은 따갑지 않고 부드러워 걷는 길이 산뜻했다.
여전히 주변에는 시선을 끌어들이는 건물들이 즐비했으며 그렇게 한눈을 팔며 도착한 광장에는 기대한 대로 여유로움이 물씬 파도처럼 다가온다.
아이들은 파도의 넘실거림에 밀고 당김을 즐기는 듯하였고 나는 바로 옆 난간에 걸터앉아 차분히 이 도시를 둘러본다. 즐거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왠지 나도 신발을 벗어던진 후 물에 들어가 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무턱대고 실행하기에는 이제는 걱정 많은 어른의 모습이었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고, 차분히 앉아서 둘러보기 좋은 바로 옆 식당에 가서 디저트 겸 음료를 주문 후 나 나름대로 이 평화로움과 들뜸을 즐기기로 한다. 에이드 한잔으로는 아쉬워 훈연향을 녹인 칵테일 한잔과 함께 이 광장에 녹아들었다.
느슨해진 마음과 함께 남는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하던 차 생각해 보니 대항해시대의 중심지에 왔는데 아직 배 한번 안 타봤다는 게 생각나 바로 근처 선착장에 가서 유람선을 타기로 계획한다. 짧은 고민을 마치고 바로 광장 옆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도착해서 보니 각 구역별로 유람선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시간이 그렇게까지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가장 빨리 탑승하는 것으로 구매하였고 오랜 기다림 없이 유람선에 탑승이 이뤄졌다.
유람선별로 코스는 크게 상이하지는 않았으며 이동하는 구간은 광장 앞 선착장을 시작으로 벨렝지구에서 발견기념비를 지나 벨렝탑을 보고 유턴하는 코스였다.
에그타르트를 사기 위해 이미 서너 번은 이동한 길이여서 눈에 상당히 익었지만 어떠한가. 바다에서 보는 보습은 또 새롭지 않겠는가.
그렇게 유람선에 승선한다.
도착해서 보니 각 구역별로 유람선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가장 빨리 탑승하는 것으로 구매하였고 오랜 기다림 없이 유람선에 탑승이 이뤄졌다. 유람선별로 코스는 크게 상이하지는 않았으며 이동하는 구간은 광장 앞 선착장을 시작으로 벨렝지구에서 발견기념비를 지나 벨렝탑을 보고 유턴하는 코스였다. 에그타르트를 사기 위해 이미 서너 번은 이동한 길이여서 눈에 익었지만 어떠한가. 바다에서 보는 보습은 또 새롭지 않겠는가.
배를 타고 이동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새파랗던 하늘은 채도가 점점 탁해져 갔다.
탁한 채도의 하늘과 대비되는 노란 유람선은 사람들을 태우고 물길을 따라 나아갔다.
출항과 동시에 도시의 소음은 금세 멀어지고, 남은 것은 물결에 스치는 소리와 바람뿐이었다.
선박 위층의 난간에 기대어 있으니 리스본이 또 다른 표정으로 다가왔다.
광장이 뒤로 멀어지자 발견기념비와 벨렝탑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번 지나쳤던 길이지만 물 위에서 보니 낯선 느낌이 들었다.
강에 비친 건물과 하얀 탑의 윤곽이 흔들릴 때마다, 도시는 마치 오래된 항해의 한 장면처럼 조용히 흘렀다.
어쩌면 이 장면을 아줄레주 타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탑을 지나서 유턴하자 잠깐이지만 햇빛이 강 위에 길게 내려앉았다.
갈매기가 천천히 선회하고, 배는 일정한 리듬으로 다시 광장 쪽으로 향했다.
부드럽게 옷자락을 스쳤던 바람은 돌아가는 길 비바람으로 돌변했고 긴장감을 유발했지만 나 홀로 위층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마주했다.
루시우 광장이 다시 탁해진 시야에 들어올 때,
처음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배가 선착장에 닿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이 여행의 마무리가 조용히 자리 잡는 느낌이었다.
물론 비를 피해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 잠시동안 한바탕 비가 쏟아졌고 깨끗해진 거리에서는
이곳에서의 계획된 나의 체류시간이 끝났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라는 사인의 신호등처럼 거리에는 밤을 맞이하기 위한 조명들이 건물들과 바닥의 물웅덩이에서 빛났다.
이 신호에 맞춰 다시금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서는 지하철로 이동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퇴근시간이었고 지하철 역사 내에는 그로 인해 많은 인파들이 있었다. 복잡한 인파들 사이로 마침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 이끌리듯 소리의 근원지로 이동했고 지하철에는 배치되어 있는 피아노 한대에는 지나가는 행인으로 보이는 소녀에 의해 연주되고 있었다. 때마침 연주되는 곡은 찰리푸스의 See you again였으며 익숙한 멜로디이기도 했지만 떠나기 직 전 내가 죽기 전에는 이곳에 적어도 다시 한번은 다시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이 곡이 더 귀에 강렬히 남았나 보다.
곡이 끝났고, 나는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는 다시 올 그날을 기약하며 이 길을 마저 떠난다.
가는 길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중간에 길을 헤매다가 멀리서 보이는 화려한 외관을 따라서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경유행 버스로 바욘까지 가는 장시간 버스를 경험을 해봐서인지 다음 행선지인 바르셀로나까지는 심야버스로 이동하기로 계획했고, 늦은 시간 바르셀로나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했다.
멋져 보이는 외관을 따라 터미널 안에 들어가면 저녁이라 더 그런지 상반되게 음침한 느낌이 들었고 내부에는 노숙자분들이 상당히 있었으며, 입구 쪽에는 노숙자분들을 위한 무료음식 배포로 인한 긴 줄이 눈에 띄었다.
괜스레 움츠려들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무슨 맛있는걸 주나? 궁금한 마음에 줄 옆에서 기웃대다가 마저 버스가 정차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을 위치를 찾아 헤매다 결국 터미널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탑승위치를 가까스로 확인하였다. 한 시간 이상 미리 와서 다행이지 딱 맞춰 왔다면 버스탑승 위치를 헷갈려 못 탈 거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탑승하였고 리스본에서 출발해 마드리드를 거쳐 바르셀로나까지 이동하는 이 동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은 14시간으로 파리에서 탑승했던 버스와 거의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돌이켜보면 계획과 함께 시작은 호기롭게 진행되었으나 과정과 결과를 보면 고개가 갸웃하는 상황이 꽤나 많이 발생된다.
이런 만용은 다음부터는 지양해야지… 하면서도 왜 자꾸 시도하는지 모르겠다. 또다시 14시간 동안의 버스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바르셀로나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