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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큰철 Feb 10. 2023

내게 하고 싶은 말

<데미안>

 <데미안>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권장도서 였다. 물론 판타지와 무협에 심취해 있던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제야 읽어보니 과연 중학생이 읽을만한 도서였을까 물음표가 띄워진다. 하지만 이 책을 권장했던 어른들의 중학생 시절은 지금보다 험난했을 터이니 그럴 만도 했겠다. 또한 흔히들 말하는 중2병. 내 안의 흑염룡과 대화하는 시기가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만난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리는 것도 신기하다.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나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기보다는 주변의 기대에 곧잘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새로 만난 친구들, 재미를 붙이게 된 게임들... 내 만화를 좋아해 주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반에는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둘이나 있었다. 나는 쉽게 그림의 꿈을 접었고 흔한 남자애들의 관심사인 게임에 몰두했다. 누군가 내게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물었을 때, "만화가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기엔 실력이 궁색했고, 막연히 게임 개발자가 된다고 말하는 게 그럴듯했다. 그 대답은 부모님을 납득시키기도 쉬웠다. 그때 내 안의 세계를 진지하게 탐구했다면 지금은 다른 미래에 있을까 싶지만, 어린 시절을 핑계로 넘기기엔 나는 지금 까지 수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해 왔다.


무슨 목적으로 네가 지금 술을 마시고 있는지, 그건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네 안에 있는 것,  네 삶을 만들어가는 그것은 이미 그걸 알고 있어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을유 문화사, 100P


내 경험으로 미루어 사람은 무력감을 느낄 때 자신을 많이 돌아보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글을 쓸 때,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불의에 굴복 또는 수긍해야 할 때 등등. 잘 되고 있을 때보다는 잘 안될 때, 갑옷처럼 자신을 지켜주던 껍데기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낄 때야 비로소 알맹이를 찾기 시작한다. <데미안>의 화자 싱클레어는 우연히 했던 거짓말을 프란츠 크로머라는 아이에게 꼬투리를 잡혀 그의 말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부모님의 돈을 훔치게 하고, 누이까지 소개해 달라고 협박하는데 그 막다른 골목에서 내면의 자신인 데미안과 만난다. 만약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면 데미안과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외로움 속에서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제야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귀를 기울인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의 골은 바다만큼 깊다. 이대로 빚쟁이 피하듯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살다가는, 언젠가 인생의 핀치에 몰려 데미안을 만나 먼지 나도록 털릴게 분명하다. 그땐 아마 늦어도 너무 늦었겠지. 그래서 이제라도 빳빳했던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 일기도 쓰고 여행도 가고 사랑도 해야지. 언젠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때 내 안의 흑염룡은 뭘 하고 싶었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사진 출처: Game <ABZU> wall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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