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면 뭘 가장 해보고 싶은데?"
"드라이브스루!"
"그것 말고 좋은 것 많잖아. 멀리 여행을 간다거나, 새벽 드라이브를 간다거나."
"아니. 드.라.이.브.스.루."
특히 드라이브스루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 이미 운전 고수가 된 사람들은 내 대답에 곧잘 실망하곤 한다. 그들이 보기엔 차에 갇힌 채, 메뉴판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허겁지겁 주문을 하고 창문 너머로 불편하게 팔을 뻗어 아슬하게 카드를 건네고, 또 반대로 음식을 받는 일 '따위'가 운전을 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 '꿈' 중 하나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다.
드라이브스루. 그 얼마나 멋진 느낌을 풍기면서도, 복합적인 행위들을 포괄하고 있는 단어란 말인가! 일단 '드라이브'라는 말부터 초보운전자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운전을 외국어로 표현한 것뿐이지만 실생활 용례에 엄연한 차이가 있다. 초보운전자들이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덜덜 떨리고 차갑게 식은 손으로 핸들을 붙들며 '드라이브 간다!'라고 용맹하게 외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한껏 어깨를 말고,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애써 풀며 '운전 연습 간다'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니까. 여기에 '스루'라는 단어가 붙었다. 운전만으로도 벅찬 초보운전자에게, 운전을 하면서 '차에 탄 채로 볼일을 본다'는 건 아주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운전이 조금 익숙해진 초보운전자에게 '드라이브스루'가 게임으로 치면 반드시 깨고 싶은 '퀘스트' 쯤으로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대장정!
출근하는 길에 슬쩍 들러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 그게 드라이브스루를 진짜로 이용하는 사람들(운전고수들)의 방식이겠지만, 초보운전인 나는 다르다. 내 생애 첫 드라이브스루를 위해 나는 많은 것을 공부하고 또 계획했다. 정보의 보고, 온라인에서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를 굳이 검색해 사람들의 경험이 적힌 글들을 정독하고 그것도 모자라 유튜브에서 드라이브스루로 커피를 주문하는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이용객이 많을 것 같은 출퇴근 시간은 무조건 피해서 가기로 했고, 무려 출발 전날부터 '로드뷰'를 보며 집에서 스타벅스 DT점에 가는 길과 입구와 출구 모두를 파악해 두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긴장이 풀리진 않는다. 약간의 안심이 더해진다.)
이렇게까지 비장할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굳은 얼굴을 하고서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 DT점. 집에서 도보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스타벅스가 두 개나 있는데, 굳이 20분 거리에 있는 DT점에 가서 커피를 사서, 곧장 20분을 돌아온다는 건 참 웃긴 일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여유롭게 커피의 맛을 볼 여유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테이크아웃 한 커피는 다 식어빠진 상태로 집에서 홀짝댈게 뻔하니까. 하지만 커피는 거들뿐. 내가 오늘 완수해야 하는 퀘스트를 깨기 위해 출발했다.
도착 10분을 남겨두고, 적신호에 차가 멈춰 섰다. 보통 운전고수들은 이런 때에 한 손으로 여유롭게 핸드폰을 집어 들고, 스타벅스 앱을 열어 미리 커피 주문을 하기도 하던데. 나는 거치대에 고정된 핸드폰을 힐끔 바라보았다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핸들에서 양손 중 단 하나도 떼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을 떼면 펑 터지기라도 하는 폭탄이라도 쥔 것처럼, 후덜덜 긴장을 하면서. (심지어 나의 작은 경차엔 무려 '차로 유지 보조 장치'가 있다.)
어찌어찌 로드뷰로 봐왔던 스타벅스 근처까지 왔다. 이젠 '스무스'하게 들어가기만 하면 되겠지, 생각했던 때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도로에서 90도로 꺾어져 들어가는 입구가 한눈에 보아도 폭이 지나치게 좁았다. 여러 운전고수들의 가르침처럼, 우회전 때는 크게 돌으라는 가르침이 여기선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만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친다면 곧장 입구 근처에 서있는 기물을 파손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차를 크게 긁어먹을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내 차 뒤로 스타벅스로 들어가는 차들이 줄줄이 기차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조심조심 꺾었다.
"으악. 닿는다. 닿을까? 진짜 닿는다. 안 닿나? 닿을 것 같은데."
스타벅스 건물을 끼고 폭인 좁고 꺾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주행을 해야 한다. 앞뒤양옆으로 벽이 차에 직접 다가와 몸을 달릴 것처럼 가까워졌다가, 또 아슬하게 멀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온 신경이 운전하는데 집중을 하느라, 커피를 주문해야 하는 건 홀랑 잊을 뻔했다. 앞서가던 차가 멈춰서는 덕분에 따라 멈췄고, 브레이크를 힘주어 밟는 것을 무척이나 의식하며 창문을 내렸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벤티 사이즈로 부탁합니다!"
"네, 앞으로 이동해 주세요."
늘 마시던 메뉴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복잡한 주문은 얼마나 운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일까. 나는 아메리카노 따위 받지 않고 이 좁은 미로 같은 길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5천 원짜리 커피 한 잔 가져가겠다고, 여기서 차를 긁기라도 하면 얼마나 큰 손해인지 혼자 온갖 비관적인 상상은 다 하면서.
대망의 커피 받는 곳 앞에 이르렀다. 미리 공부한 것을 응용한답시고, 커피를 건네주는 창문이 있는 쪽에 차를 최대한 바짝 가져다 댔다. 이만하면 성공적이라 생각할 정도로 아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였다. 계산을 하고, 커피를 건네받아야 하므로 안전하게 기어를 'P'에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창문이 열리며, 휴대용 마이크를 착용한 직원이 커피를 내밀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기 위해 계산할 카드도 무려 '출발 전부터' 미리 준비해 가까운 곳에 올려두고 있었다. 이 정도면 완벽해, 생각하던 때...
콩!
나는 카드를 쥔 손을 닫힌 창문을 향해 그대로 뻗었다. 뼈에 전해지는 통증보다 남모를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당황한 탓에 이번에도 운전석 쪽 창문이 아닌, 운전석 뒤쪽 창문을 먼저 내렸다가 올린 뒤 운전석 창문을 가까스로 내렸다. 창문도 활짝 열지 못하고 소심하게 열고, 카드를 건네고 커피를 아슬하게 받아 드는 그런 어설픈 장면이 이어졌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부끄럽고 어색하고 또 민망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한껏 액셀을 밟아 집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가고 싶었다.
좁은 출구를 아슬하게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 진한 커피 냄새가 퍼졌다. 긴장한 탓에 입이 바싹 말랐기에, 커피 한 모금 마시면 더없이 좋으련만. 핸들에서 손을 절대 뗄 수 없던 나는 묵묵히 마른입에 침을 모아 삼키며 버텼다. 하지만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드디어 드라이브스루를 했다.' 운전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전을 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초보운전 딱지를 영원히 붙이고 다녀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던 막연한 불안감이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에 밀려 나가는 듯했다.
에필로그: 일주일 뒤, 버거킹 드라이브스루.
또 초긴장 상태로 들어선 곳은 '버거킹' 드라이브스루. 점심이었고, 배가 고팠다. 미국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햄버거를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상상하며 주문하는 곳에 차를 멈춰 세웠다. 스타벅스 때보다 차분하게 창문을 내리고, 주문을 하려는데 아뿔싸. 무엇을 먹을지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마침 내 뒤로 다른 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눈치 보느라 바쁜 초보운전자는 결국 6개짜리 너겟 한 봉지만 주문하고야 말았다. 콜라도 없이, 그저 너겟 6조각. 다음엔 더 멋지고 여유롭게, 먹고 싶은 걸 잔뜩 주문해서 가져갈 수 있게 되겠지. 한숨을 푹푹 쉬며 집으로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
*AI 이미지 생성도구 DALL-E로 상상력을 더해 제작된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