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단단 Dec 22. 2023

안녕? 나의 블랙독(black dog)

감지(感知)

잘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숨겨놓은 감정을 감지하는 일은 왜 이렇게 매콤하기만 한 걸까. 가끔은 바지 주머니 속 숨겨놓았던 마음이 송곳처럼 툭, 하고 나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찌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주저 없이 찔리고, 엄청난 예민함을 내뿜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머릿속은 바빠지고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물을 있는 대로 흡수해 버린 스펀지처럼 무거워졌다가, 한없이 가라앉는다.


 처음에는 단순히 ADHD 증상인 줄 알았다. 책을 한 문장 이상 읽는데 3분씩 걸리는 것도,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이는 날이 많은 것도, 한없이 우울한 공상에 빠지는 것도 그냥 바쁘고 체력이 달리거나 단순히 내 성향이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위험에 대한 불안은 지인들에게 두서없이 터져나왔고,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듯 '음...힘들었겠구나' 라는 단어로 대화가 마무리 되곤 했다. 뭐 그들도 이해는 되었다. 두서없이 전한 말에 힘이 있을리가.


생각해 보면 3교대로 뒤죽박죽인 수면패턴, 마음이 허할 때면 괜히 기웃거리며 홀짝이던 위스키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까지. 모두 예민한 제6의 감각이라는 핑계로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스트레스를 기꺼이 떠안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앞에서 웃다가 뒤돌아서면 얼굴을 바꾸고 서로의 흠을 잡으며 험담을 하던 친구들도 무서웠고 세상 모든 게 무서웠었는데, 20대 초반부터 시작된 직장생활을 잠시 느슨하게 유지하다가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결국 탈이 제대로 났는지 사람도 믿지 못하고 조그만 자극에 갑작스러운 화를 내곤 했다. 사교술은 당연히 꽝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 말곤 오래가는 친구가 몇 없다.

 특정한 상황에 사과를 받지 못했거나 무례한 말을 참고 넘어가기. 대응할만한 대답을 고르다가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모여 화가 되었고 그것이 왜곡된 채로 쌓이고 쌓여 문제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분출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것, 의심받는 상황들이 반복됐다. 또 귀로는 소리, 눈으로는 타인의 감정을 수시로 들여다보았고 이내 극도의 피곤함 속에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이해해 본다는 명분으로 '하하' 웃으며 나에게 충분히 무례했을 상황을 넘어가기 바빴다.


집안이 결국 쓰레기장이 되어가기 직전, 침대에 눌어붙어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기 전, 나는 내 상태를 가까스로 발견했고, 겨우 빨래를 돌리며 기어나가듯 방을 나서게 됐다. 첫 시작이었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자마자 우울/불안 항목 최고점수를 받으며 SSRI제재와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 글이 솔직히 누군가에게 시원한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이 우울증을 건너가는 누군가에게 최소한 가장 따뜻한 파란색을 선물해주고 싶다. 모두가 바깥으로 다시 나오길 바라며, 나의 파랗고 깊은 우울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광장으로 나오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할까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