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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Dec 28. 2023

언어는 삶의 재료다

첫 심리상담 일지


2022년 겨울, 첫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때 쓴 글이다.

연재 중간중간, 예전에 쓴 글을 곱씹은 뒤, 다시 올리는 작업도 할 것이다.



 결국 일주일 1회 정도의 텀을 두고 심리 상담을 받는다. 갑자기 가슴속의 답답함을 이겨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 특정한 고민이 생각나면 이유 없이 호흡이 가빠지고 얕아졌다. 겨울이었지만 땀이 자주 났다. 온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기차를 타고 가던 어느 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 거기 상담센터죠? 지금 너무 답답해서 못 참겠는데. 그냥 여기다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언제부터 상담이 가능할까요?”




 그곳은 ‘M 심리 상담센터’였다. 병원이 아닌 상담센터에 전화를 건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도 의아한 부분이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고 느낀 건 도대체 어떤 직관에서 비롯된 것일까.


 첫회 상담을 받고 난 뒤 조금 더 상담을 받아보기로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고민을 펼쳐야 하는 것은희망과 부담으로 다가와 묘한 기분을 낳았다. 그렇게 첫 무료상담을 하고 횟수 미포함 4회분의 상담을 매주 1회 50분씩 진행했다.



다행히 전문가를 잘 만난 덕분인지 그냥 두서없이 펼치는 마음이 정리되고 있었다. 뭔지 모를 응원을 받고 있는 느낌도 받았다. 그분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면 긴장되지도 않고 수다스러워지는 나 자신이 보여서 재잘재잘 떠들다가 정해진 상담시간을 1-2분씩 점점 더 초과하는 일도 있었다. 원래의 나는 말하는 시간을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남기는 사람이었다.


“단단 씨는 아직 세상을 살고 싶어 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이에요. 단지 그게 사람들과 타협되기 힘들 뿐이라 답답한 느낌을 자주 받는 것 같아요. 조금 더 봐야겠지만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싸움을 회피하려고 에둘러 말하는 연습이 습관이 되신 거 같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의 집중력도 떨어지고, 대화 전달의 효과가 떨어지지요.’


다행히 약물치료를 권할 만큼의 상태는 아니고 그나마 경증의 우울과 중등도의 불안감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안의 수치도 약물치료를 권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간다면 언제든지 치료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겪은 일들로 감정적인 혼란이 심해져 정리를 잘 못하는 상태라 매주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나의 이야기를 들어본 선생님은 마지막에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평소에 쓰던 글처럼 추상적으로 쓰는 것이 아닌 정확하게 나의 감정을 나열해 보는 글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의외로 속이 시원했다. 편견과 관심과 설렘과 비판하려는 눈빛이 아니라 오로지 응원을 받으며 더듬거렸지만 응원받으면서 50분 내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어 좋았다. 단지 충동적이고 오랜 기간 내 이야기를 공감받지 못했던 환경에서 노출되어 약해진 부분이 있었고, 그 부분을 조금 더 강화하는 연습을 해보자 했다.





솔루션 중의 하나가 바로 글쓰기였다. 어디선가 많이 봐서 익숙해진 감정일기 쓰기.


상담사와 이야기해 보니 나는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힘들다. 하지 말라. 불쾌하다. 안 되겠다. 불안하다. 기쁘다.’라는 직접적인 정서 표현이 결핍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와 대화를 할 때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좀 충격을 받았지만(나는 진짜 그 사실을 몰랐다) 한편으로 속이 시원했으므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상담사는 옆에 놓여있던 감정표현 카드를 집어 들곤 그것을 쫙 펼쳐 보였다. 그것은 ‘기뻐요’ ‘슬퍼요’ ‘행복해요.’ ‘감사해요.’ ‘감동이에요.’라는 단어가 적힌 아주 심플한 카드였다. 하루에 한 번씩. 아니 일주일에 한 번씩단단씨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직설적으로그러나 부담과 긴장을 내려놓고’ 감정을 살펴보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떠올린 건 역시나 글이었고. 감정일기 써보기라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글은 많이 썼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조금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워드의 빈 화면에 상담사가 제시하던 감정 단어로 이루어진 나의 생각을 치자 왠지 모르게 일기장과 모니터를 덮어버리고 싶더라.



 글도 토막 난 것처럼 이상해 보이고 도대체 적응하기 가 힘들었다. 대체 그동안 난 어떤 글을 썼길래 이렇게 힘든 거지.라고만 생각했다. 머리가 아파서 생각할 힘도 없이 sns의 물결에 생각을 맡기며 타고 흐를 뿐이었다. 그러다가 몇 분이 흐르고 씨네 21 김혜리 기자의 글을 보게 되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 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 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 간다.



 어찌 보면 글을 쓰지 못하고 전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이유도, 내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표현할 언어라는 재료들을 볶아주지 못하고 제대로 썰어주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뱉어내고 살아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생각은 뱉어내는 기능이 없다. 생각은 가득한데 언어를 배출해 내는 기관인 입으로는 정작 뱉어내지를 못하니 수많은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터져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올해부터는 힘들어도, 짧고 뭉툭하지만 감정표현으로 이루어진 글을 써보려고 한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썰어내고 볶기도 해 보고, 무쳐도 보고 그냥 먹기도 해 보고. 그렇게 다시 글을 써나가야지.


 갑자기 긴 글을 쓰는 건 아직 무리다. 보이기 싫은데 보여야 속이 풀리니 이처럼 모순적인 상황 속 불편한 마음도 적응되지 않는다. 이런 걸 방어기제라고 배웠던 거 같은데. 아마 나와 나의 싸움은 평생 지녀야 할 어떤 것이겠지.


모든 건 때가 되면 정리가 되겠지.

2022.Ja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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