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듣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슬픔을 버리고 외면하며 살까. 우린 얼마나 우울과 슬픔이라는 단어를 타인의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고 있는 걸까. 누군가 나의 슬픔과 불안을 쓴 글을 보고 위로하는 날에는 김완선의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듣는다.
글을 쓰다 보니 응원을 받는 일이 많다. <아, 무심코 한번 내뱉은 단어에 우리는 옛날이 되었습니다>를 독립출판 하고서는 한동안 나라는 사람의 페이지를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어주신 분들의 사랑과 응원에 많은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는 법. 많고 많은 응원 상자 중에는 뾰족한 송곳 같은 말 또한 도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거리를 좁혀와 내 모든 슬픔을 책 한 권으로 다 알아버렸다는 듯 ‘어때 내 말 맞지?’라는 모습으로 나를 평가하고 사라지던 분들도 제법 있었다. 합평 수업은 따로 들어본 적 없지만 그 분위기를 갑자기 체감해 버리는 느낌이어서 한동안 조그만 평가에도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예술계와 동떨어져 사는 나조차도 이런데, 이런 걸 매일 듣고 뭘 써내야 하는 게 일상인 사람들은 과연 무슨 마음으로 살아가는 걸까? 현실의 결정을 내릴 땐 확실한 단어를 쓰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늘 가늠할 수 없다고 표현한다. 현실의 세계와는 달리 감정의 세계에서는 ‘1+1은 2다.’라고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일들이 항상 공존하고 있으니까.
'다음 책은 밝은 글로 쓸 거지?'
'네 글은 도대체 젊은 애 글 같지가 않아. 인생 다 살았니? 쓰는 글마다 왜 이렇게 우중충해.'
'네 글을 보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다음에는 밝은 글로만 좀 써주길 바란단다.'
이럴 땐 차라리 슬픔을 아는 나의 피에로에게 위로받는 게 편하다. 누군가는 그런 말은 간단히 무시해 내는 게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국 룰이라며 참고 무시하는 게 미덕이라는 말로 마음의 병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혹시 그게 정말로 위로의 뜻이라고 알고 쓰는 사람이라면, 또는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뿐이라고 비난한다면, 더 이상 대꾸하지 않겠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히긴 어렵지 않을까.
우리가 평소에 썼던 단어 중에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본 단어가 더 많을까 아닌 게 더 많을까? 나도 글을 쓰면 서다 시금 곱씹어보는 단어가 많아졌다. 현실을 잊기 위해 잠깐 짓는 억지 웃음보다 나에게는 조금 더 진심인 '나만의’ 우울을 다듬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글을 쓴다. 우울에는 배울 것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가며.
그런 이유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은 우물 같은 우울이라면 , 억지로 웃는 게시물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세상이 남겨놓은 질문 같은 우울에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날이다. 우리는 세상의 큰 슬픔으로부터 질문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되었다. 세상의 크기에 비해 개인의 우울은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이 모여 이룬 것이 세상인데 말이다.
기쁨과 더불어 필요한 슬픔 혹은 우울감이라는 감정은 어둡다는 이유로 터부시 돼야만 하는 감정일까? 치유받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왜 항상 우리는 끝이 밝은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까. 해피엔딩만이 치유의 결과일까?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는 행동에서 드는 우울감도 그렇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큰일이 지나가면 한번 쏟아낼 수 있게 되는 것. 울분이든 오열이든 뱉어내고 그 과정만 따로 기록하는 것도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모든 부재는존재로부터 온다는 어떤 책의 문장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우리가 기꺼이 한데 모여 우울을 돌아보지 않을 이유는 무엇일까.?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피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피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피에로가 좋아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피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피에로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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