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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Dec 25. 2023

난 차라리 슬픔 아는 피에로가 좋아

김완선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듣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슬픔을 버리고 외면하며 살까. 우린 얼마나 우울과 슬픔이라는 단어를 타인의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고 있는 걸까. 누군가 나의 슬픔과 불안을 쓴 글을 보고 위로하는 날에는 김완선의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듣는다.


글을 쓰다 보니 응원을 받는 일이 많다. <아, 무심코 한번 내뱉은 단어에 우리는 옛날이 되었습니다>를 독립출판 하고서는 한동안 나라는 사람의 페이지를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어주신  분들의 사랑과 응원에 많은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는 법. 많고 많은 응원 상자 중에는 뾰족한 송곳 같은 말 또한 도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거리를 좁혀와 내 모든 슬픔을 책 한 권으로 다 알아버렸다는 듯 ‘어때 내 말 맞지?’라는 모습으로 나를 평가하고 사라지던 분들도 제법 있었다. 합평 수업은 따로 들어본 적 없지만 그 분위기를 갑자기 체감해 버리는 느낌이어서 한동안 조그만 평가에도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예술계와 동떨어져 사는 나조차도 이런데, 이런 걸 매일 듣고 뭘 써내야 하는 게 일상인 사람들은 과연 무슨 마음으로 살아가는 걸까? 현실의 결정을 내릴 땐 확실한 단어를 쓰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늘 가늠할 수 없다고 표현한다. 현실의 세계와는 달리 감정의 세계에서는 ‘1+1은 2다.’라고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일들이 항상 공존하고 있으니까.


'다음 책은 밝은 글로 쓸 거지?'


'네 글은 도대체 젊은 애 글 같지가 않아. 인생 다 살았니? 쓰는 글마다 왜 이렇게 우중충해.'


'네 글을 보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다음에는 밝은 글로만 좀 써주길 바란단다.'


이럴 땐 차라리 슬픔을 아는 나의 피에로에게 위로받는 게 편하다. 누군가는 그런 말은 간단히 무시해 내는 게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국 룰이라며 참고 무시하는 게 미덕이라는 말로 마음의 병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혹시 그게 정말로 위로의 뜻이라고 알고 쓰는 사람이라면, 또는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뿐이라고 비난한다면, 더 이상 대꾸하지 않겠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히긴 어렵지 않을까.


우리가 평소에 썼던 단어 중에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본 단어가 더 많을까 아닌 게 더 많을까? 나도 글을 쓰면 서다 시금 곱씹어보는 단어가 많아졌다. 현실을 잊기 위해 잠깐 짓는 억지 웃음보다 나에게는 조금 더 진심인 '나만의’ 우울을 다듬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글을 쓴다. 우울에는 배울 것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가며.

 

그런 이유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은 우물 같은 우울이라면 , 억지로 웃는 게시물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세상이 남겨놓은 질문 같은 우울에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날이다. 우리는 세상의 큰 슬픔으로부터 질문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되었다. 세상의 크기에 비해 개인의 우울은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이 모여 이룬 것이 세상인데 말이다.


 기쁨과 더불어 필요한 슬픔 혹은 우울감이라는 감정은 어둡다는 이유로 터부시 돼야만 하는 감정일까? 치유받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왜 항상 우리는 끝이 밝은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까. 해피엔딩만이 치유의 결과일까?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는 행동에서 드는 우울감도 그렇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큰일이 지나가면 한번 쏟아낼 수 있게 되는 것. 울분이든 오열이든 뱉어내고 그 과정만 따로 기록하는 것도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모든 부재는존재로부터 온다는 어떤 책의 문장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우리가 기꺼이 한데 모여 우울을 돌아보지 않을 이유는 무엇일까.?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피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피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피에로가 좋아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피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피에로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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