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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Dec 29. 2023

무기력증 치료하러 가는데, 무기력 때문에 못 갔습니다.

병원을 못가.

브런치북 소개글에서 썼다시피 나는 우울증과 불안증/ 무기력증/ADD가 혼합된 진단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진단명은 아직 본 적 없지만, 의사와의 면담을 토대로 나의 진단명은 단순히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담당 의사는 나와 첫 상담을 하고 난 뒤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일단 무엇이 ADD까지 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일지 살펴보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궁금한 점을 준비해 갔고, 충분한 질의응답 후 처방해 준 약들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약물과 소량의 수면제를 처방받고 열심히 복용하자, 효과가 엄청 잘 받았다.

 

단기간에 충동절제와 불안감소가 되자, 계획도 평소대로 잘 짜고 몸도 가벼워졌다.(고 믿었다.) 나의 상황을 알린 언니에게 우스갯소리로 이 약이 28년 동안의 서러움을 씻겨줬다. 고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내게 서울 소재의 국공립병원의 자체 필기시험에 합격이라는 결과물을 주기도 했다. 나는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그러나 약의 뚜렷한 효과는 딱 한 달. 효과는 있었겠지만 반 정도는 플라세보에 가까웠던 걸까. 나는 면접까지 치를 수 있었지만 그 후로 방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별 다른 이유도 없었고, 가끔 배달 음식이나 배송된 책을 받는 일을 제외하곤 말이다. 처음엔 그냥 심신이 지쳤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내향형 98퍼센트의 인간. 면접 때 2%의 외향성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뜻) 했나 보다 생각하고만 있었지. 살벌한 그날의 경쟁률에 영혼이 그 순간 진짜로 빠져나가 버린 게야.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보통 사람들보다 에너지가 많이. 없었던 사람이니까.


 가끔 배달 음식이나 주문한 책을 받는 것. 그것도 엄연히 외출이기는 하지만 바깥 '활동'이라고는 이름 붙일 순 없었다. 활동을 하려면 씻고 갖춰 입고 최소한 버스정류장 한바퀴는 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한의 단장은 해야 하는데, 당장 샤워기 틀기도 힘들고,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며칠이 아니라 한달 가까이 그러자 방 상태는 눈에 띄게 더러워졌다. 어떻게든 나가려고 알라딘 중고매장에 갈 계획을 세워도,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들리던 카페로 가서 무슨 커피를마시자. 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치라고 느껴질만큼.

 세상의 온갖 것들에게 흥미가 떨어졌다. 마치 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내가 어딘가로 팔랑팔랑 허공을 떠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당일(병원진료)이면 혼자서 압박에 시달려 더 숨어버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됐다. 아니면 남아있는 옷 중에 괜찮아 보이는 옷을 고르고, 좀 미워 보이겠다 싶은 부분들은 손을 모아 쥐거나  외투 안에 꽁꽁 싸맸다. 준비도 못했으면서 또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는 싫어서 페브리즈를 반통 가까이 뿌리고서 후닥닥 나갔다가 돌아온 기억도 있다.


 집 앞 국밥집과 도시락집을 직접 가서 먹는 일을 즐겼던 나는 배달 음식을 시키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숟가락은 채 반도 뜨지 못했다. 남은 음식을 치우기도 힘들었다. 먹지도 못하면서 먹고 싶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몰아서 먹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음식도 진짜 남들이 하는 노력의 100배는 더 끌어올려야 겨우 버리러 나갈 수 있었다. 몰골은 당연히 말도 아니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이대로 나가면 모두가 코를 그러쥐고, 날 혐오하는 눈초리로 볼 것만 같았다. 씩 웃으며 그대로 책을 집어 들고서 인사를 한다고 한들, 주변 이웃들이 나를 당장이라도 보호대상이나 혐오하는 사람 취급하며 구청이나 이런 곳에 민원 넣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혹여 악취가 심해져서 고독사로 오인하고 신고를 하진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그 당시 청년 고독사에 대한 기사가 많았다.)


 평소 재밌게 해 오던 책 읽기, 글 쓰기, 사람들과 톡 하기, 커피 마시러 나가기에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집에서 그냥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그저 멍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군가 나를 그 자세 그대로 발견한다면 ,

'이단단 양 침대에서 숨 쉰 채 발견.'이라고 할 만한. 그런 자세로. 어떻게든 숨은 쉬고 있었던 단단 양이라는 말이 나왔겠지.


 전직 간호사였지만, 외과병동 출신이다. 정신과는 학부 때 잠깐 배운 게 전부. 아무리 정신의학과 컨설트를 보는 환자들의 신경외과 병동에서 정신과 약물을 접했어도 졸로피드, 졸피뎀, 자낙스의 개수를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세었던 경험과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일일이 약의 효능을 검색하고 대입해도 경험하지 못한 의학적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처럼, 이제 막 자신의 상태를 인식한 우울 에피소드 환자였던 나는. 정신건강의학 교과서에서 보았던 증세가 보일라 쳐도, 괜히 어쭙잖게 지식을 남용하게 될까 봐 작은 증상에도 무조건 의사와 상의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심각한 문제는 무기력이었다. 내 안에 숨어있던 우울과 무기력을 치료하려면 나가야 하는데 나가는 게 힘들어서 치료를 못 받는다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침대에 누워서 웃었다.) 한번 엄청 큰 용기를 내고 옷만 겨우 갈아입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우울이 덜 해지면 지금껏 수면 아래에 있었던 무기력이 고개를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거라고 해주셨는데, 선생님의 말에 용기를 얻고 약을 다시 복용했지만 막상 병원에 갈 날짜가 다시 다가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길을 상상할 때면 지하철의 습하고 어두운 계단에서 나던 역한 냄새가 갑자기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혹시 그게 내 냄새는 아닐까. 지금 내 상태. 내 상황에 대한 알림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들로 불안해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일까. 그냥 샤워만 하면 되는데, 옷도 다 빨아놓고 말려놨는데, 오늘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오늘 류이치 사카모토 영화를 보려고 계획했는데 취소했다. 이제는 다이어리에 일정을 적으면 연필로 초필을 해버린다. 수정되어도, 짜증 나지 않게. 아주 연한 HB연필로 지워서, 모른 척해버려야지 (그러면서 미친년이라고 혼자 자책한다)  빨리 이 늪에서 헤어 나오고 싶다. 아니, 이런 마음 때문에 더 깊숙이 무기력의 늪에 빨려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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