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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

나는 그 순간 여름이 되었다.

by 이단단


맞아, 나는 여름이었다.


장마기간 동안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비를 바라보면서 나는 또다시 깨닫는다. 보통 때라면 나는 겨울을 시작하는 해(年)인 1월에 태어났기에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나를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사실 여름이었다.’ 이렇게 머금고 머금으며.


장마기간 동안 비를 맞고 태풍을 맞이하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여름에 모두 끝마쳐야 할 일들이 아닐까.

나는 여름이니 이 모든 시련을 겪는 것, 어쩌면 지금 모두 끝마쳐야 할 일들을 한꺼번에 겪은 것이라서 힘들었던 것이겠지. 내가 여름이라서, 이토록 당연한 이유로.




나는 여름이다.


태풍과 비를 모두 맞아야 비로소 푸릇해지고 쨍쨍해지는 그런 여름, 그러니까 나는 지금 잘 해내고 있다. 벌써 몇 번의 장마와 태풍을 겪었을 텐데도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살아내고 있으니까. 그러니 따로 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만, 담대해지기만 하면 된다. 마음 속 불안이 쌓이면 늘 그래왔듯 자연에 숨어 그들이 짓는 온화한 표정과 품으로 들어가 앉아 쉬어가면 된다. 그러니 내리는 빗소리를 벗 삼아 조금만 차분해지도록 하자.


나는 태풍과 장마가 익숙한 여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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