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음과 다르게 앞서가는 다짐을 새해가 되자마자 신년 다이어리에 가득 적었다. 그중 하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쓴 사강처럼 한번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j'ai le droit de me détruire.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으니 술 마음껏 퍼마시기. 다음은 (편한 자리에서) 나를 다 놓고 주사 마음껏 부려보기. (나는 술을 거하게 마셔도 말이 없다. 나도 미치겠다. 술 마시면 말이 더 기어들어간다.), 마지막은 피어싱 하나 더 해보기. 그것도 하면 제일 아프지만 또 예뻐 보이는 곳으로다가. 올해는 반항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제일 약한 곳부터 내 마음대로 상처를 내 볼 작정이었다.
피어싱은 언뜻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닮았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흠집을 내고 싶도록 안달하게 만들어진 사람들을 피부로 체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미 오래된 피어싱이 하나 있었지만, 고통이 아문 지 오래였고 무감각하게 연골 사이로 귀걸이를 통과시키는 나를 보며 아마도 질린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곳을 기웃거린다. 이미 다른 곳은 뚫어보기도 많이 했지만 금방 막혀버린 탓도 있었다.
피어싱을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니. 귀걸이를 한 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뾰족한 바늘이 후비고 지나간 자리에는 사실 상흔처럼 텅 빈 구멍만이 남는다. 그것을 그대로 놔두면 빈 공간만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다 예쁜 보석으로 갈아 끼우는 일이 피어싱이다. 그 일은 언제나 매력 있게 느껴진다. 피어싱은 상처를 닮았기에.
그래서 나는 차라리 상처를 받았다면 그 자리에 예쁜 보석을 끼워 넣고 싶어서 오늘도 어느 자리에 피어싱을 할까. 어느 자리에 또 예쁜 상처를 낼까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 진짜 바늘이 들어오기 직전에는 ‘아 진짜 뭐 같네. 내가 왜 이딴 고생을 사서 하러 왔을까.’ 욕하면서 후회하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은 나를 잊으니 뭔가 웃기고 즐겁 기도 하다. 고민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막상 뚫고 나면 후련해지는 피어싱을 나는 그래서 좋아한다. 당신들이 말로 준 억측과 험담. 그리고 오만과 편견에 받은 상처의 크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어차피 갈기갈기 찢어져도. 상처를 내가 나에게 주어도. 아물 상처는 아무니까.
그래서 일부러 상처를 낸 날이면 어딘지 모르게 더욱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