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공간

카페에 대한 사유

by 이단단


떠나고 싶지만 먼 곳으로는 가지 못하는 애매한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다. 주로 찾는 곳은 자연의 소리 외엔 음소거가 된 곳이나 차분한 재즈가 흐르는 한적한 카페다. 햇빛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곳, 바람이 시원하게 나를 지나치는 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 내가 주로 근교 여행이나 먼 거리의 여행을 떠나는 장소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바다를 찾지만 뜨거운 여름에도 나를 감싸 안은 외로움으로 인해 추울 때, 나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나선다. 물론 지금은 더운 여름이니 직접적으로 볕을 쐬고 있는 것은 무리인 점도 있다. 그러니 나는 통유리 사이로 볕이 잘 드는 카페를 주로 골라서 찾아다닌다.





나만의 휴일 동네 여행 루틴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조금 멀리 나갈 때면 동네 소극장에서 상영하는 독립 영화를 꼭 한 편 이상 보고 나와서 독립서점으로 가서 책을 사고. 이곳으로 발걸음을 돌려 책을 읽고 집에 간다. 남들은 쓸데없이 커피 한 잔 먹는데 밥값만 한 돈을 내냐고 핀잔을 주지만 나는 카페를 사랑하는 카페 덕후라 그 말에 괜히 흔들리지 않는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엔 체력이 너무 달려서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책은 읽고 싶은데 그곳이 집은 아니었으면 할 때, 나는 어김없이 카페의 문을 두드린다. 다른 사람의 수고로 만들어진 공간, 누군가의 애정 어린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에 입장하는 일을 사랑한다.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카페를 사랑하는 이유의 전부이다.


여긴 낡은 집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다. 외관은 허름하지만 내부는 굉장히 차분하고 감각적인 곳이다. 카페에서 창이 난 곳마다 통유리 창 너머 내리쬐는 햇볕과 관심을 갈구하며 지나다니는 길고양이들을 느긋하게 앉아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꽤 맘에 든다. 차분하게 독서를 하고 싶을 땐 조금 더 조용한 카페를 찾는다. 여기서 나는 오늘 플랫 화이트 아이스와 브라우니 위에 올려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브라우니의 극강의 달콤함을 잡는 건 끝 맛이 씁쓸한 플랫 화이트인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천천히 마시고 먹다 보니 왠지 모르게 이 두 조합. 극과 극의 성격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게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다시 한번 신기하다고 느껴진다. 너무 쓰기만 한 현실을 부드러운 상상의 힘 같은 브라우니가 잡아주는 것만 같다.


반대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달콤한 이상만 좇다가 쓰디쓴 에스프레소의 맛에 현실을 깨닫는 것 같기도. 어쨌든 너무 쓰거나 달기만 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든다. 쓴 맛만 나는 인생을 산 뒤에 브라우니 같은 달콤한 일이 생겨버리면 조금 더 살아갈 힘이 나지 않을까 한다. 딱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정도로만. 예를 들면 직장에서 퇴근해서 들어오는 길에 새롭게 알게 된 수입맥주를 네 캔 사 오는 일이라든지(캔 뚜껑을 따기 전까지 무슨 맛일까, 실패하지 않을까. 설렘과 걱정을 동반하는 일은 짜릿한 일이다.) 휴일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드립 커피를 내리고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를 읽는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힘들고 고단한 일 끝에 누리게 되는 달콤한 시간 같은 조합.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



상상력이 풍부해지다 보니 서로를 보완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로의 극과 극인 성격에 이끌려 어느새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상상한다. 한 명의 씁쓸함을 어느 달콤한 사람이 달래주는 균형 잡힌 이야기를.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하며 속이 쓰릴만큼 달달한 브라우니를 한 점 먹고 얼른 플랫 화이트로 마무리한다. 너무 단 것은 씁쓸함이 잡아준다. 오늘의 교훈.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비록 손을 대기도 전에 녹아버렸지만 이 두 조합만은 오래도록 내 혀에 남아있다. 카페는 늘 나를 상상하게 만들어주고, 따스하게 맞아준다. 카페라는공간은 나에게 단순한 공간의 의미를 넘는 가까운 존재다. 은둔에 쉼표를 찍어준 고마운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