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 당시 주위 사람 10명 중 7명은 자기만의 카페를 갖는 게 로망이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커피도 안 좋아하는데 대다수의 로망에 전염이 된 건지 음악과, 다정한 사람들, 한가로운 시간 같은 것들을 꿈꾸며 나만의 카페를 상상했다.
본능에 충실하지만 야망은 별로 크지 않은 나에게 카페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32살 즈음이었다. 그 당시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 사무실 옆에 남는 공간 하나를 내주면서, 원하면 카페로 만들어서 내 사무실 겸 써도 된다며 카페 오픈과 운영을 전부 일임해주어서... 음,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은 전혀 일임해주지 않으셨다. 어찌 되었든 로망이었던 카페 오픈은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는지 몸으로 퉁칠 수 있는 것은 전부 발로 뛰어 인테리어를 해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오픈한 카페는 불륜 연인들의 단골집이 되었고, 한가로운 시간은커녕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작은 카페에 웬 사람들이 그렇게 오는지) 가장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는 카페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소하기, 커피 내리기, 설거지하기, 치우기, 가져다주기 등의 업무였다. 나는 왜 카페라는 것이 그런 일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왜 좋은 음악 틀어놓고 향기로운 커피 향을 맡으며 아늑한 공간에서 책을 보는 상상만 했던 건지.
결국 작업실도 카페도 불륜 집합소도 아닌 그 애매한 공간은 오픈한 지 5개월 만에 조용히 문을 닫고, 혼자 쓰는 (카페 같은) 사무실이 되었다. 다행히 크게 돈을 들인 것도 없어서 6개월의 생고생과 '카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어.'라는 교훈을 얻고 로망에서 깨끗하게 지웠다.
내 집을 갖고 싶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독립을 한 후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사를 다니면서 견고해진 꿈이었다. 작아도 식물들을 들여서 마음껏 뿌리내리게 할 내 집이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언덕 꼭대기에, 귀신이 나와도 자연스러울 10평 남짓한 집을 덜컥 샀다. 빌라는 돈이 안된다고, 그 높은 곳엘 어떻게 다니냐고, 고치는데 돈이 더 들겠다고 말리는 사람들뿐이었지만,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초록에 이미 마음을 정했다. 당연히 기대한 만큼 생고생을 했고, 엄청나게 만족했다.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시간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집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집에 집착하진 않게 됐다.
내 작업실을 갖고 싶었다.... 이쯤 되면 꼭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은 내용이다. 갖고 싶어서 작업실을 구했고, 막상 가져보니 그것도 별게 아니었다는 이야기. 사진 작업을 하고 싶어도 작업실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작업실을 가져보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사진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작업실.
얼마 전에 만난 수진이가 요즘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게 없다며 이런 말을 했다.
"명품은 명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기능밖에 없어."
나는 애초에 명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으니 개이득이지만, 이 말엔 굉장히 공감했다. 오늘 아침에 튤립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도 그런 것이었다. 내가 원한다고 믿는 그것이 타인의 욕망인지, 내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지, 뭐라도 욕망해야겠기에 욕망하는 것인지. 그 욕망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욕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요즘 가장 욕망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유명해지는 것이다. 팔로워가 몇만 명이 넘어가고, 구독자가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 같다. 쉴 새 없이 좋아요가 울리는 핸드폰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내가 만약에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알람을 켜놓을 테다) 요즘엔 '천명의 팬덤을 가질 수 있을까'만 생각해봐도 '내가 어떻게'와 '나라고 왜!' 사이를 오가며 괜히 우울해 지곤 한다. (아.. 찌질해.)
그러다가 갑자기 '카페 하고 집 사고 작업실 차리고 원하는 거 다 해봤는데 막상 하고 나면 별거 없었어. 그러니까 구독자 천명도 별거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혹시 신포도 신공인가, 자기 합리화인가 검열을 해보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인기인'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니까 '구독자는 내 그릇만큼 생기겠지.'라며 태평하게 글이나 쓰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나는 이미 달라지고 있으니 충분한 것 아닌가.
아무리 봐도... 이번 글은 정신승리 같아서 내놓기 부끄럽지만, 이 긴 글을 지우고 다시 쓸 용기는 나지 않아서.. 눈감고 발행버튼을 눌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