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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Feb 23. 2022

생일선물이 코로나라니

아빠의 전화를 받고 생일인걸 알았다. 유일하게 아빠만 알고 있는 나의 음력 생일. 아빠는 생일날 저녁을 사주신다고 며칠 전부터 전화를 하셨고, 나는 잊고 있었다. 21일 아침, 밥을 먹고 있는데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몸도 꼼짝하기 싫은데 집을 치우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아빠를 모셔와서 저녁을 차리고 치워야 하는 모든 과정이 귀찮다는 생각만 든다. 생각을 떨치고 모시러 가겠다고 하자 본인이 시청역까지는 올 수 있다고 하신다. 외식은 위험하고 아빠가 돈을 쓰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집으로 모셔오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두루치기를 할까 오삼불고기를 할까 고민하면서도 '아빠가 오지 않았으면, 오늘은 그냥 쉬었으면'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다가 눈이 펑펑 내리는 걸 보면서도 눈이 더 많이 와서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라며 더 펑펑 내리길 응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빠, 몸이 좀 안 좋은데 혹시 코로나 일지 모르니까 오늘 안 보는 게 좋겠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빠는 별일 있겠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는 백군에게 귓속말짜증 난다고 말했다. 백군은 "그러니, 얼마나 보고 싶으신 거야."라며 달랬다.


평소라면 환영받고도 남았을 아빠의 방문이 이렇게까지 싫을 만큼 몸이 무거웠다. 전날 밤엔 코가 막히고 머리가 아파서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나는 혹시 모르니 코로나 키트로 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백군은 설마 하는 눈치였다. 백군과 나는 오늘 시작된 생리통 때문에 컨디션이  좋은 거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백군이 아빠를 위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 키트를  왔다. 키트를 받아 들고 검사를 하면서도 차라리 코로나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반복했다. 아빠를 서운하지 않게 거절할 방법은 코로나 뿐이었다. 처음에는  줄만 선명해서 당연히 아니겠거니 했는데 15분이 지나니 흐릿하게  줄이  생겼다. 나는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후련하게 약속을 취소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 이게 좋아할 일이 아니지.'


20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면서 아빠한테 "나 배 아픈데 혹시 맹장 아니야?"라고 했더니, 아빠는 맹장이면 그렇게 서있을 수도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렇겠지, 하면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으로 갔고, 의사는 맹장이 터져서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며 보호자를 부르라고 했다. 사색이 되어 달려온 아빠는 미련하다고 나를 혼내고, 수술동의서를 설명하는 의사를 향해 화를 냈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무서워하는 애 앞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꼭 해야 하냐며 화를 내는 아빠를, 나는 안 무섭다고 진정시켰다. 사실 나는 정말 무섭지도 않았고, 출근하기 싫었는데 잘됐다는 생각과 내 아픔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만 있던 내가 오랜만에 외출을 한건 이웃집 동생의 코엑스 전시를 돕기 위해서였다. 전시장에 있던 내내 마스크를  번도 벗지 않았지만 어디에선지 나는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다행히 나로 인해 전염된 사람은 없는  같다. 백군도 계속해서 음성이 나와서 마음이 편해졌다. '! 이제 나만 아프면 되는 건가?!'


방에서 혼자 격리된 시간을 보낸  3일째가 되었다. 나는 고통에 꽤나 무감한 편이고, 세상에  좋기만  상황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 고통에 무감하다는  조금 잘못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픔을 느끼긴 하니까. 하지만 아픔을 아픔 이상으로 확대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고통도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안에서 얻을  있는 좋은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시간에도, 역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들이 있다. 나는 죄책감 없이 실컷 드라마를 보고, 실컷 잠을 자고, 주는 대로 먹고  앞에 내놓기만 했다. 코로나를 생일선물로 받았다니 이보다  특별한 글감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건강박사 백군이 평소엔 절대 못 먹게 하는 나의 최애 새우깡도 특별히 먹을 수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문 앞에 넣어주는 건강한 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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