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에서 '돈맥경화'라는 표현을 썼었다. 회사 혈관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숨이 막히는 상황을 그렇게 불렀다.
그때는 웃으면서 쓸 수 있었다. 지나간 일이라서.
그런데 지금, 돈맥경화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웃기 어렵다. 현재진행형이라서.
해외 기술이전 계약이 성사되었다.
우리 회사 규모를 생각하면 꽤 큰 금액이다. 차기 사업의 마중물이 될 돈이고, 그동안 준비해 온 계획들이 차례차례 실행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예정'이라는 단어에 있었다.
계약은 확정됐지만 실제 자금이 들어오기까지의 절차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있다. 해외 기업과의 거래다 보니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각종 서류와 승인 과정이 복잡하다.
큰 그림은 완성됐는데 당장 쓸 물감이 없는 상황.
15화에서 썼던 그 교훈을 다시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적은 금액에도 회사가 망할 수 있다"
아무리 큰 계약을 따내도, 아무리 장밋빛 미래가 기다려도, 당장의 현금흐름이 막히면 모든 게 의미 없어진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다. 아직 망한 건 아니지만, 한 발짝만 더 잘못 디디면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지점에 서 있다.
이렇게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절박하니깐.
상품권 깡을 해봤고, 카드 돌려 막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정말 회사를 때려치워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억울하다. 받을 돈은 있는데 시간이 문제일 뿐이니까.
가끔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아마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을 것 같다.
다행히 나에게는 버팀목들이 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창업 멤버들.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만의 운동루틴.
특히 동료들과의 회의 시간이 소중하다. 각자의 지혜를 모아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간다. 혼자서는 보이지 않던 해결책이 함께하면 보이기도 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창업 아이템에 너무 사랑에 빠져있었던 건 아닐까?
워렌 버핏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투자한 종목에 사랑에 빠지지 말라."
창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가지 아이템에만 목을 맬 필요가 있을까?
지금 당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업종 등록을 하고, 보이는 곳에서 확실한 사업을 해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굳이 거창한 창업 아이템에만 매달릴 이유는 없다.
해외 기술이전이라는 기회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기회가 올지, 어떤 위기가 찾아올지.
그래서 더욱 버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힘든 시간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조금 마음이 정리된다.
사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복잡한 상황들이 있지만, 모든 걸 다 털어놓기에는... 글쎄.
아직은 다 털어내기엔 좀 더 성공하고 그땐 그랬지 하고 회상하면서 쓰고 싶다.
성공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만들려고 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또 하나의 문제 앞에 서 있다.
어쩌면 이것도 과정인 것 같다. 얼마나 잘되려고 이렇게 험난한 길을 만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자주 기도하게 된다.
돈맥경화가 다시 찾아왔지만,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다. 이겨내야 한다.
15화 때처럼, 언젠가는 이것도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 웃으면서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