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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4. 2023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https://www.youtube.com/watch?v=IiFwpasps0g&ab_channel=%EC%98%A8%EC%8A%A4%ED%85%8C%EC%9D%B4%EC%A7%80ONSTAGE

2004년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축제가 있었다. 나는 친구 두 명을 섭외해 팀을 꾸렸고 지방 모 대학에 있는 큰 홀에서 리쌍 부르스를 불렀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가사 속 방랑자가 될 줄은 또한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한 아리따운 낭자를 만나게 될 줄은.      


사랑엔 언제나 힘겨웠던 내 삶, 버려진 우산, 그처럼 난 항상 추위와 고독 또 심한 모독 그 모든 걸 다 견디며 여러 번 쉽게 차이며 진짜 사랑을 찾아 떠돌던 방랑자. 하지만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한 아리따운 낭자. 너를 내 가슴에 새긴 후로 내 삶은 끝없는 활주로 난 다시 태어났어, 붉은 낯으로 피어난 꽃으로. - [리쌍부르스] 중      

2021년 10월 9일, 평창동 지인의 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리의 멤버는 초대를 한 지인의 부부와 부부의 자식들, 형부와 언니 그리고 그녀와 나까지 이렇게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이러했다. 단아하고 품위 있으며 청아한 향이 나고, 머리를 치켜 올리는 손, 그 손끝으로부터 길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지나 발목까지 희고 고운 외모. 황금색과 녹색 그리고 갈색이 잘 어우러진 눈동자를 지녔기 때문에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고혹스럽고 신비로운 옛 단청이 떠올랐다.     


첫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음식을 도와주며 뒷정리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었는데, 나는 솔선수범하는 그 모습과 태도에 반했던 것 같다. 우리가 사귀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첫 만남 때 내가 보았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일부러 척하는 연기가 아닌,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 심지어 우연히 지나가며 마주친 동, 식물조차도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을 주는 마음이 한결같았다. 진실로 심성이 따뜻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을 좋아한다. 옛스럽고 고풍스러운 것을 좋아하며 자칫 초라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전통에 대해 애정이 강한 친구다. 웃어른을 공경하며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으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해주는 사람이다. 또한 물루에게도 반려동물 그 자체를 존중해 주는 친구라 가끔 나는‘맘충’이라고 놀렸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향이 나는 사람이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아니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다. 어릴 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운명이다'와 같은 환상을 갖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물위에 뜬 모래알이 천천히 가라앉듯 환상은 날아가기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나에게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작은 개울의 돌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듯, 마음을 정성스럽게 담으려 노력했다. 잔에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목마름을 느꼈던 나에게 그 잔에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음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내가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꿈이 없던 나에게 꿈이 생겼다. 


당신과 함께 늙어가는 것
더 늙고 현명해지는 것
깊이 내려놓은 
힘을 뺀 삶의 의식
깊은 자존감과 포용
      이 위대한 보석과 같은 사랑    

   설령 그녀가 지옥 불로 떨어지더라도 나는 주저 없이 딥 다이빙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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