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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4. 2023

사랑을 잃고 무릎을 잃었네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https://www.youtube.com/watch?v=H9gbV3ygWzw&ab_channel=A24


지난 2월, 온 세상이 쓸쓸한 광야처럼 느껴졌다. 백사실 계곡을 아우르는 물줄기도 꽁꽁 얼어붙었으며, 새순이 아직 돋지 않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은 구멍 난 내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아무리 태국에서 뜨거운 태양빛을 많이 받았어도 살아갈 결심을 스스로 세우지 않았기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으며 상실에 대한 아픔을 그대로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볕이 좋은 날이 오면 괜찮기도 했다. 참담한 비애와 이따금씩 긍정의 대립이 늘 반복되었다. 나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고 나무라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날은 무슨 마음이 생겼는지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집 근처 절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주지 스님이 계셨고, 나도 모르게 스님께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삼천 배를 하고 싶은데, 신도도 아닌 제가 해도 될까요?"라는 물음에 그는 흔쾌히 응했고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오라고 했다.    

 

 시간에 맞추어 절에 방문을 하니 그는 이미 간단한 간식과 물 그리고 방석 등 기도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다.     


"자, 이제 삼천 배를 시작하면 됩니다. 앞에 놓인 책에는 삼천 부처님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한 배가 끝날 때마다 부처님 한 분씩 호명하면 됩니다. 처음의 천 배는 과거의 업, 다음의 천 배는 현재, 마지막 천 배는 미래를 의미합니다. 용맹정진하게 절을 하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아,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삼천 배 다 못 하고 포기하면 인생 낙오자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다. 500배를 마치면서 '만만한 게 아니구나'를 느꼈고, 4시간에 걸쳐 1000배를 끝내고 'X 됐다' 싶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는 이미 게걸음을 하고 있었다. 이후 스님께서 내어주신 공양을 맛있게 먹고 현재의 업인 천 배에서 이천 배를 향해 달릴 때는 이미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내내 들었다. 절을 할 때마다 엉덩이 사이로 인왕산 너머 해가 보였다. 해가 인왕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그 찰나의 순간, 해 질녘 무렵, 1990배에서 2000배로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 법당 안으로 비치는 서쪽에서 내려온 빛살이 내 몸을 따뜻하게 째어줄 때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잘 못 살았습니다, 후회합니다, 미안합니다, 참회합니다.' 라는 말이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이후 천 배를 더하여 저녁 8시 40분경에 삼천 배를 마쳤다. 약 12시간이 걸렸다. 법당 내부에 대자로 뻗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이름이 적힌 인등으로 천장이 가득 찼다. 이것은 단순히 이름이 아닌 사람들의 염원들이었다. 나의 소원은 무엇일까? 진정 나의 염원은 무엇일까?     


 “그녀가 스스로를 더욱더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다만 그 행복의 자리에서 저도 옆에 있고 싶습니다.”     

 재회를 위한 기도, 인연을 위한 기도를 드리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면 내가 품은 마음이 어떤 욕심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녀를 원하는지 그 까닭을 기도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는 아주 솔직한 나의 욕망과 이기적인 집착 그대로의 기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 기도는 기독교의 아가페 식 사랑의 마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눈에서 특별함을 발견한다는 것, 당신의 아름다움에서 나의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특별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눈에서 사랑의 반짝임을 찾고 하나가 되고자 열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절망과 시련을 겪었던가.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았던 것은 살면서 처음 해본 인고의 이유도 있겠지만 내 삶을 걸고 내달렸던 용단과 더불어 침대 위에서 무기력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별하고 후회를 거듭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은 당신을 통해 내가 어떻게 아름다웠고, 당신이 사랑하는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대상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마음에는 대상도 없고 그저 사랑만이 남게 되어간다는 것을. 남녀 간의 사랑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인지하는 이 삶이란, 철저하게 흑과 백 양면으로 구성된 이분법적 삶이 아닌 태극문양에 가깝다는 것. 슬픔을 통해 행복을 알게 되고, 무엇 때문에 좋다면 반대로 그것 때문에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 결국 그것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 사랑하기에 슬픔이 샘솟고, 아끼기에 두려움이 만들어진다는 것.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 지금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삼천 배를 마친 뒤 약 2주 동안 굉장히 괴로웠다. 잔잔한 호수 위에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었다. 물속을 포크레인으로 뒤집어엎어 온갖 부유물들이 소용돌이쳐 깨끗했던 물이 지저분한 흙탕물로 변모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마장 혹은 마구니가 꼈다고 한다. 석가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들기 전 마왕 파순이 군대와 미녀들을 동원해 그의 참선을 방해했던 것을 의미한다. 우울증, 공황장애, 분노조절 장애 등등 부정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쳤고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한편 무념무상의 이치를 살짝 알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글자 그대로 아무 염원도 생각도 없는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서 어떤 감정들이 올라와도 그것을 알아차리되 붙잡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막아 두었던 댐의 수문을 개방시켜 하늘 아래 존재하는 산천 광야의 초목 하나하나에 물이 흘러들어가 메말랐던 광야를 적시고 땅을 비옥하게 하는 순환의 과정을 통해 다시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만든다는 것.    

 

그녀를 기다리는 우직한 모습이 내가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 할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과 스토커의 마음은 아주 얇은 종이 한 장 차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한 차이는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마음을 다스려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흙탕물에 있던 부유물들이 가라앉아 마음속 깨끗한 물의 시계가 조금 맑아질 무렵, 나는 26일 동안 108배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그녀를 간절히 갖고 싶다는 집착과 욕망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녀의 평화와 행복을 진정 바라는 기원으로 변모했고 이후 주변 모든 사람에 대한 기도 더 나아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기도로 변했다.(회향발원심 / 回向發願心)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불교에서는 여여(與與) 하다고 표현을 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 상태를 뜻한다.     


결국 돌이켜보면 삼천 배를 올린 시간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부처님 혹은 신의 가피를 받아 성불을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저 그녀를 사랑하는 나의 예쁜 마음을 입가에 얇은 미소를 띠며 바라본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일부러 마음 정리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녀를 하루빨리 잊게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록 빌지도 않을 것이다. 더 좋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유일한 그녀이니깐.    

 

26일 회향을 마친 뒤, 집 앞 백사실 계곡을 산책했다. 절대 녹지 않을 것 같았던 계곡의 얼음도 어느새 녹아있었고 회색빛이었던 숲이 점점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꿈을 꾸었다. 그녀와 나는 어느새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그녀를 닮은 예쁜 두 딸도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너네 엄마 참 예쁘지?"     

 

이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백발노인이 된 나와 어느덧 중년이 되어 가정을 꾸린 아이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주름이 깊게 파인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죽음에 살짝 겁에 질린 그녀를 다독이며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어 나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네 엄마보다 딱 하루만 더 살 거야.
내가 먼저 가 버리면 엄마가 참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    

 

이윽고 그녀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였고, 장례를 마친 그날 저녁, 그녀를 따라가듯, 나는 잠을 자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를 마중하러 온 그녀의 손을 붙잡고 우리는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꽃’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 채.          


-저는 이제 사랑인 것 같아요, 준영씨는요?
-저도 지금 이 순간부터 사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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