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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19. 2023

누워있는 남자

누워있는 남자 


사람들에게 가끔 전화 오면 이렇게 말한다.           


“준영아 뭐해?”

“응 누워있어”     


누워있다고 대답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쪽은 ‘ㅋㅋ’거리거나 다른 쪽은 심각하게 걱정을 한다.      

“아직도?”     


오랜 세월 누워있었다. 삶에 대한 무기력과 현실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 8mile엔 이런 대사가 있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아직 시궁창이야“          


평범한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꽤나 모범적인 아이로 세상이 하라는 대로 잘 따르고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가정의 해체로 인해 강제로 3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아마 그때부터 누워 있던 게 버릇이었던 것 같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강제로 면벽 수행을 해야 했다. 수행의 도구는 책이었다. 책을 통해 큰 세상을 바라보았다. 3평의 공간이 우주너머 무한의 공간으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탈출 욕구와 함께.      


그때부터 나의 기행은 시작 되었다. 마음대로 학교를 그만 두었고, 밖으로 나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그 후 시간이 좀 지났다. 몇 년 사이 오토바이로 대륙횡단도 하였으며 책도 출간했고 방송에도 출연했고 가끔 강연도 했다. 나는 또래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때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알에 갇혀있던 새는 알을 쪼아 세상 밖으로 나갔다. 새는 광활하고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와 평행하는 속도로 같이 날아갔다. 그러나 그건 한 낱 꿈이었다. 막상 깨어나니 새장 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새는 새장 밖을 탈출하려고 안간 힘을 썼으나 천장에 부딪혀 이내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새는 그대로 누워있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친구들은 하나둘씩 안정된 직장에 취업을 하고 사회인으로써 조금씩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군가 취업을 할 때마다 모여 취업 턱을 얻어먹으며 그를 축하해줬고, 그 후 나를 제외하고 모두 어딘가에 소속이 생겼다.       


당시 그들과 비교해서 마냥 떨어지기 싫었던 나는 명함이 필요했다. 작가라는 타이틀 혹은 대표라는 위치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만 차근차근 계단을 성실히 오르는 그들을 한 번에 추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저것 무엇은 했었다. 당시 청년 창업이 열풍이라 기획서만 몇 자 쓰면 지원받아 무엇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셋. 넷. 시도하고 거꾸러지고를 반복했다. 내가 서른을 맞이한 러시아에서의 일이 나의 마지막 시도였다. 그러나 이 역시도 실패했다.      


미래를 준비도 하지 못 한 채 얼떨결에 공포의 서른을 맞이했다. 운명과 숙명의 차이를 아는가? 운명의 앞 글자는‘움직임’을 뜻한다. 고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영하면 얼마든지 운명은 바꿀 수 있음을 뜻한다. 이에 반면 숙명은 하늘에서 부여된, 내가 결코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에서 우리 부모님의 몸을 빌려 남자로 태어난 것 등.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남자 역할은 꽤나 많은 피로감과 부담감을 동반한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느 정도 사회에 기여하며 정해진 궤도 안에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이것은 누가 정해놓은 규칙은 아니지만 아마 유전으로부터 각인되어 온 DNA인 것 같다.   

   

특별한 줄 알았던 내가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남들과 비교를 했고 그때부터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백수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 붙었으며 누군가 “요새 뭐해?”라고 물어보는 것조차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람들도 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집 현관문도 닫고 마음의 문도 닫았다. 그러다 통장 잔고가 0원이 돼서야 부터 가냘픈 목숨을 연명하러 세상 밖으로 나갔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직업은 몸 쓰는 일이 허다했다. 낮에는 노가다를 하고 밤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봤다. 보자마자 단 번에 꽂혀서 여러 번 봤다. 나는 종수의 무기력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종수는 낮에 화물차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는데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제 인생에 대한 자격지심과 치밀어 오르는 화가 뒤엉킨 분노를 세상에 표출한 전형적인 루저였다. 그의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나는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종수가 처해있는 상황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고 현실에서 허우적대는 나와 같았다. 마치 내가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종수는 나였고, 나는 종수였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일을 오래했다. 먹물과 흐린 물 사이에서 늘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흘러갔다.    

  

그러다 문뜩 어느 날, 호흡을 고르게 하기 시작했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영화 미나리의 포스터에 나오는 스티븐 연의 무겁지만 듬직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나의 꿈이 됐다. 작가로서, 사업가로서의 성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쓰러져있던 새는 드디어 아프락낙시스에 차원 이동을 한 것만 같았다. 나의 눈동자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찍어 온 점들이 선으로 되어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나의 길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시니컬하고 우울했던 내가 세상을 따뜻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니 무언가로 자연스레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함께 길을 걷는 동료들도 생겼으며 돈도 자연스럽게 벌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집중하고 탐구하고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 그게 세상과 닿아있다 라는 것을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미국작가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내 존재를 믿었지만, 나 자신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범하면서도 소심하고, 재빠르면서도 굼뜨고, 순진하면서도 충동적이었다. 말하자면 모순이라는 정령에 바쳐진 걸어다니는 기념비, 살아 숨쉬는 기념비였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돈도 중요했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군인지를 배우고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야망은 컸지만 능력이 따르지 못했다. 그래서 걸핏하면 좌절감에 빠졌고 인생의 낙오자라는 생각이 늘상 따라다녔다.”      


훗날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가 된 폴 오스터가 젊은 날 길고 혹독한 무명의 시기를 회고하면서 쓴 자전적 소설의 구절이다.      


종수처럼 꿈과 현실 사이에서 무기력해진 나 자신에게 실망과 더불어 종국엔 분노로 치닫는 그런 나 같은 친구들에게 당신이라는 비범한 재능과 인생의 굴곡에서 마주한 절망 그럼에도 놓지 않는 생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슬픔을 함께 안아 가자고 살포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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