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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5. 2023

길고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https://www.youtube.com/watch?v=8hm4wi5hZWA&ab_channel=Rencontreauponteuxin


부제: 상처를 정면으로 직면해야 한다는 것 



1.

아마 개인적으로 본 올해 최고의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라고 할 수 있다. 광화문의 어느 작은 극장을 좋아하는 그녀와 지난 1월  영화를 봤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어 꽤 길고 사뭇 지루할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후반부에 감정선이 휘몰아치는 연극 장면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 때 나는 치유를 받았다.      


극 중 쏘냐 역할을 한 유나가 실의에 빠져있는 바냐 역할의 가후쿠에게 수어를 한 장면은 내 인생의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처한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나는 쏘냐의 대사로 대신 내 마음을 전했다.      


"살아남자고가 아닌 살아가자고. 밖에서 세상 모든 것들에 지쳐 숨을 곳이 없다면, 작지만 너를 안아 줄 수 있는 나의 양어깨와 두 팔 뒤에 잠시 숨으라고.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속을 걷다가 문뜩 무서움이 든다면 뒤를 보라고. 그 뒤에는 내가 있다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혹시 마음의 색이 회색 빛이라면 알록달록한 파스칼로 예쁘게 칠하고 싶다고. 그렇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영화가 끝난 후,  그녀는 끊었던 담배를 한 대 피었다. 눈치로 보건대 그녀는 아마 내가 느꼈던 만큼의 감정을 느끼진 못한 듯 했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그녀의 상황 때문에 그날 같이 못 있어서 아쉬웠지만 그 마음을 붙잡고 다가오는 봄에는 따뜻한 통영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벚꽃이 만개했던 3월의 어느 날  슈만의 트로이메아리를 들으며 통영으로 여행을 떠났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에요. 
운명이 가져다 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해요.
     
안톤 체홉 [바냐 아저씨]      


영화의 주제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을 직면해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그 끝에는 치유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여자친구 및 친한 몇몇들에게 자신을 직면해야 하고 도망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그렇지 못했고 도망가느라 급급한 사람이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7-8년 전 내가 출간 한 책 조차도 읽지를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창피하고 그 당시 감정들이 오글거려서 그렇지만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메아리는 자아비판을 넘어 자기혐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곧 나를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이해할 것이며 나라는 우주가 중심이 되어 나를 둘러싼 그 모든 환경에 대한 이해로 다가갈 것이며 더 나아가 사랑할 것이라고 그렇게 또 다짐한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황폐해졌을때 어디론가 문뜩 떠났었는데 그 곳은 내 마음의 색과 비슷한 곳이었다. 예를들면 한 겨울의 러시아, 황량하고 척박한 북인도와 네팔의 무스탕이 그러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환경에 내 마음을 놓아 환경이 마음 상태를 집어 삼켜먹는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따뜻해 질 곳을 찾아가고 싶다. 영화 속 가후쿠와 마사키처럼 빨간색 사브900을 타고 주구장창 달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러브레터에 나오는 오타루에 가야할까.           



2.

난 어릴 적부터 '어른 스럽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등산을 할 때 어린 아이가 아빠를 따라 묵묵히 올라가는 모습을 본 동네 어르신들도 그랬고, 다른 아이들은 식당에서 뛰어 노는데 투정 한번 없이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식당 아주머니들도 그랬다. 나는 어른 스러워야 했다. 아빠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갑작스레 이혼을 했다. 아빠가 일방적으로 이혼을 진행했다. (아마 지금 같이 사는 새엄마와의 새로운 인생을 택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엄마를 택했고 엄마와 나는 대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던 이모네 집에  얹혀 살았다. 그때 나는 좋았다. 왜냐하면 4,5살 터울의 사촌형과 누나가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게 잘 살았다. 그렇게 한 1년을 살았을까? 월드컵이 열리던 그 해 엄마는 갑작스레 서울로 갔다. 지금도 그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기간은 블랙아웃 되어버렸다. 나를 키우겠다는 엄마가 나를 버렸던 것이다. 그 후 엄마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약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때부터 난 두 원 사이에 교집합이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고 뽀얗고 해맑게 웃던, 별명이 뽀얀 도련님이었던 얼굴은 팔자주름이 깊게 파인 사연 많은 아저씨의 얼굴로 점점 변모해 가고 있었다.


서울로 대학을 올라와 정신없이 지낼 무렵 어쩌다 막내 이모한테 엄마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재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고 그리고 예쁘게 생긴 남자 아이가 있다고. 나이 들면 엄마를 이해하게 될 거라고" 그날 소리 내어 학교 도서관 앞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스물 셋이 될 무렵, 내가 늦은 나이에 사춘기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아는 형한테 해 주었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할 건 네가 아니라 너네 엄마 아빠야" 돌이켜보니, 모든 어른들은 나에게 엄마를 이해해라, 아빠를 이해해라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나에게 사과조차 안 했는데 나는 그들을 이해해야만 했다. 


왜일까. 그 한마디에 참아왔던 모든 설움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잘 다니던 학교도 때려 치고 아빠와 의절을 선언하고 잠수를 탔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모든 것의 끝은 다했다. "단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오토바이 타지마라 등" 늦바람이 이렇게 무서웠던 것인가?  그렇게 난, 아버지가 하지 말라는 것의 정반대로, 머리를 가슴까지 기르고, 줄담배를 물며,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의 끝을 갔다. 


만약 누군가 내게 단 한 번이라도 "네가 좀 더 아이답길 원해. 울어도 돼. 슬퍼해도 돼. 이겨 내지마. 주저앉아도 돼. 징징거려도 돼"라고 이야기해줬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 늦게 들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난 뒤 상처에 직면하지 못했던 마후쿠와 애어른 같은 마사키 그리고 둘의 성향을 가진 나를 포함한 어릴 적 어른 아이로 자라난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 꿈속에서 그 시절로 돌아가 어린 나에게 괜찮다고 토닥토닥 거려주고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을 법한 어른 아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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