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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4. 2023

괜찮은 사람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https://www.youtube.com/watch?v=YqiPt_HOi3Y&ab_channel=TJPIANO%ED%8B%B0%EC%A0%9C%EC%9D%B4%ED%94%BC%EC%95%84%EB%85%B8

멋진 4월의 어느 날. 을지로에서 약속을 정하고 그녀를 만났다. 잘 보이기 위해 오랜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시어서커 소재의 깔끔하고 편한 옷을 입고 갔다. 걸어가는 도중 불쑥 교보문고에 들러 마르셀 프루스트의 산문시를 사서 갔다. 그때 문득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설렘을 가슴에 안고 먼저 선술집에 도착하여 맥주를 시키며 걸어오면서 상기된 몸과 마음을 가라앉혔다. 버스를 잘 못 타 10분 늦게 온 그녀는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나타났고, 나는 괜찮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할 만큼 좁디좁은 그 선술집에서 나란히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 두어 시간이 지났을 무렵, 선술집에서 나왔다. 밤 11시,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는 그 공간 속에서 우리를 적시는 선선한 바람과 이따금 도시의 침묵을 깨는 택시의 헤드라이트 불빛 등 당시 모든 것이 좋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착각이었다는 것을 다음 날, 부지불식간에 남기고 간 귀걸이를 바라보며 알아차렸다. 


그제야 우리는 달도 울고 있었다는 것, 달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빛의 폐부를 찌르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우리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처럼 달이 울고 있었고, 우리가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달도 영문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월광 소나타,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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