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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20. 2023

뿔테안경

엄마를 부탁해 


얼마 전 아빠가 서울에 왔다. 항상 단정한 머리만 고수하던 아빠가 옆머리를 기르고 검은색 뿔테안경까지 쓰고 왔다. 예전과 달리 사람이 좀 편안해 보였다.   

       

“안경 왜 끼셨어요? 시력 안 좋아졌어?”

“어. 얼굴에 인테리어 좀 했다. 나이가 드니깐 인상이 더 안 좋아 보여서 지식인 코스프레 좀 해봤다.”    

 

서촌의 한 술집으로 향하는 아빠의 걸음걸이는 여전히 빨랐다. (거의 이성계임) 성격 급하고 본인이 걷는 길에, 앞 사람이 마치 걸음이 느린 아이처럼 어기적 거리거나 혹은 앞의 차가 있는 꼴을 못 봐서 무조건 추월을 하는 등 나랑 굉장히 닮았다. 팔 다리가 긴 체형도 그렇고 걸음걸이도. 무엇에 집중을 할 때 디카프리오처럼 미간에 주름지며 인상 쓰는 것도, 시니컬하고 블랙 조크를 좋아하는 것도 나와 비슷하다.    

  

심지어 아빠는 자동차로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했다. 역시 안동 장씨, 해적왕 장보고의 후손인 객장의 피는 못 속인다.     


아빠는 내년에 사람들을 모집해서 두 번째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한다고 한다. 아빠의 성격을 알기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같이 가는 사람들 불쌍하다.’그래서 말했다.  

   

“아빠 이제 손해 보고 사셔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응 그럴게. 노력하마”     


편안해진 아빠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에서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돈 벌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열심히 벌어라’ 혹은‘결혼은 언제 하니’와 같은 K 질문이 이어졌을 텐데 이번엔 안 그랬다. 아마 작년에 생겼던 나와의 극심한 트러블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절벽 끝의 상황에 있을 때 마다 스스로를 포기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런 기질의 원인을 평생 따뜻한 말 한 마디 안 해주고 채근만 했던 아빠 때문이라고 그의 탓을 했다. 영화 사도에서 사도 세자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만 들으면 됐소.”     

그런 그가 나의 절망을 지켜보고 난 뒤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 같다.     

"준영아. 결혼 안 해도 돼. 대신 즐겁게 살아 "     


그 한 마디. 처음으로 잔소리를 안 했던 그 날. 나는 진심으로 아빠에게 아들로서 본인에게 자랑 될 만한 인물도 못 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아무 말도 안 해준 아빠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내년에 두 번째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하실 아빠와

함께 가스라이팅 엄청 당할 동행자분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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