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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21. 2023

무스탕

침묵의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pygwK0sBUdM&ab_channel=MilanRecordsUSA


무스탕은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의 연봉 뒤편, 티베트와의 국경 지역에 깊이 숨어있다. 19세기 말, 쇄국정책을 펴던 네팔에 의해 외국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되면서 ‘금단의 땅'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티벳 불교의 아버지 파드메삼바바가 악마와의 큰 싸움을 벌인 곳이라고 한다. 이후 불법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구도자와 티베트 불자들이 무스탕을 거쳐 북인도로 걸어가는 불적지를 순례했다.

불교 성지는 저지대여서 건조한 고산지대와 달리 바이러스가 창궐해 티베트 순례자들을 괴롭혔는데, 대표적으로 설사와 이질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성지에서 거룩한 병에 걸려 죽었으며 그들은 무스탕계곡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무스탕은 구도의 희망 뒤에 숨은 그리움의 땅, 무사히 순례를 마치고 고향으로 향하는 안전 통로의 땅이기도 했다.

포카라에서 까그베니가 있는 로어 무스탕까지 이틀에 걸쳐 달려야 했다. 시시각각 표변하는 날씨 때문에 길을 예측할 수 없었으며, 머릿속에서 그렸던 원하는 그림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북쪽으로 갈수록 초록의 색이 점차 사라졌으며 붉고 어두운 기암괴석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도는 점점 높아져 사람과 바이크 모두 산소가 부족해 체력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많았으며, 삭막한 풍광 때문에 마음속이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옛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으로 가는 마지막 마을이 까그베니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인도-아리안 계열이 아닌 티벳 사람들이며 그들만의 독특한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유대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언젠가 미륵부처의 화신이 나타나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 믿고 있으며 그들의 내세와 다음 생의 윤회를 위해 본인의 카르마를 잘 닦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매일 황량한 풍광을 보고 자라서일까? 그들의 얼굴이 마치 사막과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전기 및 전선망 그리고 와이파이 또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기에 도착한 첫날은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바라보며 잠에 청해야 했다. 

그리고 밖을 나가 하늘에 있는 별을 보았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고 있자니 아름다움을 떠나 두려움과 경외심 등 원초적인 공포까지 느껴졌다. 도시의 불빛에 익숙한 나에게서는 이 불편함을 뭐라 형언할 수 없었다. 

다음날, 로어 무스탕을 지나 어퍼 무스탕으로 가는 길에는 흑백필름을 사용했다. 날은 흐렸고, 볕이 들지 않는 응달진 곳에는 길이 얼어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선 채 바짝 긴장하며 이동했다. 기암 괴벽 곳곳에 나 있는 구멍들이 종종 목격되었는데, 몇 년 전 ‘베율을 찾아서'라는 다큐에서 그 구멍 속에 옛 수도자들의 흔적들이 발견된 장면이 떠올랐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어느새 3,000미터가 훌쩍 넘었을 무렵 모든 길이 눈밭으로 되어있었다. 도저히 나의 실력으로는 그 눈길을 지나갈 수 없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처음 가지고 간 필름 카메라에 대한 욕심이었을까? 날씨가 좋지 못했던 것과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을 가지 못했던 것이 아주 컸다. 그리고 무리하게 달렸기에 10번 정도 넘어졌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왼쪽 손목에 금이 갔다. 

위대한 금단의 땅을 올라가면서 나에게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대하다.’     

눈길에 패배하여 복귀 하는 길에 넘어져 손목에 금이 갔을 때는     

‘나는 나약하다.'

넘어진 곳의 지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손을 다쳤기에, 갑자기 찾아온 뜨거운 통증과 오한 때문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비를 맞으며 전투에서 진 패잔병처럼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끌며 수 시간을 걸었을까? 작은 마을이 보였고 집집마다 문을 두들겼으나 인기척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안나푸르나 서클을 위한 여행객들을 위한 임시 숙소가 있는 곳이라서 비수기 때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래된 나무문을 열고 어떤 여인이 나왔다. 나는 그때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을 본 것만 같았다.  그녀의 이름은 수니타였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마부라는 이름의 9살의 조카와 함께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수니타가 거지 몰골의 나를 보고 처음 한 질문은 이랬다.      


        “신을 믿니?”     

아마 대답의 여부에 따라 그날 밤 나의 운명이 결정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지금에 와서 든다.      

그날 밤, 온몸에 찾아온 오한과 열기 그리고 설사 때문에 잠을 한 숨도 잘 수가 없었지만 수니타와 마부의 우유죽으로 다행히 순례자가 걸리는 ‘거룩한 병’에서 죽음을 모면 할 수 있었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리고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어린 양과 같기 때문에 결국 사람으로 인해 귀결되며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나는 x밥이다.”     

무스탕의 강렬하고 황량한 곳에서,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목 놓아 펑펑 울고 싶었지만, 결국 울지 못 했다.      


북악산에 찾아온 겨울

수니타와 마부가 끓여준 우유죽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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