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영 Oct 26. 2024

Touch

전염병 시대의 즉흥섹스

https://www.youtube.com/watch?v=Odx_TmJYYzI


출처: 민병헌 작가


추천 위스키: Lagavulin 16y


"아!" 


나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전염병 시대에 있었던 인상 깊은 만남이 하나 더 있어요. 들어보실래요?"     


바 주인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자극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그 사람의 이름도 몰라요. 하지만 전 가끔 그녀와의 섹스를 떠올리곤 합니다.”
 

바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의 경험이라...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던 거예요?"   

  

코로나 시대, 국가에서 전 국민을 통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익숙해질 무렵,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 작별을 고한다는 질병 관리청 수장의 말처럼 이제는 예전처럼 술집 혹은 클럽에서 원나잇을 즐기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죠." 바 주인이 동의했다.     


코로나 이전 데이팅 앱에서 상대를 만나는 건 의례적인 순서가 있었다. 앱에서의 대화가 좀 통한다면 카카오톡, 그러다 통화, 그리고 술집 혹은 카페에서의 만남에서 스파크가 튕기면 나의 집 혹은 상대의 집으로 가는 것이 대개의 일이었다.     


"술집은 밤 10시 이후에 문을 닫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이나 낯선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어요. 집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틴더를 켰고, 무심코 스와이프를 하다 매칭 된 한 여자가 있었죠.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마스크를 쓴 얼굴이었지만, 매혹적인 눈빛이 인상적이었어요."     


"마스크를 쓴 얼굴이라... 정말 코로나 시대답네요." 

바 주인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만나기로 했어요?"     

“그녀와의 대화는 간결했고, 주제는 직설적이었어요. 서로의 취미를 묻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만나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마치 전염병 시대의 긴장감 속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찾으려는 듯, 우리는 간단한 정보 교환 후 바로 만남을 약속했어요.”     


그날 밤, 우리는 종로의 한 뒷골목에서 만났다. 그녀는 검정 마스크와 긴 코트를 입고 있었고, 눈빛만으로도 나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바로 집으로 가요." 그녀는 짧게 대답했고,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우리는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섰고, 문을 열자 작은 원룸이 나왔다. 방 안에는 최소한의 가구와 어둑한 조명이 있었고, 창문 밖으로는 차가운 밤바람이 느껴졌다.     


"그 순간 어떤 기분이셨어요?" 바 주인이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긴장됐죠.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흥분감도 있었어요. 마치 금기를 깨는 듯한..."     

"우리, 이제 마스크는 벗을까요?" 나는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처음으로 보였는데, 낯선 동시에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 방 안에서 서로의 몸을 탐색하며, 이전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마치 오랜 연인처럼 나를 이끌었다.     


"그건 단순한 섹스 이상이었어요. 마치... 팬데믹 시대의 공포와 고립감 속에서 찾은 작은 위안 같은 거였죠. 서로의 체온을 통해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우리는 밤새도록 서로를 탐닉하며, 이름도 모른 채 뜨거운 밤을 보냈다. 아침이 밝아오자, 나는 조용히 옷을 입고 떠났다. 마치 어제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아무런 미련 없이.     


"나는 그 이후로도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바 주인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 후로 사랑이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글쎄요... 어쩌면 그 경험이 저에게 가르쳐준 건, 진정한 친밀감이란 게 꼭 오랜 시간이나 깊은 감정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때로는 순간의 연결, 그 찰나의 이해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바 주인은 흥미진진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때로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이 깊은 인상을 남길 때가 있어요. 손님이 경험한 그 밤은, 아마도 그 시대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찾아낸 짧은 해방감이었을 겁니다. 그 여자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거고요."     


나는 바 주인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밤을 다시 떠올렸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시대의 혼란 속에서 잠시나마 평온을 찾았던 것 같았다.     


"사장님." 

나는 잔을 들며 말했다. 

"그 경험 이후로 제가 깨달은 게 하나 더 있어요."     

"뭔가요?" 

바 주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비록 짧은 순간일지라도, 우리 삶에 의미를 남긴다는 거예요. 그 여자...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지만, 그녀는 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워줬죠."

이전 05화 Cru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