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형을 받은 사마천, 시기를 쓰다
보고 싶은 벗에게!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나 싶더니, 오늘은 갑자기 바람이 불고 온도가 내려가서 서둘러 목도리와 점퍼를 챙겨 입었다네. 예순 중반을 훌쩍 넘기고, 올 가을에 지독한 이별의 고통을 겪어서 그런지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네. 그래! 벗님은 잘 지내고 계시는가?
가을이 떠나가니, 문득 세월이 야속한 생각이 든다네. 그래서 대학시절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격정을 나누던 그때처럼, 친구와 주절거리고 싶어서 굳이 휴대폰으로 문자를 두드리고 있다네.
벗, 가볍게 한 번 읽어 주시게나!
人固有一死(인고유일사)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惑重于泰山(혹중우태산) :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惑輕于鴻毛(혹경우홍모) : 또 어떤 사람의 죽음은 기러기의 깃털보다 가볍다
用之所趨異也(용지소추이야) : 그것은 죽음을 사용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산청에 있는 펜션에서 친구와 속깊은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거의 1년이 되어가네. 이제 우리들이 예순 중반을 넘겼으니, 앞으로 우리의 날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여든이 넘으면 몸과 마음이 늙고 헛헛해져서 우리 의지대로 살기 어려우니..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해도, 겨우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그래, 티끌만큼 남은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자?
왔으면 한 번은 반드시 가고야 마는 게 인생인데, 아둥 바둥 살다가 갑자기 훅 떠나면..
얼마나 우리네 삶이 허무하겠노?
위 글은 史記를 지은 사마천이 책을 완성한 후,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 글이라 카더라.
- 벗, 해석이 엉터리라도 이해해 주소! -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 때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으로 복무했제.
그의 아버지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그가 편찬하던 역사책의 편찬을 완성해 달라고 했는데..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닌갑더라.
한무제는 <이릉>이란 장군에게 당시 골머리를 썩이던 '흉노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이릉은 패전하여 흉노의 포로로 잡히고, 그가 흉노군사를 조련한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조정에서는 역적이라고 이릉을 비난하면서, '그의 가족을 모두 능지처참에 처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어요.
그런데 이릉의 강직함을 아는 사마천은 한무제와 조정대신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이릉을 변호했다네.
한무제는 노해서 사마천에게 사형을 내리게 되고, 사마천은 감옥에 갇혀서 목을 늘어뜨리고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네.
그 때 그의 나이가 겨우 마흔 여덟이었어요..
당시에는 사형 대신에 목숨을 구하는 방법이 있었다더라.
하나는 목숨 값으로 많은 돈을 내는 방법인데, 역적한테 누가 돈을 빌려 주겠노?
또 하나는 궁형(남자의 성기를 자름)인데, 죽기보다 치욕스런 형벌이었제.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선택했다네.
그래서 얼굴이 붉고 수염이 없는 중성의 상태에서 저 찬란하고 아름다운 책, 사기를 썼어.
사기에는 4,0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1,300개 이상의 직업이 나오고..
그것은 그의 시각이 지배층인 왕과 귀족에게서 들풀 백성들로 관심을 옮겼다는 그런 뜻이겠제, 그자?
사랑하는 벗!
나는 가진 재산도 없고, 자랑할 명예도 부족하고, 사회적인 힘도 내세울 게 없지만..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죽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오늘도 저 잘난 권력자, 재산가란 분들은 찰나보다 짧은 시간 동안, 한 줌의 흙보다 더 적은 권력을 누리고 재산을 더 늘리겠다고..
서로를 비난하고, 음해하고..
반성하지 않고, 소통하지 못하고..
그렇제?
그래, 친구야!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렇게 들풀처럼 살이ㅣ내다가..
마침내 우리의 정해진 삶이 끝나면 뚜벅뚜벅 우주 속으로 걸어가면 그 뿐인기라.
기러기 깃털보다 목숨값이 가볍다해도 무어 그리 아쉬울 게 있으랴!
나는 죽기 전에 내 무덤가에 작은 사과나무 두어 그루를 심어 놓을 거야!
그러면 내 손주들이 마실처럼 할배 무덤에 왔다가, 나무그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것이고..
아! 그러면 나는 살아있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야.
세월은 그냥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고, 나는 태산처럼 무거운 삶의 짐을 잠시 벗어 놓고..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달천계곡에 발 담구고 있다가..
갑자기 친구생각이 나서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네..
ㅎㅎ..
그런데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막 놀아도 되나 싶기도 하네..
존경하는 벗!
어차피 딱 한 번 살다가 가는 인생, 느리게 조금 더 느리게,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 가는 것은 어떨까?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더라.
함께 여행도 더러 다니고, 전화도 자주하고, 기쁘고 슬픈 일도 함께 나누었으면 하네.
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친구님도 우짜등가 하시는 운동 열심히 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다음 기회에 꼭 다시 보세나..
★ 햇빛 맑고 단풍 고운 날, 달천에서 들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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