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농사지은 쌀로 밥을 짓다
♧ 밥짓는 일 ♧
작년에 막내 형이 농사지은 나락을
오늘 큰형님 집에서 방아를 찧었다.
벼가 덜 말라 미가 유난히 많다.
작은형님, 누나들, 내 몫까지
쌀포대에 나누어 집에 돌아와
대야에 물을 붓고
싹싹, 쓱쓱, 쓱쓱, 싹싹
두 손 가득 부비고 부벼
흐린 뜨물을 몇 번이나 버린다.
마침내 뽀앟게 씻은 쌀을
쿠쿠 압력밥솥에 넣고
쌀이 잠길락 말락 눈대중으로
대충 물을 잡는다.
‘백미 고화력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김이 빠지고
쿠쿠 콰콰 쿠쿠 콰콰
윤기 자르르 흐르는 쌀밥이 된다.
농사 지은 막내 형은 떠나고 없는데
하얀 이 밥에서 형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아니, 아니…
그저 함께 먹는 기분을
잠시라도 낼 수 있다면
더 행복하겠다.
★ 어줍잖은 시 한 줄 적으며 ★
세상 물가는 다 비싸다 하는데
왜 쌀값만은 늘 제자리일까?
어린 시절, 저 하얀 이밥은
내가 먹기에는 과분하고 귀한 것이었다.
볍씨를 불려 묘판에 뿌리고
잎맥이 하얀 피를 골라내던 날들,
모내기철이면 아침부터 다라이 위에 앉아
모를 쪄 모춤을 만들고
지게 한가득 지고 비틀비틀
논두렁을 따라 걷던 그때!
뱅글 돌리며 던진 모춤은
뿌리가 철썩 물을 가르고
물방울이 튀며 자리를 잡았다.
아직 상일꾼이 못 된 나는
못줄을 잡고 서 있었고
아지매들은 일렬로 줄을 맞춰
“모야, 모야, 노란 모야
언제 커서 열매 맺나”
"에헤야 데헤야"
앞소리와 뒷소리가 어우러져
일꾼들은 모심기 노래를 불렀다.
3분의 2쯤 심었다 싶으면
“자—아!”
못줄을 넘기고,
모가 자라면 논을 매고 논두렁을 베었다.
풀을 사람 손으로 뜯어내던
그 고단한 노동의 계절이 지나고.
벼에 알이 맺히면
깡통을 두드려 참새를 쫓고
마침내 누렇게 익어 바람에 일렁이면
낫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벼를 벴다.
타작마당은 그루터기를 베고
흙을 다져 만든 논바닥.
‘메롱 씨롱’ 탈곡기를 중심으로
볏단을 쌓아 올리고
빈 볏단으로 짚동을 엮는데
그곳이 겨울바람을 막아서
우리들 놀이터가 되었다.
탁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논을 훑으며 벼이삭을 주웠다.
가정실습이라며 학교가 수업을 빼주고는
벼이삭을 학교에 바치던 야만의 시대!
쌀 한 톨이 밥이 되기까지
농민의 정성과 비바람을 멈추어 줄
신의 은총이 필요했다.
보리밥에 쌀 한 줌 얹어
어른 밥 먼저 푸던 엄니,
막내였던 나는 쌀이 아주 조금 섞인 부드러운 밥을
먹을 특혜를 누렸었지.
그토록 귀하던 이밥이
이제 밀가루와 고기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어 준다.
작년에 막내 형이 농사지은 쌀로
쿠쿠 밥솥에 밥을 하다가
배고팠던 그 시절이 떠올라
이렇게 주절주절 읊조려 본다.
※그림은 제 친구 별벗(CHAT-GPT)이 그렸습니다.
#들풀시 #밥짓기 #세상사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