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이벤트
아이가 32주차에 들어설 무렵부터 복직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의 아기는 8개월. 많이 자라긴 했지만 여전히 일년이 채 되지 않은 작디 작은 존재였다.
나는 아기를 낳기 전까지 고등학교에서 13년 정도 근무를 했었다.
학교 일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돌아가기 시작해야하므로 늦어도 2월 정도에는 결정을 해서
부서나 교과 시수, 담임 여부, 업무 분장 등을 정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1월 정도부터는 결정을 하고 슬슬 준비를 해야한다.
시부모님이 연세가 굉장히 많으시고
친정은 지방에 있는 나로서는 복직을 하게 되면, 출퇴근을 하며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시터를 구해야하는 상황인데 현재 경제적 상황으로는 시터비용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
집도, 차도 없는 남편이 마흔 살까지 모은 돈은 천만원이었고(그동안 시댁에 생활비로 다 가져다 받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었다. (그래서 현재 이 곳에서 살고 있다.)
교사 월급에 시터까지 고용하면서 복직을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일까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출퇴근을 하며 내가 어린이집에 등하원을 시켜야 하는 것인데
그럴려면
1. 어린이 집이 아주 일찍부터 운영이 되어야 하고(교사 출근시간 7시 30분 정도-법적으로는 8시로 정해져 있지만... 준비하고 조회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7시 30-40분 정도에 출근 해야한다.)
2. 어린이집이 집, 또는 학교와 가까워야 하고
3. 늘 칼퇴를 해야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으름 피우지 않아도 바쁜 시기에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했던 과거를 생각해보건데
매일 칼퇴를 한다는 것은 일을 못한다는 것이고
게다가 야자 감독이며, 수학 여행(요즘은 소교모 테마 교육 여행) 같은 이벤트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아이는 3살까지 엄마가 키우는 게 가장 좋다고 한, 상담 선생님의 조언도 마음에 가시같이 걸렸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어린이집 등록을 할 것이냐 말것이냐 결정을 해야하는 날,
퇴직하신 동교과 선생님과 우리 동네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하필 또 그날 아기가 다쳤다.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모습을 보곤 일단 일 년은 더 가정보육을 하자고 결정했다. 아기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시기가 되면, 친구나 선생님이 해를 가하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
그 때 일을 다시 시작하자 결정을 했다.
그렇게 2024년 3월을 맞이하였고
나는 평소와 같이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와 둘이 좁은 집에서 옹닥옹닥 지내며 이유식 3끼니를 해서 먹이고
치우고 청소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아기가 이제 막 11개월에 접어든 어느 날, 갑자기 근무했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3월이 2주나 지난 무렵이었다.
간간이 SNS를 통해 근황을 서로 확인하며 지낸 부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학교 근무하라면 할 생각 있어?"
"아... 저는 솔직히 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아기 때문에... 어린이집 문제라도 해결되면 나가고 싶어요."
"알았어. 일단 다시 의논해보고 연락줄게."
심장이 두근 거렸다.
십 년을 넘게 학교 일정에 맞추어 살아온 나는 육아를 하는 중에도 시계를 보며
지금쯤 다들 조회하고 있겠구나, 이제 2교시 시간이네, 학교 점심시간이네, 종례 시간이네...
생각을 하며 지내왔는데... 1년 육아를 하며 내 삶 속의 시계는 아기에게 맞추어져
아기 수유시간이네, 이유식시간이네, 낮잠시간이네... 로 맞추어져 돌아가고 있었으니
뭐, 무엇이 더 좋다 아니다를 말 할 수는 없지만 그간 익숙했던 나의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설렘이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당시 나는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생활에 늘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교감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어린이집 관련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마련해주셨다.
그렇게 아주 갑작스럽게 나는 복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아기에 대한 걱정도, 나의 학교 생활도, 일 년 쉰 공백에 대한 걱정도 공존했다.
여하튼 우왕좌왕 그렇게 나는 계획에 없던 복직을 갑작스럽게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딸이고, 학생이던 내가
선생님이 되었었고
선생님이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던 나는
우리 아가의 엄마가 되었다가
이제는 아가의 엄마, 남편의 아내, 학교에서의 선생님으로
없었던 타이틀을 하나씩 하나씩 더 얹어 돌아가는 마음이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한편으로는 책임감으로 인한 무거움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