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는 지옥이다!"
인생은 일시정지로 보면 비극이고, 전체 재생으로 보면 희극이지 않을까?
작년 겨울로 되감기를 해서 잠시 일시정지를 해 본다.
그때의 우리 가족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의 클라이맥스 언저리에 있었다. 여느 비극이 그렇듯 답이 없는 갈등이 있었고 오래된 상처와 새로운 상처가 뒤엉켜 우리는 지옥과 현실을 오갔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지나던 작년 12월 나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갓 태어난 쌍둥이 아가들과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다고 하신 아버지의 바람에 언젠가 부모님과 스페인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얹어 말도 안 되는 용단을 내린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아무리 봐도 각이 안 나오는 이런 여행은 몇 번 검토하다 다음 기회로 미뤘을 가능성이 큰데, 어디서 그런 똘끼 어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무수한 기도의 산물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의 여행은 구성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도전적이었다.
* 사지 불능에 가까운 7개월 된 쌍둥이 아가 둘
* 걷기보다 유모차를 더 타고 싶어 하는 여섯 살 남아 하나
* 무릎에 통증 완화 주사를 수시로 맞으시는 어머니와
* 고장 난 무릎을 치료 없이 사시는 아버지
* 그리고 항시 피곤했던 서른다섯의 나
이렇게 여섯 명.
구성원이 이렇게 도전적이다 보니 나는 일정을 짜는데만 두세 달이 걸렸다. 아가들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쉽지 않긴 한데, 또 지금이 아니면 언제 부모님과 스페인을 다시 올지 모르니 구경할 것은 많고... 세상에 이런 난제가 없었다.
case 1에서 7까지 만들며 일정을 뒤엎기를 몇 차례, 무수한 고민 끝에 만든 최종 일정은 이러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5일
아버지가 쌍둥이들과 꼭 가보고 싶어 하셨던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에서 2일
스페인까지 왔는데 포르투갈에는 언제 또 와보겠냐며 포르투에서 3일
스페인에서 가장 큰 플라멩코 축제인 Feria de abril 기간에 맞춰 세비야에서 4일
※ 이동 경로별 일정 : 바르셀로나 5일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일 → 포르투 3일 → 세비야 4일
비행기 표를 구매하고 나서 출국하기 전까지 약 4개월간의 준비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 일자가 다가올수록 나는 예측 불가한 여행에 대한 걱정과 긴장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리고 D-day...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서 아가들과 씨름을 하느라 지친 어머니가 날카롭게 말씀하셨다.
"이거는 지옥이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