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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Jun 15. 2019

집밥의 재발견

함께 먹는 즐거움

여행 중 우리는 대부분의 식사를 숙소에서 해결했다.


아가들이 있어 숙소에 있는 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현지 식당이 비싸기만 하고 별로 입에 맞지 않다고 하신 부모님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것이었다. 유럽까지 가서 밥을 해 먹었냐는 주변의 잔소리는 아직도 듣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에서 먹는 편안함과 가격 대비 만족도는 여느 식당에 견줄 수 없었다. 아가들은 아가들대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어 행복해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건강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의 고기와 와인, 빵, 과일, 맥주는 맛까지 훌륭했다. 거기에 어머니가 살뜰히 챙겨 오신 매콤한 반찬과 인스턴트식품을 곁들이니 동서양이 함께하는 맛의 밸런스가 기가 막혔다.


우리는 매일 2~3유로대 와인을 한 병씩 마시며 저렴한 와인이 그렇게 맛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와인과 고기를 돈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장을 보며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고기 값에 기가죽어 마음 껏 카트에 담지 못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숙소에서


숙소에서 먹을 때는 대개 완전 무장해제된 채 먹는데 집중하느라 사진을 잘 찍지 못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는 숙소가 워낙 멋져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래된 저택이었는데 부모님도 이런 데서 언제 또 묵어보겠냐며 좋아하셨다. 두 분이 마주 보며 함께 식사하는 위의 마지막 사진은 따스한 평온함이 느껴져 좋다. 부디 이 모습이 영원하시기를 바란다.


쌍둥이 출산의 훈장으로 생긴 우뭇가사리 같은 뱃살을 없애기 위해 요즘 나는 난생처음 식단관리라는 것을 하고 있다. 온갖 먹고 싶은 것을 억제하며 고독하게 지켜내는 식단관리가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 꽤 효과적임을 체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 기억한다.


땡볕 아래에서 아기를 매고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걷다 마시는 맥주의 맛과, 빡센 하루 일정을 끝낸 후 숙소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 푸짐한 집밥의 맛을. 그리고 후식이랍시고 에그타르트에 레드와인이나 감자칩에 맥주를 멍하니 먹는 그 행복감을...


먹는 것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마음껏 먹고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 행복한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밖에서 피로로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숙소에서 헐렁한 옷을 입고 함께 밥을 먹을 때 행복이 절로 피어남을 알고 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늘 혼자 먹던 집밥이었기에 집밥의 가치를 몰랐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홀로 허기진 배를 채우러 한 끼를 대충 때우는 집밥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땀 흘리고 함께 먹는 집밥에는 분명 다른 생명력이 다는 걸. 허기지고 고독한 영혼을 채우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이것은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실로 내게 엄청난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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