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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May 27. 2019

버킷 리스트가 플레이될 때

'언젠가'가 '지금'이라는 신호가 올 때

지옥 같은 여행...


처음부터 천국같이 편안한 여행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은 지금 부모님과 내게 꼭 필요한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그럴 것 같다'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온 몸으로 퍼지는 확신에 가까웠다.


여행은 돈이 있을 때 가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가는 거라고 이 근거 없는 확신 하나로 나는 과감히 카드를 긁었다. 대출의 압박에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는 손이 떨릴 때도 있었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여행이라 생각하니 결연해졌던 것일까? 참 용감히 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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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를 실천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건가 보다.

모든 환경과 여건이 갖춰져 있을 때 실행 키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환경도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무수한 기도가 절로 나올 때

결연히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


실은 그동안 버킷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거나 작정하고 글로 써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과의 스페인 여행도 언젠가 꼭 해봐야지 하며 기약 없는 '언젠가'만 외치던 무수한 나의 희망사항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언젠가'를 넋 놓고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할 때, 그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라는 신호가 올 때 희망 사항은 버킷 리스트로 바뀌었다.


부모님과 여행하고 싶은 곳이 왜 하필 스페인이었지는 그동안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새삼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스페인이 나의 '그곳'이 되었을까...


12년 전, 스물세 살의 나는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었다. 그러던 중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기적처럼 얻게 된 기회가 6개월 간의 주스페인 한국 대사관 인턴쉽이었다.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낯선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는 감사한 경험이 계속되었다.


책이 필요할 때

친구가 필요할 때

스승이 필요할 때

여행이 필요할 때

돈이 필요할 때

음식이 필요할 때

입을 옷이 필요할 때

두통으로 잠시 누워 쉴 곳이 필요할 때


나의 모든 필요는 매번 넘치게 채워졌고 그때의 감사한 마음은 고이고이 쌓여 스페인에 오기 전 피폐해져 있었던 나의 마음도 치유해주었다. 이후 12년이란 시간이 숨 가쁘게 지나가며 나는 당시의 충만했던 기억을 많이 잊고 살았다. 그저 스페인은 내가 좋아하는 플라멩코와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고 썩혀둔 나의 스페인어를 써볼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모든 바람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나의 모든 필요가 채워지는 곳.


그래서 스페인이었나 보다. 언젠가 부모님과 꼭 한 번 여행하고 싶었던 '그곳'이...

성가족대성당을 원 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바르셀로나 숙소 옥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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