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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Jun 20. 2019

여행의 이유

기적과 같은 일상을 위하여

우리 동네에는 take out 커피 전문점이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900원에 헤이즐넛 라떼는 2400원. 시원한 헤이즐넛 라떼를 마시며 생각한다. 가격도 맛도 커피는 이제 스페인 보다 한국이 좋구나... 


예전의 나 같았으면 스페인이 좋은 이유는 쉽게 나열하지만 한국이 좋은 이유는 머리를 쥐어 짜내며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한국이 좋은 별거 아닌 듯한 이유가 그냥저냥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아가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테익 아웃 커피 한잔에 룰루 랄라 할 수 도 있고...

넘나 재밌는 TV 프로그램도 많고...


어제는 '대화의 희열 2' 김영하 작가 편을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너무 행복했다. 특히 최근 작가님의 흥행작인 '여행의 이유' 책과 관련해 나눈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나 들으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실패한 여행은 모든 게 너무 매끄러워 기억도 나지 않는 여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핫도그에 맥주를 마시다 비행기를 놓쳤던 얘기를 해주는데 당시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냐며 웃는다. 그때 비행기 값과 바꾼 그 핫도그와 맥주가 얼마나 귀했겠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은 좋지 않지만 가족과 여행을 하며 겪는 갈등은 좋은 거라고 한 얘기도 정말 공감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며 경험하는 갈등은 여행이 끝나는 순간 어떻게든 끝이 나고 나중에는 '그때 재밌었지'하는 추억이 된다고 말이다.


김중혁 작가님이 했던 말도 기억난다. 현지에서 음식을 시킬 때 아무도 안 시킬 것 같은 생소한 음식을 시키는데 그 음식이 맛이 있으면 맛있게 먹으면 되고 맛이 없으면 글로 쓰면 된다 했다. 성공만 하면 쓸게 없기 때문에 은근 실패하기를 기다린다고 까지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이번 여행을 계획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백이면 백 말렸던 여행이고 어머니도 나는 안 갈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 하셔 나중에 낼 취소 페널티까지 생각하며 예약한 비행기 표였다.


아가 둘의 14일 치 이유식을 만들고, 세네 시간마다 분유를 타 먹이고, 사람들 눈을 피해 기저귀를 갈고, 어딜 가든 아기띠를 매는 행군을 하고, 매일 저녁 아들 셋 목욕을 시키고, 밤 중 수유 수발을 하고... 실은 이 모든 것 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부모님의 마음속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힘든 줄 모르고 그 모든 매끄럽지 않은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찌 됐건 함께 하기 힘든 멤버들을 한데 모아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정말로 귀한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뭐 대단한 모험이 아니었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구경하고,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었다. 함께 서로의 모습을 보고, 눈을 바라보고, 별스럽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웃는... 그 일상적인 것이 꼭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너무 매끄러워 기억도 나지 않는 여행이 실패한 여행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의 여행은 성공, 아니 대박이다. 어머니 친구분들은 아가들이 그렇게 건강하게 지내다 온 것 만 해도 기적이라고 하셨다는데...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만 해도 기적이다.  


기적과 같은 일상...

그것만 해도 나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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