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서문
"급격한 도시화와 성장 중심 정책에서
안전이라는 단어가 소홀하게 여겨졌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까요?"
"그 시절, 응급실 또한 상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응급질환과 각종 사고로 위험에 빠진 환자들이 오는 곳이지만
병원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사각지대였는지 모릅니다."
"원래 개척자의 길은 불안하고 외로운 법이라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안전한 응급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아무것도 없던 맨바닥에서 힘쓰셨던 선배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름 :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950번
수련병원 : 가천대 길병원
현근무지 : 이천엘리야병원
그날을 기억합니다. 제가 중학생이던 때, 길을 지나다 TV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고 순간 멈춰버렸습니다. 무너진 시멘트 더미에서 사람들이 흙더미를 뒤집어쓴 채 켁켁대며 걸어 나오던 모습. 축 늘어진 팔다리와 함께 들것에 실려 나오던 의식 없는 환자들. 영화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날이었습니다.
이후로도 많은 분들의 뇌리에 충격과 공포의 아픔으로 기억되었을 대량 재난 재해 사건 사고들이 연이어 터졌었죠. 95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와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를 비롯한 각종 여객기, 지하철, 기차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급격한 도시화와 성장 중심 정책에서 안전이라는 단어가 소홀하게 여겨졌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까요? 건설 현장에서는 불법적인 증개축과 뇌물이 횡횡했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무관심이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개개인의 안전의식 부재도 한몫했고요. 그때만 해도 택시에 타서 안전벨트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니까 말이죠. 아니, 안전벨트 걸쇠가 의자 뒤로 숨어 들어가 아예 보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응급실 또한 상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응급질환과 각종 사고로 위험에 빠진 환자들이 오는 곳이지만 솔직하게 말하건대 병원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사각지대였는지 모릅니다. 당시에 응급실은 이제 갓 의대를 졸업한 인턴 선생님이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각 과 전공의 선생님을 호출하고 기다리며 버텨야 했던 곳이었죠. 그래서 응급상황이라 하더라도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제대로 처치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래와 입원 환자들에 우선순위가 밀려 지체된 응급처치로 상태가 악화되는 일도 부지기수였지요.
이런 현실을 자각하고 응급실에서 뭔가 변화를 가져오겠다며 고생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단 한 시간 배정된 응급의학과 소개에서 미국의 현장처치 사진을 보고 이게 진짜 의사의 길이라며 앞뒤 안 보고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전문의가 될 수 있을지 조차 몰랐다고 하지요? 원래 개척자의 길은 불안하고 외로운 법이라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안전한 응급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아무것도 없던 맨바닥에서 힘쓰셨던 선배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16분이 함께 해주신 응급의학과 1회 전문의 선배님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고 수정하고 교정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학회에서 뵈면 먼 어르신 같게만 느껴지던 분들도 지난 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며 몸고생 맘고생 많으셨구나, 그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제도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환자들을 볼 수 있었을까, 더욱 큰 감사함이 느껴졌습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는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 학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응급의학과 30년의 또 다른 발전에는 현직에서 뛰는 저희 후배들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겠지요. 선배님 여러분의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2019년 10월 응급의학과 1회 전문의 인터뷰 TFT 편집자 최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