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이야기 150817] 말기 암환자와 남은 가족들 #1
의대생 시절이던 어느 날, 수 일에 걸친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 안부인사나 드리려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헌데 전화를 받으신 할머니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이상했습니다. 떨리고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이상하다고,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화장실 갔다 와서도 계속 아프다고 한다며 불안해하고 계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오래전, 수술 중 발생한 수혈 부작용으로 C형 간염에 감염되어 시간이 지나 간암 말기로 진행된 말기 암환자였습니다. 당시에는 혈액 관리가 잘 안되어 수혈 후 감염 질환에 걸리는 일이 있던 때 였습니다. 간암 말기라 해도 한 번씩 복수를 빼 가면서 어느 정도 조절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복통 소식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복부 진찰을 어떻게 한다 정도만 교과서로 배운 멋모르는 초짜 의대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심한 복통으로 안절부절 못한단 얘기를 듣자 예삿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바로 근처에 있던 할아버지 댁으로 가니, 할머니 말씀대로 할아버지는 안절부절 못하며 화장실만 들락날락하고 계셨습니다. 변은 나오지 않는데 변이 마려운 듯한 느낌과 함께 배가 너무 아프다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잘 모르는 진찰이었지만 일단 할아버지를 눕히고 복부 진찰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배를 누르려 하니 딱딱하게 불러 오른 피부의 이상한 느낌이 손 끝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눌러지지도 않고 살짝 손만 대도 할아버지는 더 아파하기만 하고... 이제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제가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암 관리를 받고 계셨기 때문에 빨리 진료 받았던 병원 응급실로 이송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119를 통해 할아버지를 이송하는 것이 더 안전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까이 사는 삼촌께만 상황을 전하고, 타고 왔던 승용차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응급실로 들어가 혼잡한 저녁시간 응급실의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드디어 수액이 달리고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의 복통은 조금 잠잠해져 갔습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암 환자인 것을 감안해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했겠지요. 삼촌이 도착하면서 저도 놀란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진찰을 하던 주치의 선생님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이후 주치의 선생님이 배 안의 복수를 뽑아내는 복수 천자를 했는데 주사기엔 노란 복수가 아닌 새빨간 피가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간암이 커지면서 간을 둘러싼 막을 터뜨려 배 안이 모두 피로 채워지는 혈복강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의대생이란 얘기를 듣고 나름 자세하게 추가 설명을 해 주셨지만 의학용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게 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원인이 확인되었고 치료가 남았습니다. 간암에서 빠르게 흘러나오는 피를 수술로 지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시도하기 어렵고,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간암을 먹이는 혈관을 막아 지혈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삼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를 시도해보겠다고 했지만, 혈압이 유지되지 않아 시술 도중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치의 선생님 의견을 듣고, 저는 삼촌께 가족들의 시간을 갖자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무리한 시술을 포기하고 1인실로 입원해 가족과 할아버지와의 작별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눈에 띄게 심하게 부어오른 배로 인해 호흡곤란까지 심해져, 헐떡대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숨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를 병실까지 이송하는 동안 제가 짜 넣어주던 산소마스크 아래서 서서히 의식이 없어지던 할아버지 눈빛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결국 낮은 혈압과 호흡곤란으로 의식이 없어진 할아버지는 다음 날 새벽, 임종하셨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조용히 들어와 사망선고를 하는 동안, 저와 가족들은 참 많이 울었었습니다. 간암 말기 환자였으니 사실 예상 못한 작별도 아니었건만, 이렇게 갑작스레 가실 줄은 몰랐던 터라 슬픔은 작지 않았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가족들과 얘기하길, 당시 급한 마음에 무리한 시술을 강행했다면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해 후회가 남았을 것 같다며, 시술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가족과의 시간을 가진 것은 잘 한 선택이었다는 얘길 나눴습니다. 말기 암으로 인한 끊을 수 없는 고통을 오래 겪지 않고 급히 가신 것도,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의 큰 복이었던 것 같단 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몇 번, 할아버지의 돌아가실 때 이야기를 꺼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적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드린 안부전화가 할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함께하는 통화가 되었다는 것, 참 희한하죠?
지금도 응급실에서 고통에 힘겨워하는 말기 암환자를 볼 때면, 저는 외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150817 최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