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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응급실이야기 150908] 환자 보호자가 된 의사 아빠들 #1

진료 현장에서 많은 환자와 만나 진찰을 하고 아픈 이야기를 듣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의사들. 하지만 그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토끼 같은 자식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 일상의 삶을 삽니다. 그들의 일상의 삶에는 여느 사람들처럼 다양한 희로애락이 함께하고 있고, 그중엔 아픔도 있을 겁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아픔이 제 아이들의 아픔인 경우엔 더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겠지요.


내 아이의 아픔은 어느 누구에게나 특별한 아픔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예기치 않게 내 아이의 환자 보호자가 된 의사 아빠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먼저 우리 집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첫째인 아들은 건강하고 활발해서 몇 번 넘어져 다친 것 외엔 크는 동안 별 문제가 없었는데, 둘째인 딸은 태어났을 때부터 온 몸의 근육에 힘이 떨어져 걱정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생후 6개월쯤 되어 예방접종을 받으러 간 소아과에서, 아이의 골반 관절이 빠지는 소견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근육에 힘이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관절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걸을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대학병원 소아 정형외과 외래 진료를 위해 예약을 해 놓고 기다리는 2주간이 다른 때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기다리던 그 날, 아이의 골반 관절이 안정되도록 하기 위해선 만 두 살이 될 즈음에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전신마취로 재우고 양 다리에 칼을 대야 한다니요. 아내 앞에선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만 제 마음 한 구석은 이내 답답해져 왔습니다.


일단 우선은 양쪽 대퇴골두가 들어간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보조기를 적용하고 매 달 외래 관찰을 하기로 했습니다. 보조기를 채우고 다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나니 집에 와서 얼마나 짜증을 부리던지요. 특히 잠투정하다 잠에 들기 전, 힘없는 다리를 폈다 오므리며 보조기를 벗어내겠다고 용쓰는 게 참 안쓰러웠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울며 보채니 별 일 아니라고 애써 위로하던 제 마음도 결국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초음파로 관절 상태를 확인하면서 경과를 관찰하던 중, 먼저 오른쪽 관절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는 좋은 소식이 있었고 최근엔 왼쪽 관절까지 자리를 잡아 일단 수술은 미뤄두고 좀 더 관찰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밤마다 불편하다며 짜증을 부리기는 하지만, 보조기를 한 채 걷는 연습도 잘 하고 관절 상태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우리 집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비하면 참 행복한 아빠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보조기를 한 채 걷는 연습도 잘하고 관절 상태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몇 번 공개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잘 아는 의료인이면서 환자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시골의사’로 잘 알려진 박경철 선생님은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의료사고로 인해 뇌성마비를 앓게 된 아들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다행히 적극적인 치료 덕분에 상태가 매우 호전되었다고 하는데, 그 뒤에는 의사이자 아버지로서 눈물겨운 노력이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분으로는, 전임 대한 의사협회 회장이기도 한 노환규 선생님이 있습니다. 당시 결혼 후 인턴으로 타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해 외출도 못하고 정신없이 지내던 시기에 임신 중이던 부인이 응급수술에 들어간다는 급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영문도 모르고 수술에 동의하고 일을 정리한 뒤 달려가 보니 수술은 마무리 중이었고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여 일찍 양수가 터지면서 제대탈출이 발생했고 급히 응급실로 향했지만, 의료진들은 응급수술을 준비하던 중 태아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왕절개로 죽은 줄 알았던 태아를 꺼내고 보니 미약하게 숨을 쉬어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하고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심장이 제대로 안 뛰는 동안 뇌는 산소공급을 받지 못해 뇌손상을 입게 되는데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사망 판정을 받을 정도로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했으니 제대로 된 뇌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게다가 뇌출혈 진단까지 추가되어 3주째 되던 날엔 치료를 포기할 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떼고 지켜봤지만 아이의 심장은 미약하게 뛰고 있었고 산소공급까지 중단했지만 아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망 없는 퇴원을 하게 되었고, 장례 치를 준비를 하고 집에 데려온 아이는 서서히 보리차를 받아먹기 시작, 우유까지 먹기 시작하더니 한 달 뒤 첫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번의 사망 판정을 이겨내고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아이가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 고등학교 때엔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도 했을 정도로 장성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살기만을, 두 번째는 앞을 보기만을, 세 번째는 걸을 수 있기만을 바랐고, 그 다음엔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하는데, 이 모든 소원이 이뤄지면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노환규 선생님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기 - 노환규의 골든타임 <그러나 아이는 죽지 않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574124.html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의 두 분의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요. 자녀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사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가슴 아팠을지 상상만으로도 힘들어집니다만, 경과가 좋아 여러 사람들과 행복한 결말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여서 다행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제가 알고 지내는 한 외과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본인과 아이의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진솔하게 들려주셨습니다.


150908 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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