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상 Jul 24. 2024

001.불안에 관하여

-essay

아내와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쯤되어 광교역 부근의 헤르츠라는 카페에 왔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이 난 지금 백수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색적인 경험을 선호하는 아내가 찾은 카페였는데 LP를 틀어주며 음악감상을 하는 카페 였다.



문을 여니 내 몸뚱이의 두배가 되어보이는 커다란 스피커가 천장에 매달려 그의 몸을 조금씩 흔들어대며 팝송을 들려주고 있었다. 앤틱한 목조 형태의 테이블과 라운드 형의 손잡이와 그에 비해 얇은 다리를 가진 의자들의 형태와 그들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짙은 갈색은 카페가 아닌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웅장함과 고급스러움에 잠시 압도되어 즐비한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멈칫 서있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단정한 차림의 여자분이 웃으며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를 하였다. 우리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고자 적당해 보이는 자리에 얼른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앤틱한 분위기와 사뭇 다른 테이블 별 키오스크가 놓여 있었다. 와이프와 인터넷 쇼핑을 하듯 메뉴를 한 참을 뒤적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이너털 썸머라는 블렌디드 티 그리고 츄러스를 주문 하였다. 그제서야 와이프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게를 들어오고 꽤 시간이 흘렀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분위기가 아주 좋은데?


그게 나의 첫마디였다. 그제서야 여유롭게 카페 유리창 밖을 쳐다보니 하늘은 언제라도 물을 뿌릴 기세로 잔뜩 구름들이 몰려와있었지만 되려 그러한 그레이 톤의 배경이 이 카페의 고급스러움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본래 카페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쓸 작정이었으나 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아내와 조금 더 만끽하기로 하고 컴퓨터를 꺼냈다가 다시 뚜껑을 덮어버렸다. 뭐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출근할 것도 아니니깐.


난 자유다.
컴퓨터를 덮는 순간 난 내가 자유롭다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거꾸로 말하자면 난 불안함을 자주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예기불안(anticipating anxiety)이라고 부르는 나의 불안은 아직도 일어나지않은 미래의 일까지 나를 언제나 지치게 만들었다. 히 어딘가에 얽매여 있을 때 나의 불안은 한도가 보이지 않았다. 공중화장실에서는 뒤에 누군가 서있다면 난 볼 일을 보지 못한다. 남들도 다받는 스트레스지만 시험기간에는 난 특히 쇠약해져 우황청심환은 필수요소 였다.



30대가 되고 이런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켜주는  사건들이 쉴새없이 발생하였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보름 사이에 급작스레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2005년 할아버지의 소천 이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죽음이었다. 그게 내게는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내정신은 견뎌내지 못하고 과호흡증과 고혈압을 최대 200까지 찍으며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가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내게 있어 죽음이란 젊음과는 상반되었고 지금까지 내 연령대와의 이별은 먼 곳으로의 이사 라든지 퇴사 라든지 그러한 평범한 이유 였기에 큰 충격에 휩쌓이게 된 것이다. 죽음.. 30대때 내게 증폭시켜준 큰 불안함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두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평생을 함께 할 것만 같던 여자친구와의 이별이었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원대하게 바랬던 꿈은 33살에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 인연을 만나는게 어찌 쉬운 일인가? 나의 신중함과 나를 받아주지 않았던 당신들로 인해 나의 20대는 연애의 역사가 없었다. 그러다 30살이 되며 만나게 된 여자친구였다.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우린 생일이 같았다. 마침 운명 같았다.(당시에는.)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나는 네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너는 내가 집 안 반대로 널 지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32살에 헤어졌다. 33살 까지는 1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아픔은 그 뒤로 36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날 때까지 치유 되지 않았다. 그렇게 33살의 결혼이라는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고 나의 불안함은 사람과의 인연도 제어가 어렵다는 불안함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36살 아내를 만나고 잠시 불안함도 잊는 듯 하였지만 내 안의 불안함은 나를 놓아주지았다. 2018년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죽음의 무차별 공격에 난 속수무책 엎드려 울뿐이었고 2019년 난 내 스스로도 감당 못할 급성당뇨로 몸무게를 30kg을 감량하며 건강에 대한 불안까지 극대화가 되었다.


그리고 2024년 계를 탄 것처럼 최고의 불안감에 살고 있다. 모처럼 자리를 잘 잡았던 회사서 퇴사를 하고 6개월 사이 회사 두 곳을 다니고 퇴사를 반복 한 것이다. 2024년 상반기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를정도이다.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고.


몇해전 부터 아내와 열심히 하고 있는 시험관도  최근에는 잘 되지 않아 부어있는 아내의 배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보유하고 있던 집도 역전세가 나고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지며 빚에 빚을 지고 금전적으로도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


컴퓨터를 덮는 순간 난 내가 자유롭다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자유의 반대말은 불안이 아닐 수 있겠지만 어쩌면 불안의 반대말은 자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끝.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내 생애 첫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