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상 Aug 04. 2024

#4. 다크투어: 제주4.3사건을 아시나요?

#4.3사건 #제주도

1914년 6월28일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인해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왕위계승자인 프란츠페르디난트 부부가 14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배국인 도시였던 사라예보에 방문하였다가 검은 손 일원의 한 청년의 총에 왕은 머리에 총을 맞고 왕비는 복부에 총을 맞아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로인해 세르비아에 전쟁선포를 하고 모두가 잘알듯 러시아, 독일등이 개입을 하며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TV에서 배우 조진웅이 4.3사건에 행사에 나온 것으로 알게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2018년 경이었던 것같다. 호기심에 4.3사건에 대해 검색을 해보게 되었고 사건의 발단을 보고 앞서 말한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사건이었다.

1947년 3월1일 28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야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기념식 후 시가행진을 하다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에 탄 말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을 한다. 이를 무시하고 그냥 가려던 기마경찰을 향해  일부군중이 돌을 던졌고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격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며 6명이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거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당시 이념등과 함께 뒤섞이며 무려 7년간 제주도민들의 학살등으로 끔찍한 악몽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제주4.3사건 당시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피난하는 사람들(강요배 그림).


그 악몽들은 글로 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분명 아이를 다치게 하고 그냥 가려던 인륜적인 사건의 발단이 어느새 좌익과 우익의 이념의 문제로 변질 확산이 되었고 경찰을 넘어서 군대병력까지 개입이되는 커다란 사건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사건의 희생은 제주도민이 고스란히 안게되었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도 예외없이 학살이 진행이 되었고 당시 발발하였던 6.25참전이 오히려 젊은 청년들에겐 살길이라 여겨졌을 거라 하니 얼마나 당시 끔찍했을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우리가 도달한 4.3평화 공원  입구에는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놓여있었고 우리나라의 평화적 통일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독일에서 통일 당시 벽을 허뭉 일부를 기증한 것이었다.
입구에서는 뜬금없이 남북통일의 염원이 3.8선에 위치란 판문점이 아닌 왜 제주도 4.3공원일까 의아하였지만 출구에서는 이념의 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제주도에 장벽이 왜 놓여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조용히 제주도의 아픈역사가 회복되고 남북통일이 이뤄지길 기도하였다.


이전 03화 #3.제주도와 기독교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