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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Aug 03. 2024

#3.제주도와 기독교이야기

#이기풍선교사 #성지순례

인류에게 있어 최초라는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의 첫 발을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다. 사실 달착륙 후, 최초의 사진의 주인공은 암스트롱이 아닌 조종사 에드윈 올드윈이었지만(당시 카메라는 암스트롱만 갖고 있었다고 한다.) 최초로 달의 첫 발을 내민 사람은 암스트롱이었기에 우리에게는 그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여행길에 있는 제주도의 최초의 원주민이 누구였을까? 부터 시작되는 호기심은 이번 여행의 메인 주제인 성지순례에 톤앤매너를 맞춰 누가 제주도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였을까? 최초의 교회는 어디일까? 라는 질문들로 파생되었다. 

 우선 제주도 최초의 원주민에 대한 것은 기록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이라 분명치는 않고 논란이 많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지가 애월읍에 있는 빌레못 유적지라고 한다. 평평한 암반이라는 제주도의 말과 주변의 연못을 합쳐 부른 이 곳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구석기 시대로 이때부터 인류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허나 당시에는 제주도가 섬이 아니고 육지에 붙어있었고, 화산활동이 있던 시대라 제주도의 진정한 원주민(선주민)이라 보기 어렵다. 그래서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갈 즈음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오르며 섬으로 변하는 이 시기에 사람들을 제주도 최초의 선조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고보니 이때 제주도가 최초 섬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2'에서 발췌.출처 : 제주도민일보(https://www.jejudomin.co.kr)

자자. 오늘따라 #최초라는 말에 꽂혀 서두가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우리가 찾아간 장소의 주인공인 이기풍 선교사님의 기념관이었다. 이기풍 선교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기독교인이자 제주도에 #최초로 기독교 전파를 위해 애쓰신 분이다. 평양출생으로 1907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제주도로 파송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목사이자, 제주도에 최초로 기독교를 내리신 분이 있는 기념관에 오는 것이 성지순례의 당여한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허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빗물에 깨끗이 씻겨져있었지만 기본적인 관리만 되고, 인적드문 건물이 우뚝 서있었다. 입구는 굳게 잠겨져 있었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코로나19 이후로 문을 닫았다는 말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차에 내려 기념관 주변의 건물들을 걸었다. 어느 틈엔가 비는 또다시 그쳤다. 건물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건물 앞 쪽에는 비석 3개와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기풍선교사님, 그리고 그에게 전도를 받아 기독교 전파에 이바지한 이종도 목사님,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하신 배형규목사의 비석이 세워져있었다.그리고 그 옆에 십자가가 우뚝 서있었다. 우리는 각 비석으로 가서 잠시 묵념을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평양에서 태어난 이기풍목사님은 믿음을 받기 전 노방전도를 하는 새뮤얼 모펫이라는 미국인 목사(한국이름마포삼열)를 돌로 쳐 피를 흘리게 할정도로 안티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대한민국의 최초의 기독교인이자 제주도 최초의 기독교 전도자가 된 한국의 사도바울의 명칭을 얻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그는 성안 교회를 중심으로 10여 곳의 교회들을 세웠고, 그러한 그의 영향으로 이종도 목사님 등 걸쭉한 기독교인들을 양성하여 제주도 기독교 전파에 이바지 하였다고 한다. 1938년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가 일흔의 나이로 모진 고문 끝에 42년 휴우증으로 소천하셨다. 


비록 기념관안을 들어가보지 못하였지만 비석에 세겨진 그의 이야기들이 옆에 우뚝 서있는 십자가에서 뿜어져 나오며 그 날의 기적과 감동들을 우리를 이끄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나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내 일에 대한 내 커리어에 대한 성과에 얼마나 집착하였는가?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얼마나 매달리고 욕하고 그러하였는가? 그러한 나날들 중 기독교 전도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 스스로에게 되묻자 많은 부끄러움이 들었다. 


기도를 마친 우리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차에 다시 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주안점을 정말 엉뚱한데 두고 있었다는 후회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생각들을 많이 하며 또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하였다. 어느 새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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