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와에필로그유례 #시작하는글 #마케팅자서전
첫 시작하는 글의 제목부터 고민하였다.
프롤로그? 시작하는 글?
뭐든지 시작과 끝이 깔끔한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민이었다.
'그런데 프롤로그의 유례는 무엇일까?'
뜬금없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어원적으로는 'Pro-'라는 '앞'과 '-logue'라는 '이야기'로 뜯어볼 수도 있었지만 왠지 이 용어의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검색을 해 보니, 역시나 관련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이야기로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창조주이자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프롤로그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에피메테우스는 자신을 생각하고 뒤를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라 한눈에 반한 판도라와 결혼하며 인류의 불행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필로그는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인 에피메테우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두가 길었다. 하지만 이미 서두의 이야기에 내가 마케팅에 대한 담고 있는 생각을 모두 말하였다.
마케팅은 스토리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거대한 '내러티브의 스토리' 이것이 마케팅의 기본 원칙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7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직도 종종 동대문 시장에 구경하러 가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동대문 시장에서 구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버지와 함께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겁다. 걷다 보면 길거리에서 보따리를 펼쳐 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디지털 매체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도 아직까지 그렇게 장사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의심해 볼 젊은 친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관점을 조금 바꾸면 형태가 바뀐 거지 시대에 뒤쳐진 것이 아니다. 셀럽들이 홈쇼핑 등 온라인을 타고 온갖 스토리텔링을 하며 물건을 팔고 있지 않은 가? 단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공간적 개념의 변화인 거지, 바뀐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은 참 모순 적이다. 굉장히 트렌디해야 하면서도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10여 년을 마케터로 살아왔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마케터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싶어도 경력을 변경하여 이직하기란 쉽지는 않다.(물론 나이가 있어서도 있겠지만...) 물론 마케터를 10여 년 간했다고 내가 마케팅의 대가이다, 내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10여 년을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다. 왜냐하면 트렌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마케팅의 기본 원칙이 있으니깐.
그것의 첫 번째가 바로 마케팅은 '스토리'라는 원칙이다. 다시 한번 시간을 돌려 과거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쯤, 학교에서 급식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그전까지는 어머님이 도시락 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싸 주셨는데, 도시락 가방 없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다고 하니 모두가 관심이 참 많았다. 그런데 급식을 도입한다고 하니 여러 급식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였다. 당시 전교 부회장이었던 나는 급식 업체들을 선발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브리핑을 듣고, 투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참여 업체가 총 3곳이었는 데 그중 한 곳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유명한 대기업이 있었다. 시작 전, 난 당연히 그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대기업 업체의 브리핑이 끝나고 마지막 참여 업체가 브리핑을 하였는데 생각지도 않은 대 이변이 일어났다. 첫 번째, 두 번째(내 기억으로는 대기업은 두 번째였다) 업체들은 그냥 평범한 급식 반찬 수와 얼마나 훌륭한 식단을 그들이 제공하는지를 어필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세 번째 업체는 앞서 말한 반찬 수, 훌륭한 식단 이외 한 가지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급식을 덮는 뚜껑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급식 배분 방식은 복도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1층에서 급식을 올려 복도에서 나눠주는 방식으로 프로세스는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까지 음식의 먼지가 들어갈 수 있으니 소중한 아이들을 위한 위생을 위해 개별로 덮개를 덮어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위생"이라는 킬링 워드를 연결하여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텔링'에 그 현장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어린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 '스토리' 하나에 중소기업이 선정되었다. 유명한 대기업이 있었어도 말이다. 즉, 특별한 '스토리' 하나가 브랜딩을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1990년대 난 목격 한 것이다.
아! 여기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디어잖아?
지금 여기서 내가 말하는 '마케팅은 스토리'라는 범주가 좀 더 넓다. '이 제품은 이러한 사유로 만들어진 스토리가 있어요!'라는 거대한 서사가 담긴 것도 스토리가 될 수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왜 이것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묵시적 설득이 담긴 메시지가 내가 말하는 마케팅의 '스토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 인생 최초로 시도한 스토리가 담긴 마케팅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앞에서 잠깐 전교 부회장이었다고 언급을 했는데, 난 감투 욕심이 참 많았다. 지금은 극 'I'이지만 당시에는 극'E'로 친구들 앞에 나서는 것을 참 좋아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당시에는 국민학교였지만) 반장 선거에 나갔는데 딱 '한표'가 나왔다. 내가 쓴 내 이름. 너무도 어린 나이였지만 집에서 참 많이 울었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난 1년 동안 고민하였다. '내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반 친구들도 바뀌다 보니 서로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황 속에 투표를 하였고, 나 자신을 잘 어필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는 한 반에 60명 이상이었기 때문에 새 학년이 되면 정말 모르는 아이들이 많이 섞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난 나만의 특별함을 스토리텔링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반장 선거 날, 미리 부모님께 부탁한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교단에 서 서 내가 반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열변하였다. 아이들은 압도적인 몰표로 나를 뽑아주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끊임없이 투표용지에서 내 이름이 불리던 게 귀에 선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상이 특별했기 때문에 무조건 뽑혔다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 나는 나름 전략적이었고, 굉장히 치밀했다.(왜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지?) 당시 반장은 '신뢰'를 받을 만한 믿음직한 인상을 주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당시의 트렌드였다. 나는 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정장'이라는 의상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정장은 아버지들이 일터에 나갈 때 입는 일종의 신성하고 듬직한 의상이었기에 그것과 연상될 수 있는 '신뢰'를 주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었다. 즉, 내가 특별함에만 꽂혀 수영복만 입고 나왔다던지, 반짝이가 붙은 요란한 옷을 입었다면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좋은 제품들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아이디어도 가지각색이라 무엇을 선택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구매량, 리뷰 수, 리뷰 내용까지 꼼꼼히 읽어보며 소지자들이 어렵게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기본적인 제품의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리뷰 작성 이벤트까지 케어한다. 그렇게 기업들의 스토리는 '아이디어'를 내세우기도 하고, '리뷰가 가장 많은 제품'으로 다양하게 스토리텔링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마저도 너무 진부하다. 진부한 이야기는 흥미가 없다. 흥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마케터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흥미를 찾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참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나의 반장 선거 전략처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은 그 시대의 트렌드를 녹인 공감 포인트를 살리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내가 경험하고 목격한 마케팅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거기다 마케팅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팁도 함께 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케팅의 이야기는 누구보다 전문적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경험적이고, 누구보다 스마트하다고 자부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정감 있는 마케팅 사례가 많다. 그리고 앞에도 말했다시피 난 마케팅 전공자가 아닌 역사학 전공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초보자로 어떻게 15년 차 마케터로 살아남았는지 쉽게 말해 줄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끝까지 버틴 자가 강한 자라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의 마케팅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