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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보명 Oct 27. 2016

파란만장 나홀로 모로코 (2)

마라케시와 애증의 유심

마라케시에서 사막이 있는 하실라비드로 가는 수프라투어 버스는 하루에 딱 1대 뿐이라 매진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인터넷 예약 시스템도 없어서 하루 앞선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표를 사러 가려고 했으나 늦잠을 자버렸다. 늦기도 했고 거울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면도를 생략한 채 부랴부랴 준비해서 호스텔을 나섰다. 어젯밤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지나온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골목은 평화로웠다.


마라케시 시내버스 노선도

여행자들의 필수 앱이자 전지전능하신 구글 맵님이시지만 애석하게도 마라케시 대중교통은 지원하지 않으시니, 익숙한 그 이름 알사 버스 홈피에서 노선도(http://alsa.ma/en/marrakech)를 폰에 저장해 다니면 유용하다! 곧 이야기하겠지만 모로코에서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만일을 위하여 오프라인으로도 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항버스를 제외한 마라케시 시내버스 요금은 4디르함인데, 정류장 표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곳도 있어서 눈치껏 타야 할 때도 있다. 버스 안에는 정류장 안내 전광판은커녕 안내 방송조차 없으니 구글 맵에서 수시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하차 버튼이 있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작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럼 대체 어떻게 내리냐?! 굉장히 신박한 방법이 있다.


내리고 싶을 때 창문을 세게 두드리면 된다...! 처음에는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아재요~ 나 좀 내려주이소!"하며 이번 정류장에 멈춰달라는 신호였다.


수프라투어 버스 터미널 위치. 우측에 있는 건물이 기차역이다.

수프라투어 버스 터미널은 마라케시 기차역 에 위치해있다. 처음에 역 안으로 들어가서 헤매다 경비원에게 물었더니 분명 역 안(Inside)에 있다고 해서 매표소로 갔더니 역 안에서는 기차표만 판다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결론은 역에서 큰 길을 따라 더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라케시-하실라비드(메르주가) 편도 버스는 235디르함이며 왕복으로 끊어도 되고 돌아오는 표는 하실라비드에서 사도 된다. 성수기가 아니기도 하고, 왠지 왕복표를 샀다가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겨서 돌아오는 버스를 놓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일단 가는 표만 끊었다.


표를 사고 역에 있는 Maroc Telecom 대리점에 유심을 사러 갔다. 컴퓨터는 3대인데 직원은 단 1명이고, 데스크는 ㅁ자로 생겼는데 복사기가 그 바깥에 있어서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하고 ―파란만장과 함께 이번 여행의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총체적 난국이었다.


기다림 끝에 유심을 사고 역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맥치킨 세트를 시켰다. 외국을 여행하면 항상 한 번은 맥도날드에 가는데, 이 매장은 과연 매뉴얼대로 운영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가장 체계가 없어보인 곳이었다.


먹으면서 유심을 장착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먹통이었다. 다시 그 대리점에 가서 얘기했더니 폰을 확인해보고는 이상이 없다며 계속 껐다 켜보라는 말만 했다. 아니 이상이 없으면 껐다 켤 이유도 없거니와 내가 설마 재부팅도 안 해보고 왔겠나...


모로코니까 그러려니 자포자기하고 ―여행 이틀째에 이미 해탈했다 전날 공항에서 혹시 몰라 받아둔 Inwi 유심을 꼈다. 다행히 200메가가 들어있어 당장은 쓸 만했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다는 이문세(갓문세)의 노래와 빨강머리 앤 짤방이 떠올랐다.




(사진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그 유명한 마조렐 정원을 향했다. 입구를 찾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지만 그래도 학생 할인이 있어 기분 좋게 들어갔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나처럼 인터넷에서 본 새파란 예쁜 건물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면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첫째, 인터넷에는 그 건물을 정면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이 돌아다니는데 실제로는 그 위치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걸 깨달았을 때의 허무감이란... 둘째, 사람이 너무 많아 예쁜 사진을 건지려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2016. 10. 11. 모로코, 마라케시, 마조렐 정원

남자 직원이 여자 관광객들 사진을 열과 성을 다해 화보 촬영하듯 찍어주길래 나도 부탁했더니 나를 배경으로 나무를... 찍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여자 관광객들이 부탁하자 그는 다시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로 변신하였다. 그래도 사진 욕심을 버린다면 충분히 괜찮은 관광지이다.




2016. 10. 11. 모로코, 마라케시, 쿠투비아 모스크

다시 제마엘프나 근처로 돌아와 쿠투비아 모스크를 둘러보았다. 아쉽지만 다른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제마엘프나의 한 식당에서 드디어 모로코 대표 음식인 타진을 먹었다. 모로코식 카레 같은 느낌인데 나쁘지 않았다. 빵과 함께 먹으면 조합이 괜찮다. 모로코는 거리에 고양이가 무지 많은데 이 식당 역시 야외에 앉았더니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얘네 엄청 영악해서, 밥 먹고 있으면 옆에 와서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눈을 땡그랗게 뜨고 계속 쳐다본다. 그래도 먹을 걸 주지 않으면 의자에 올라오려고까지 한다.


제마엘프나 주변 메디나에는 다양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 중 한 골목을 큰 길이 나올 때까지 구경하며 걸었다. 골목이 워낙 좁은데 사람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도 많이 다니고 삐끼도 많아 일부러 백인 가족 뒤를 따라가며 구경했다.


중간에 한 상점에 들러 사막에서 쓸 두건(?)을 샀는데, 주인이 말도 안 되는 무려 950디르함(!)을 불러제끼길래 안 산다고 나가는 쇼잉을 했더니 "Berberian way"로 하자며 흥정을 시작했고 250디르함에 합의를 보았다. 처음 부른 가격의 4분의 1이니까 나름 잘 깎았다고 생각하고 두건을 받아들고 나와서 걸어가며 계산해보니 그냥 절댓값이 비싼 것이었다. 어제의 택시에 이어 두 번째 호갱이 된 나는 역시 장사는 나랑 안 맞다고 생각하며 시장을 빠져나와 근처의 다른 Maroc Telecom 대리점을 찾았다.


이 대리점은 아침에 간 곳보다 훨씬 크고 비록 기계가 고장이긴 했지만 원래는 번호표도 뽑는 나름 체계적인 곳이었다. 직원이 영어를 못한다길래 폰 언어 설정을 불어로 바꿔서 건넸더니 뚝딱 해결해주었다. 대체 아까 그 대리점은 왜...?




해가 지고 쿠투비아 모스크를 다시 찾았다. 밤이 되니 모스크 앞은 마라케시 사람들에게 만남의 광장 혹은 공원처럼 휴식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사는 모습도 결국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고 이틀 만에 처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유도 잠시, 어젯밤 맛보기로 살짝 경험한 야시장 구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곳의 분위기는 다른 어떤 상황을 예시로 들어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제마엘프나 광장과 그 주변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 공간을 묘사하기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광장 전체가 거대한 시장으로 변하고 한켠에선 갖가지 공연이 펼쳐지며 광장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도 사람이 넘쳐난다. 이토록 신비한 장면이 많음에도 사진 찍히기를 꺼리는 모로코인들이라 눈으로만 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손사래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포장마차 같은 음식점들도 늘어서는데 백인 손님이 가장 많았던 1번 식당―그렇다. 엄청난 무질서 속에도 나름 각 포차마다 번호가 있다!―에 자리를 잡았다. 나처럼 혼밥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년간 혼자 여행하며 쌓은 내공으로 꿋꿋이 맛있는 야식을 흡입했다.


유심에 데이터가 얼마 들어있지 않아 충전 쿠폰을 샀다. 쿠폰은 작은 슈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쿠폰 번호에 *3을 붙여 555에 문자를 보내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충전할 수 있다. 그러나 쿠폰에는 *3을 붙이라는 설명이 없는데, 이것만 본 나는 *3을 안 붙이고 문자를 보내버렸고 데이터가 아니라 돈만 충전되어버렸다.


대리점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고 고객센터는 전화도 불어, 문자도 불어, 호스텔 직원은 자기 쓰는 통신사 아니라 모르겠다고 하고 내일 버스는 대리점 문 열기 전 출발이고 하실라비드엔 대리점 없을 것 같고 결국 마라케시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며칠을 데이터 없이 살 생각에 아찔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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