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사막 바로 옆에 위치한 하실라비드는 확실히 마라케시보다 덥고 건조하다. 숙소에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영복을 챙겨왔고 날씨도 수영하기 딱 좋았지만 막상 오니 할 마음이 안 생겼다. 아침에 만난 한국인 형과 함께 사막 투어 때 챙겨갈 물과 다음 날 탈 버스표도 살 겸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하실라비드는 아주 작은 마을이고 마땅한 식당도 거의 없다. 그나마 평점이 높고 숙소와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평점은 식당이 아니라 숙소에 대한 것이었고 식당으로서는 최악에 가까웠다.
위에 보이는 계란찜 같은 메뉴와 함께 꼬치구이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는데 손님이 거의 없었음에도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기다려서 먹게 된 계란찜 같은 저것은 너무 짜서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였고 꼬치구이는 바로 구웠다고 하기에는 너무 식어있었다. 제일 기본적인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빵과 감자튀김이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모로코가 전반적으로 파리가 많고 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지만 이 식당은 특히 심각했다. 웬만하면 그냥 먹었을 텐데 음료수 병과 컵에 파리가 하도 달라붙어서 도저히 입을 댈 수가 없었다. 밥을 먹으러 갔다가 파리들에게 밥을 사주고 온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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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라비드는 작다 못해 얼핏 보기에 폐허 같기까지 하다. 집집마다 개성 있는 창문만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는 듯하다. 모로코의 대표적 사막 투어 지역인 덕에 관광객들이 꾸준히 이 마을에 인공호흡을 하는 느낌이랄까. 더구나 비수기라 그런지 활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3편에 언급했듯 유독 한국 관광객들에게 이곳의 두 숙소가 유명해서, 보통은 아시아인 관광객을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데 비해 이 마을 사람들은 보자마자 한국인이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숙소 직원들이 한국 돌아가면 블로그에 글 잘 써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내가 머무른 Auberge La Source와 그 옆에 붙어있는 Auberge l'Oasis는 마을의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사막과 바로 맞닿아있다. 이 두 곳 외에도 이 마을에는 사막 투어를 하는 숙소가 여럿 있어 주변에서 쉽게 낙타를 볼 수 있다.
오후 5시가 되면 사막 투어를 시작한다. 날씨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막 투어에 필요한 준비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 1.5L 2병
물은 출발 전에 마을의 슈퍼에서 각자 준비하거나 숙소에서 구입해야 한다.
물휴지
사막에는 화장실도, 수도 시설도 없다.
선글라스
햇빛과 함께 모래도 막을 수 있다.
스카프
모래 바람으로부터 입과 코를 보호할 수 있다.
슬리퍼 또는 샌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라 낙타에서 내려 걸을 땐 거의 맨발로 다닌다.
밤에 입을 따뜻한 옷
사막의 밤은 춥다. 정말 춥다. 출발할 때 안 춥다고 방심하면 큰일 난다.
립글로스
무지 건조하다.
이것들을 담을 작은 가방
Sky Map 앱
핸드폰을 하늘로 비추면 보고 있는 별의 이름과 별자리를 알려주는 앱이다.
(나처럼 별 사진을 찍을 계획이라면) 삼각대
술을 팔지 않기 때문에 미리 구해 가면 좋아한다고 하는데 없어도 무관하다.
낙타는 출발할 때 가이드가 지정해주는데 복불복이다. 어떤 낙타는 순하고 어떤 낙타는 말썽꾸러기일 때도 있다. 약 2시간을 타고 사막으로 들어가는데 출발할 때는 신기하지만 조금 지나면 엉덩이도 아프고 무엇보다 떨어질까 봐 손잡이를 너무 꽉 잡아서 손과 팔도 아프다. 또 많이 흔들려서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현지 가이드 2명이 동행하는데 워낙 프로들이라 맨 위의 커버 사진 같은 멋진 사진도 알아서 척척 찍어준다. 이 넓은 사막에서 지도도 없이 길을 찾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둘 중 한 명은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데 항상 우리에게 그냥 "Good?"도 아니고 "Very good?"이라고 물어서 불편한 게 있어도 이야기하기가 뭐한, 이를테면 답정너였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사막에 위치한 숙소(천막)에 도달한다. 사막의 일몰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오로라 같은 구름과 함께 모래도 붉은빛을 내기 시작한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사라지고 구름의 붉은빛이 머리 위에서부터 해가 넘어간 곳을 따라 사그라들면 마을과 달리 빛이 없는 사막은 빠르게 어둠과 추위에 잠긴다.
해가 완전히 지면 가이드들이 준비한 타진을 저녁으로 먹고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 하늘에는 슬슬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하라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별을 올려다보며 베르베르인들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자 행운이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날도 처음엔 구름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맑은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무렵 삼각대를 꺼내 카메라 배터리가 다될 때까지 덜덜 떨며 밤새 사진을 찍었다. 달이 너무 밝은 것이 아쉬웠다. 전등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지만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이 추위에도 가이드들은 밖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 날 마라케시로 돌아가는 버스가 아침 8시에 있어서 사막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야 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어느새 달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있었고 하늘에는 훨씬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본 순간이었다.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 시간이 지나면 달이 넘어간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평소 여행하면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정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처럼 배터리가 없을 때도 있고, 빗방울이 날릴 때도 있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라만 봐야 할 때도 있고, ―내 능력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진이 실제 모습을 따라오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순간의 감정들을 사진은 담아내지 못한다.
다시 낙타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2시간 내내 눈은 하늘을 향해있었다. 육안으로 은하수도 얼핏 볼 수 있었다. 별똥별도 평생 본 것보다 많은 5개나 보았다. 경이로운―이라는 형용사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이 순간은 말로도, 사진으로도 절대 전달할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해가 뜰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마라케시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면 매우 정신없는 아침이 될 것이기에 사막 투어 시작 전에 숙박비를 미리 결제하고 버스표도 미리 사두는 것이 좋다. 반면 페스로 가는 버스는 오후에 있어 한결 여유롭다.
3편에서 버스를 탈 땐 반드시 자기 자리에 앉자고 했었는데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하실라비드에서 버스를 타니 내가 앉아야 할 좌석과 그 주위에 중국인들이 앉아있었다. 다른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때 중국인들에게 내 자리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마을들을 들르면서 점점 버스 안에는 빈 자리가 줄어들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내가 앉은 자리의 주인이 나타났고 나는 다른 자리로 옮겨야 했다. 한 번 옮기고 말겠거니 했는데, 옮겨 앉은 자리의 주인도 나타나 또다시 옮겨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앉은 경우가 있어서 혼란스러운 여정이었다.
마라케시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야시장이 열린 제마엘프나와 이제는 익숙한 메디나 골목을 능숙하게 지나 며칠 전 묵었던 호스텔에 다시 도착했다. 사막에서도 버스에서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에 금방 잠이 들었다.
(마지막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