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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Sep 07. 2018

나는 벌레포비아가 있다

걔들은 나를 무서워할지 몰라도 내가 더 무섭다

※중요 - 본 글에는 당연히 벌레 사진이나 그림이 없으니 안심하시길


 이것이 어떤 의학적 질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혹은 어떤 심리학적 설명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건 나는 벌레포비아가 있다. 포비아는 딱히 위험하거나 두려울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극도로 회피하고픈 공포감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나란 사람은 벌레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많은 것들을 '사실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상황'이나 '누군가가 볼 땐 아무렇지도 않을 상황'에서도 극도의 공포를 느껴 꼭 회피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전자의 상황이다. 곤충, 벌레 혹은 대다수의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동식물은 인간보다 연약하다. 사실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님에도 우리는 해를 끼친다 규정하고 우리네 편의에 맞춰 내쫓을 온갖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일단 생물 간 마주쳤을 때 서로의 체구 만으로도 많은 게 판가름 나니 주로 두려움의 대상은 덩치 큰 나일 것이다. 그런데 포비아란 이렇게 이성적인 부분에 있지 않다. 완벽하게 이성과 먼 극단에 존재해서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다리가 아픈-나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하고 온 신경이 곤두선채로 도망칠 방법만 찾게 만든다.


 후자의 경우는 어떤가. 포비아가 없는 누군가가 생각할 땐 별일 아닌 모기, 초파리, 파리 등과 마주하는 순간은 과연 괜찮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벌레라는 이름을 얻지 않고 곤충이라고 불리는 개미, 잠자리, 나비 등 수많은 것들도 다 무서워 죽겠는데 하물며 모기라니. 포비아가 있음에도 모기에 물리는걸 거의 느끼지 못하는 나의 둔감한 피부가 고마울 뿐 그걸 매번 알아챘더라면 나는 여름이란 계절을 살아내지 못했을 거다. 아니 동남아에 가기 위해 짐을 꾸릴 생각은 애당초 하지 못했겠지.


엄청난 공포라 실루엣이나 그림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리 여럿 달린 친구들이 무서웠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땐 다들 그러하듯 잠자리채와 곤충채집통(지금 와 생각하면 왜 굳이 채집해야 하나 싶다만)을 들고 산으로 들로 다녔다. 많은 곤충을 채집하곤 했고 그들과 논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상황 안에서 괴롭히기도 많이 괴롭혔다. 뒷산이 있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아이들이 잡아온 풍뎅이나 하늘소를 학교에서 자랑하고 시합을 하던 때도 있었다. 모기가 보이면 잡으면 그만이고 잠자리, 나비, 파리 같은 애들은 신경 써본 기억이 없다.


 어떤 시점을 계기로 이렇게 되어버렸는진 몰라도 자라고 보니 나는 벌레포비아를 앓고 있었다. 위의 얘기대로 벌레로 불리지 않는 애들도 다 무서워 생각해보니 다리가 넷 넘어가는 존재들이 다 무서운 것 같다. 다리가 둘 아래인 물고기나 뱀 같은 애들이 나에게 막 달려들어 나를 문다면 당연히 무섭겠지만 바라보거나 만지는데 문제가 없다. 사람들이 무서워(더러워)하는 쥐도 딱히 무섭진 않다. 다리가 네 개여서 그런지 작은 개만 한 호주 들쥐 아니고서야 삶에서 쥐들을 마주치면 '어, 쥐가 있네' 딱 그 정도. 그런데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다가 영상에 나오는 벌레도 견디지 못한다. 당연히 사진이나 그림도 마찬가지. 엄청 캐릭터화 되면 그나마 낫지만 불쾌한 건 여전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여러 날 지내본 동남아 나라는 라오스다. 동남아라는 지역을 생각하면 덥고, 습하고 등등의 생각이 들다 보니 자연스레 벌레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저개발국에 가진 선입견으로 건물은 허름하고 생활도 어려워 해충이 더 많지 않을까 짐작했다. 중2 때 삼척에서 홀로 2주간 생활하며 하루 100군데 넘는 모기에 물리고 바닷물에 들어가 가려움을 없애며 단련한 터에 물파스 같은 모기약은 떼었다. 긁지 않고 가려움을 이기면 이내 평안해진다는 걸 민박집 할머님의 지혜 덕에 배웠다.(재밌는 건 그 후 언젠가 모기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생전 처음 동남아로 향할 때는 어느새 생긴 벌레포비아 덕에 약국에서 기피제, 물파스, 패치 등등 오만 것을 준비해서 떠났다. 그런데 웬걸 태어나서 처음 방문한 라오스는 생각보다 내가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많지 않았다. 


처음 갔던 곳은 아니지만 같은 지역의 학교 모습. 이곳에도 새 건물이 지어졌다.


 봉사활동을 빌미로 태어나 처음 지낸 라오스는 북부에 있는 상당히 어려운 지역이었다. 천여 명이 다니는 시골 중고등학교에 건물을 추가로 지어주는 일을 했다. 천여 명의 학생이 있는데 화장실은 남녀 합해 고작 두 칸이 전부였고 우리네 수세식 변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화장실에 벌레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현대식 시설도 아니고 미화원이 있지도 않지만 정말 깨끗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볼일을 볼 땐 화장실 앞 수조에서 한 바가지 물을 떠 일을 보고 물을 흘린다. 수조의 수위가 낮아질 때면 누구든 꽤나 멀리 있는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채운다. 자동화된 최신 설비는 아니지만 효율적이고 청결했다. 동일 인원이 생활하는 우리나라 건물 화장실에 비하자면 압도적으로 깨끗하고 쾌적하달까.


 생각보다 깨끗했던 라오스의 화장실과 환경 덕에 걱정은 덜었다. 그렇다고 내 벌레포비아가 좀 약해진 건 전혀 아니니 언제고 마주치면 나는 미쳐간다. 아무리 볼일이 급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도 무언가 마주치면 바깥으로 도망쳐 대안을 찾기 바쁘다. 심지어 지내는 방에서 박휘를 본다면 아예 머물지 못하고 밖에서 벌벌 떨 정도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1층 집에 귀뚜라미가 들어왔을 땐 동네 동생을 불러 해결했고 여자 친구와 있을 땐 여자 친구가 벌레를 잡아주는 삶을 살고 있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 각설하고, 이 글을 빌어 내 주변인들의 보살핌에 항상 고마움을 알린다.


 라오에 정을 붙이며 동남아엔 생각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많지 않다는 게 내 머릿속에 입력될 즈음 주변 나라들을 방문했다. 슬픈 일이지만 나는 가장 센 부류에 속하는 애들을 계속 마주치게 되었다. 다리가 되게 많은 애들이나 생명력이 세상에서 가장 질기다는 애들. 나는 태국과 베트남에 갔을 때 아주 커다란 후자의 애들을 계속해서 마주쳤다. 다행이었던 건 주로 실내나 생활공간은 아니라는 것. 그런데 음주를 사랑하는 내가 모자란 술을 사러 밤에 나설 때면 왜 모든 골목길과 보도 위에 반짝이는 검은 손가락이 하나씩 놓여있는 건지. 정말 땅만 보고 아슬아슬, 온몸엔 소름이 가득.


 이러나저러나 여행을 다니며 쌓은 경험 덕인지 최근엔 포비아를 많이 이겨냈다. 드디어 모기 정도는 잡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혹자는 비웃을지 몰라도 나와 내 주변에서 보기엔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그럼에도 나란 사람은 지난 북해도 여행 중 묵었던 농장에서 일행이 있는 공간에 가야 하는데 문 위 조명에 모여 파티 중인 나방들 때문에 겁이나 한동안 서성이다 뒷문을 찾아 겨우 들어갔다. 


이런 도구의 도움 없이도 맨손이나 휴지로 가...끔은 모기를 잡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3, 4개월 간격으로 찾아오시는 존경해 마지않는 감사한 선생님이 계신다. 이름하여 세스코 선생님. 집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뵙노라면 어찌나 든든한지. 재밌는 건 이분께서 매번 일 마치시곤 해외여행에 대한 팁을 계속 얻어가신다. 달리 드릴 게 없으니 그런 팁이나마 열심히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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