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인파가 삐끼들이라니, 다낭아
인천공항을 떠나 다낭으로 향한 지 50분, 기술적인 문제로 회항한다는 기장의 방송이 나왔다. 기내에서 예쁜 사케를 사 마시고 기분이 딱 좋아진 밤 9시 40분쯤이었다. 아마 제주도를 막 지나치지 않았을까. 8시 25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인천공항 활주로가 붐벼 30분 정도 대기하다 뒤늦게 이륙했다. 인천에서 베트남 다낭까지는 대략 4시간 반의 비행이니 예정대로라면 현지시각 밤 11시경 도착할 터였다. 시간은 조금 늦지만 공항에서 순조롭게 환전과 심카드 구매만 하면 맥주 한 캔 정도 하고 잠들기 딱 좋겠다며 나선 길이었다.
기장의 회항 방송은 우렁차지 않았고 소곤거리는 쪽에 가까웠다. 귀를 기울여야 우리말 방송을 겨우 알아들을 정도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모두 잠든 시간이라 그랬는지 생각보다 승객들의 동요는 없었다. 기체가 오른쪽으로 기울더니 크게 선회하여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여행에 있어서는 워낙 느긋한 덕분에 잠든 짝꿍을 잠시 깨워 회항 소식을 담백하게 전하고 방금 떠나온 공항으로 다시 향하는 비행기 의자에 몸을 기댔다. 10시 반 내지는 11시쯤 인천에 다시 내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인천에 도달해선 계속 제자리를 돌았다. 15분 후 착륙한다는 안내만 반복되더니 결국 연료를 소모해야 착륙할 수 있다는 이실직고. 결국 11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떠나왔던 인천에 다시 도착했다.
내 인생의 첫 회항은 기내에서 보딩패스를 새로 받는 경험을 선사했다. 돌아온 비행기는 게이트에 도착했지만 또 30분 정도 기내에서 지상직 직원들에게 새 보딩패스를 받는 절차를 거쳐 공항에 다시 들어섰다. 바로 준비되어있다는 대체 편을 타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다시 인천에서 이륙했다. 문제없이 날아갔다면 다낭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4시간 30분 비행의 중단거리 직항 비행이 졸지에 9시간짜리 경유 비행이 되었다. 기체에 발생한 기술적인 문제라니, 정확히 무엇인진 몰라도 참 무서운 일이다. 애초에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문제가 생겼다면 그다음엔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덴 이견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회항과 대기, 일정의 꼬임에도 짜증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안도감이 함께했으리라.
다시 이륙한 비행기에서 기장은 주변의 기상을 파악하는 장비에 문제가 있었노라 소곤거렸다. 다리를 펼 수 있는 자리를 구매해서 탔는데 대체편의 레그룸은 마치 비지니스의 그것처럼 넓어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늦어진 이상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비행기에서 조금이라도 자두는 게 좋겠지만 나는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 잔다. 그래서 비행도 꼬였으니 캔맥주라도 하나 주면 좋으련만 생각하던 찰나, 회항으로 고생했다며 일용할 양식을 나눠줬다. 그래, 스트레스와 피로로 승객들에게 당충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가능한 일정과 저렴한 비행기 삯이 8할에 취향은 2할 정도 들어가서 결정된 행선지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상업화되어있고 한인이 많다고 하여 기대감은 아예 바닥에 내려두고 떠났는데 가는 길부터 이런 다이내믹함이 반겨주다니. 새로 지어 깨끗한 다낭 공항에 도착해보니 어느 통신사 직원들도 회항한 비행기까지 기다려주진 않는지 심카드를 살 수 있는 매장에 불이 켜진 곳은 없었다. 거기까진 일단 환전부터 하고 택시를 타자고 침착하게 세관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웬걸, 어느 환전소 직원들도 회항한 비행기까지 기다려주진 않았다.
공항 앞에 남아있는 사람이라곤 대체편으로 새벽에 떨어진 승객들을 어떻게든 자기차에 태우려는 득달같은 기사-삐끼-들 뿐이었다. 베트남의 다른 도시에선 느껴보지 못한 집요함이다. 손사래를 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떠든다. 제시하는 금액도 터무니없고 호객하는 사람을 따라서 탔다간 사기당하기 일수인 베트남이라 침착하게 방법을 찾았다. 현금이 없으니 미리 깔아 둔 그랩 앱에 카드를 등록하고 호출해 호텔로 향했는데 평상시 현금가의 몇 배를 준건지 입속이 씁쓸했다. 그래도 새벽 4시가 넘어 호텔에 무사히 체크인하고 짐을 푸니 다사다난했던 여행길은 머릿속에서 옅어지고 숙소 참 잘 골랐다는 마음이 커졌다.
여행 경험이 있으니 환전소와 통신사 부스가 모두 닫은 시간에도 순조롭게 공항을 탈출했다. 그런데 그 탈출 과정에서 배경처럼 보이던 많은 승객들은 통신사 부스 앞에서, 또 환전소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처럼 빠져나가거나 패키지여행이라 준비된 버스에 오르지 못하고 좌절한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호객꾼들의 먹잇감이 되었겠지.
비행기 기체의 결함은 회항이라는 카드를 꺼내었고 그 결과 수백의 승객들의 여행은 시작부터 꼬이게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들은 시작부터 얼마나 지쳤을까. 노부모를 모시고 온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일행의 가이드를 자청해서 온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이 여행이 어렵사리 용기 내 결정한 첫 여행이었을 여행자는 부디 다른 좋은 추억들로 회항과 다른 어려움을 잊고 여행에 맛 들일 수 있기를. 아니라면 회항과 어려움 모두 여행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기를. 그래도 우리 모두 여권은 챙겨 공항으로 갔기에 다들 날아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여행에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음이 다행이다.
새벽 4시 넘어 들어선 호텔방엔 곧 햇빛이 들어왔다. 창밖을 바라보니 다른 호텔들 사이로 미케 해변의 파도가 빼꼼 보였다. 어차피 꼬인 일정 우리는 조식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이른 잠에 들었다. 쌀국수가 참 맛있어 기분이 한껏 좋아졌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