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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Oct 24. 2019

9분간의 하노이 여행

다이내믹한 생애 첫 베트남 여행

 때는 바야흐로 2013년 2월 1일, 동남아 시간으로 밤 9시 30분쯤. 나는 예정에도 없던 하노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돼 처음으로 라오스 땅에 발을 디뎠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루앙프라방에서 비행기에 오를 땐 잔뜩 신이나, 야시장에서 2천 원 정도 주고 산 비어라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기념사진도 한 장 남겼다. 물론 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는 길이었지만 하노이 여행 때문에 신이 난 건 아니었고 무탈하게 일정을 마쳐 신이 난 터였다. 하물며 지금 타는 비행기는 하노이까지 데려다주긴 하지만 우리에겐 인천행 항공편으로의 환승이 기다릴 뿐 하노이에서 소화할 일정은 없었다.


기분 좋게 루앙프라방을 떠나던 때의 나. 2013년도 카메라 노이즈가 믿기지 않아 흑백으로 바꿨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출입국 경험은 많았고 봉사단원 인솔도 처음이 아니라 마음이 편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가는 길에 환승한 게 전부이나 워낙 작아 헷갈릴 일도 없었다.* 누구 하나 아픈 단원도 없고 출국 전 문화탐방도 즐거워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였다. 이때, 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겼어야 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여행에서 뜻밖의 도장을 여권에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타본 경험도 많고, 갓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공항에서 수개월 일도 했던 터라 공항이나 기내에 반입 불가한 물품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수십 번 드나들면서 가방에 있는 칼을 미처 빼놓고 오지 못한다든지 하는 실수는 몇 번 했다. 큰 값어치가 없는 물건의 경우 검색대에서 폐기를 요청하고, 값어치 있는 물건인데 시간 여유가 있으면 돌아나가 항공사 카운터에서 위탁 수화물로 처리하곤 했다. 그런데 이 날은 해외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고 쇼핑해 늘어난 짐이라곤 입고 있는 비어라오 티셔츠가 전부라 문제 될 물건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방금 라오에서 보안검색을 받고 날아와 환승만 하는 상황이 아닌가. 환승 게이트의 보안 검색대에서 단원들 모두를 통과시킨 후 마지막으로 내 짐을 올렸는데 직원이 불러 세웠다.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어 가방이나 열어 보여주려는데 보안요원이 지적한 건 내 카메라 삼각대였다.** 출국하며 이용한 두 번의 비행 편과 방금 날아온 비행까지 문제가 없었으니 어이가 없었다. 삼각대가 왜 문제가 되는지 물으니 그저 안된다는 말만 단호하게 반복했다. 며칠 전 같은 공항, 같은 환승 게이트를 통해 출국 편을 이용할 때도 문제가 없었다 얘기해도 쳐다도 보지 않고 안된다 말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을 취미로 했고 사진일도 몇 년을 했는데 한 번 문제가 된 적이 없어 더 억울하기만 했다. 짜증이 반쯤 섞인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남의 나라 공항에서 화를 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속으로만 삭혔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연히 서있는 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른 승객들만 연신 통과시켰다.


이렇게 귀여운 삼각대는 아니었지만


 잠시 분을 삭이고 나에게 어떤 옵션이 있느냐 물었다. 퉁명하게 돌아온 답은 아주 간단했다. 버리든지, 항공사 카운터에 가서 위탁하든지.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내 인생 최고가 이태리제 삼각대는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고 환승 시간은 지루할 만큼 길었기에 위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삼각대를 돌려받고 항공사 카운터가 있는 곳으로 한 층 내려가려고 보니 웬걸, 상행 에스컬레이터 하나가 전부 아닌가. 눈 씻고 찾아봐도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는 없는 아름다운 구조였다. 다시 보안요원에게 다가가 어떻게 내려가냐 물으니 돌아온 답은 역시 명쾌한, "내 알바 아냐." "Non of my business."


 입 속엔 내가 아는 온갖 욕이 들끓고 있었지만 차마 밖으로 내지도 못하고... 호그와트행 기차 플랫폼도 아닐진대 애먼 흰 벽만 한참을 노려봤다. 이윽고 마음이 섰고, 남의 나라에서 하기엔 미친 짓 같았지만 얼른 해치워 버리자는 마음에 비어있는 반대방향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격렬한 역주행을 시작했다.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 내지는 미친 사람 정도가 할 행동 아닐까. 아마도 나는 후자의 경우로 남들 눈에 비쳤으리라. 어쨌든 나는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와다닥 달려 내려간 1층에서 또 다른 보안요원이 나를 불러 세울 거라고는.


이것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던 그놈의 에스컬레이터


 상행선 밖에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해 뛰어내려온 이용객을 제지하는 그를 이성적으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조건 돌아 올라가라는 그를 심정적으론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당시의 나였다. 쏘아붙이듯 상황을 설명하고 위에 있는 보안요원이 내려가라 했다 우기니 그는 이내 나를 보내주었다. 난관 끝에 다다른 항공사 카운터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설렁설렁 응대하던 그는 돌연,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단체였고 그 당시 짐 개수와 상관없이 총무게를 치는 걸 알고 있던 나다. 더불어 우리는 귀국길이라 떠날 때 보다 짐도 훨씬 가벼워 허용 무게나 개수에 문제가 없었다. 직전의 상황을 겪어놓고 이런 얘기를 하면 말이 통할 줄 알았다니, 나는 끝내 순진했다.


 베트남 통화인 동 VND 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단위가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 원화의 단위도 꽤 높지만 베트남이 훨씬 심하다. 베트남에서 직장인들이 먹을법한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백반이 2만 동 가량 한다. 우리 돈으로 천 원이니 20분의 1을 하면 된다. 이런 사정이니 분위기 좋은 집에 가서 먹고 마시면 백만 동 나오는 건 일도 아니다. 역시 20분의 1을 하면 우리 돈 5만 원 정도로 한국에선 분위기 좋지 않은 집에서도 쉽게 쓸 수 있는 금액이다. 베트남 물가나 환율에 대해선 그 후 여러 번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고 삼각대에 발이 묶였던 그때의 나는 베트남 통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 나에게 항공사 직원은 다짜고짜 수십만 동을 요구했다. 요금표가 있는지 물으니 그런 건 없다며, '현금만' 가능하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내 눈 앞에 카드 단말기가 버젓이 보이지만 그저 '현금만' 가능하다고.


베트남 통화인 동 VND. 가지고 있으면 백만장자 느낌이 잠깐 든다


 현금이 없으니 카드로 하고 영수증과 서류를 받아야겠다니 카드만 있어도 방법이 있다며 따라오란다. 그때 따라나선 길이 나의 첫 베트남 방문이자 9분간의 하노이 여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 분명 따라오라 말했던 직원은 어느새 연행하는 것처럼 내 팔을 잡고 데리고 가고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정신 차리고 살펴보니 입국심사대였다. 내 팔자에 맞지도 않는 외교관 줄로 데리고 가 심사관에게 몇 마디 하더니 내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예정에 없던 베트남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입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 팔을 끌고 간 직원이 나를 놓아준 곳은 바로 ATM 앞. 그러더니 카드를 넣으라는 무언의 턱짓뿐. 홀린 듯 카드를 넣자 베트남어로 쓰인 ATM기를 몇 번 조작하더니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예의 그 턱짓. 얼마를 인출하느냐 묻자 돌아온 신박한 대답은, "별로 안돼." "Not much." 순간 머릿속은 엄청난 갈등으로 가득 찼지만 흘러가는 이상한 상황에 맞춰 비밀번호를 넣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돈이 나오자 현금과 영수증은 직원이 주머니에 넣어버렸고, 다시 붙들려 끌려 나오듯 출국 도장을 받아버렸다. 그렇게 허망하게 호구 잡힌 내가 카운터로 쫓아가 서류나 영수증을 요구했더니 귀찮다는 듯 사무실로 숨어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 나오지 않고 다른 직원들은 무응대로 일관해 '아, 털렸구나' 생각하며 터덜터덜 환승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환승장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에 선 내 손엔 삼각대도, 영수증도 그 무엇도 없었다.


 입국 도장과 출국 도장을 찍은 사이는 단 9분. 외국에 나가면 호구 잡히지 않게 정신 단디 차리고 있어야 한다 배웠거늘, 그 나라인지 외국인지 경계가 흐린 그 회색지대에서 나는 단디 당했다. 그렇게 9분간의 하노이 여행을 마치고 보안요원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환승장에 도착해 핸드폰을 보니 은행에서 문자가 와있었다. 너는 약 37달러만큼 호구 잡혔다고. 대충 80만 동 정도 호구 잡혔다고. 그래도 삼각대보다 훨씬 저렴하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걸까, 아니 나는 내 삼각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인천에 도착해 우리 팀 짐을 하나씩 꺼내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형! 저 삼각대 형 거 아니네요?"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회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내 삼각대가 덩그러니 올라 컨베이어 벨트를 정주행 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어 보니 아무 양식도 없는 종이에 덜렁 수기로 적힌 내 영문 이름이 보였다. 아... 그 큰 항공사에서 수화물 표지 하나 없을 리가 없는데. 반가운 내 물건 찾았으면 잊으면 될 것을, 미련하게 거듭 호구 잡힌 스스로를 원망하며 차가운 삼각대를 손에 쥐었다. 라오스 한 구석에서 봉사활동하러 떠났던 나는 분명 한 나라만 다녀온 것 같은데, 팔자에도 없는 출입국 도장만 네 개 받아 돌아왔다.

 

 이런 경험을 안겨주는 나라는 좀 싫어질 법도 하지만 미련한 나란 사람은 시간이 흘러 기어코 베트남에 진짜 여행을 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절대 호구 잡히지 않는다 마음 잡고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친절하고 편안한지. 쌀국수는 또 어찌나 맛있고 저렴한지.


 한국에선 비슷한 맛을 구경도 할 수 없는 현지 쌀국수 40그릇어치를 뜯겨놓고선 그래도 베트남이 참 좋다고, 사람들도 참 좋다고.




내 여권 사증란 마지막 페이지








*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후에 새로 지어져 꽤 크고 멋진 신식 공항이 되었다. 얼마나 멋지냐면 운영 초기 남자화장실 기준 통유리로 바깥을 조망할 수 있을 정도였다. 부디 안에서만 조망이 가능했기를 지금도 바라본다.


** 인천국제공항의 정보나 국제적인 항공위험물 기준을 살펴보면 삼각대나 셀카봉은 기내에 반입 가능하다. 단, 끝이 뾰족하여 위협이 되는 경우에는 반입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애매한 단서조항이 있다. 당시 내가 소지했던 삼각대는 끝이 뭉뚝하고 두꺼운 고무로 마감이 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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